본문 바로가기

미디어칼럼+옴부즈만

남북관계, 국제 정세 속 입체분석을(옴부즈만)

백병규 | 미디어평론가

ㆍ미국과 일본의 입장 보여준 칼럼 등 국제적 시야 넓혀주는 적절한 글 기사에선 ‘남북’ 양자의 틀 아쉬워

연초 북한의 대화 공세가 거세다. 북한은 1일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대화와 협력을 통해 남북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관계 복원에 나설 뜻을 밝혔다. 또 5일에는 4년 만에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을 통해 ‘무조건적인 당국 간 회담’을 제안하고 나섰다. 당연히 북한의 이런 돌변한(?) 대화 공세는 연초 뉴스의 초점이 될 만하다. 경향신문은 지난 한 주 북한의 적극적인 남북 대화 제안으로 표면화된 이 같은 국제 정세의 분석과 전망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3일, 한 면을 털어 북한의 신년공동사설 내용과 북한의 의도, 정부의 대응 등을 자세하게 분석·소개했다. 4일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 특별연설에 나타난 여전한 대북 강경 기조를, 5일에는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한 배경을, 6일에는 북한의 남북 당국 간 조건없는 회담 개최 제안(정부·정당 연합성명)을, 그리고 7일에는 북한의 대화 제의와 남측의 미온적인 대응을 분석한 기사(미·중에 등 떠밀린 남북 “대화” 핑퐁 게임)를 잇달아 실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고, 대결과 대화라는 냉온탕을 수시로 오간 남북관계의 고착화된 오랜 패턴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로서는 북한의 이런 태도 변화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쉽지 않다. 북한의 대화 제의를, 자주 그래왔던 것처럼 북한의 정략적인 선전공세쯤으로 치부하게 되는 고정관념이 그만큼 뿌리 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 그런 측면이 없다고 할 수 없겠지만, 여기에는 남북 관계의 문제를 미·중 관계 등 한반도 주변 정세의 맥락 속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해 보도하는 언론의 노력이 부족했던 점도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4일자 유신모 워싱턴 특파원이 쓴 칼럼 <워싱턴 리포트-한국 보수 언론의 미 입장 ‘마사지’>는 한·미 동맹을 강조하면서 한국 정부를 지지하고 있는 미국 정부이지만, 그 저변에서는 한국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제동을 걸고 있는 흐름이 있다는 점을 한국 보수 언론의 ‘일방적 보도’의 문제점과 함께 잘 드러내 주었다. 이 날자 오피니언 면에 실린 와다 하루키 칼럼 <동북아 위기 심화에 무력한 일본>도 같은 맥락에서 남북문제를 바라보는 국제적 시야를 넓혀주는 시의적절한 글이었다.

경향신문 6일자 사설 <미·중 정상회담 관전만 할 것인가> 역시 사실상 ‘흡수통일’을 지향하면서 ‘기다림의 전략’으로 일관해 온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과 북한 핵문제에 대한 외교정책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고, 19일 미·중 정상회담이 한반도 정세에 갖는 중요성도 새삼 환기시켜주었다. 경향신문의 이 같은 기사와 칼럼, 사설 등은 새해 초 북한의 적극적인 대화공세의 배경과 향후 그 추이를 이해하는 데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칼럼이나 사설이 미·중 관계 등 국제정세 속에서 남북 관계를 입체적으로 보려 하고 있는 데 반해 다수 관련 기사의 내용은 ‘남북’이라는 양자관계의 틀과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신년공동사설과 정부·정당·단체 연합성명에서 남북 대화와 조건없는 당국간 회담을 제안한 것을 북한의 ‘원론적인 입장’ 표명 정도로 평가하거나 남북 간 대화 책임 떠넘기기 정도로 분석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북한을 다룰 진지한 협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한했다는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한 결산 기사가 ‘북 우라늄 농축’ 문제만을 다룬 것처럼 보도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은 아마도 한편으로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 못지않게 군사적 압박과 봉쇄라는 큰 그림에 전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북핵 문제를 다룰 6자회담의 재개를 위해 한국 정부의 대북 강경 일변도 정책에 나름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 경향신문 칼럼과 사설 등을 통해 읽어볼 수 있는 대목들이다. 그러나 기사는 한국 당국자의 ‘발언’과 ‘견해’를 전하는 데 치중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북한 문제에 대한 한국 안에서의 취재가 갖는 한계이자 어려움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이 냉혹하게 돌아가고 있는 한반도 주변 정세의 전체적인 모습을 왜곡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