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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통해 찾아본 1964년도 장소팔·고춘자의 만담은 쉴 새 없이 치고받는 대사가 미리 짜여져 있어 마치 일종의 기예를 보는 듯합니다. 그때는 방송보다 전국의 극장을 다니며 ‘악극’이라는 형식으로 한정된 관객에게 연극같은 대본을 전달하던 시기라 그 웃음의 재사용이 가능한 시대였지요. 이제 전국을 넘어 유튜브로 전 세계에 콘텐츠를 전달하는 상황이 되면서 한 번 쓰여지는 웃음만이 소용되는 1회용 콘텐츠 사회가 전 지구적으로 펼쳐집니다.

 

짜여진 감동이 한계에 다다르면 실제의 삶 속 우연한 발견을 갈구하게 됩니다. 예전 암행어사의 주요 임무 중 하나로 지역의 숨은 미담이나 열녀·효자의 이야기를 별단에 적어 내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는 비변사를 통해 처리되었다 합니다. 감동의 공유와 이를 굽어살피는 정권의 인자함이 권선징악으로 교훈되는, 그야말로 체제의 선전에 도움이 되는 미디어의 역할을 한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여기서 주시할 부분은 바로 ‘실제 있었던 일’, 즉 리얼한 삶을 발굴하고자 하였다는 것입니다. “드라마 같은”이라는 수식어가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만들어진 이야기보다 더 극적인 삶에서 살아있는 감동이 극대화되기 마련인 것이죠.

 

10년 넘도록 부동의 영향력을 지키고 있는 방송인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한 인터뷰에서 “‘러브하우스’ 출연자가 방송국에서 간다고 말씀드리면 제일 좋은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계세요. 그런데 메인 PD는 프로그램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화장을 지우고 옷도 허름하게 입으라고 시키는 일이 있었어요”라며 예전의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방송의 역할이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인가 아니면 극적인 장치를 추가하는 선을 넘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인가 하는 경계선에 대해 고민한 것입니다. 그 고민에서부터 리얼 버라이어티의 원조라는 국민예능이 시작된 것이겠지요.

 

캠핑카 생활을 다루는 MBN <여행생활자 집시맨>(왼쪽 사진)과 자연 속 은둔자를 조명하는 <나는 자연인이다>의 한 장면. 전형적인 ‘욜로 라이프’ 소개 프로그램으로, 시청률도 높게 나온다. MBN 제공

 

위 고민의 연장선상으로 연예인 가상부부의 알콩달콩한 결혼생활에 미리 만들어진 콘티가 있다는 이야기가 돌거나 대사가 써 있는 작가의 스케치북이 찍혀 인터넷에 올라간다거나 하면 선남선녀의 애틋한 사랑의 진실성에 가슴 졸이던 나의 감정은 또 바보상자에 속고 말았다는 배신감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이의 대척점에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척박한 곳에 혼자 살고 있는 분들을 찾아가 그저 뭘 드시고 어디서 주무시는지 관찰하는 프로그램인데 늘 같은 포맷으로 5년이 넘게 방영되고 있습니다. 방송은커녕 일반인들도 잘 만나지 않는 그야말로 혼자 살고 있는 분들의 삶을 그저 관찰하는 프로그램의 제작비가 얼마나 될지 궁금할 따름인데 종합편성채널인데도 시청률이 7%가 넘습니다. 케이블TV라는 쉽지 않은 제작 환경 속에서 시작하여 높은 시청률을 구가하고 있는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는 어떤가요? 연예인도 아닌 외국에서 온 방송인의 친구라니 그야말로 일반인들의 여행기로, 출연진이 한국에 오는 과정부터 며칠간 낯선 곳에서 고군분투하며 즐기는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그들의 단순한 실수나 감탄도 우리에겐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꾸미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힘인 것이죠. 일반인 출연자들만 날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케이블방송국의 <맛있는 녀석들>의 출연진은 연예인들이지만 방송 카메라가 꺼진 후에 더 많이 먹는다는 후일담은 방송에서 보여준 그들의 음식에 대한 열정의 진실성을 배가시킵니다.

 

이제 스타가 모니터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인터넷과 휴대폰의 고성능 카메라는 모니터 안과 밖의 구분을 없애 버렸습니다. 방송 카메라를 통해서만 보이던 셀럽은 공공장소에서 나의 휴대폰을 통해서도 채록되고 재현되며 때로는 공유됩니다. 그러다보니 신비주의를 지속하려는 덧없는 시도가 파파라치가 아니라 일반인에 의해서 무력화되는 시대에,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처럼 스타들은 스스로 공개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라이브 앱을 이용하거나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꾸미지 않은(혹은 꾸미지 않은 듯한) 자신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죠. 이렇듯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서 직접 스타가 소통하는 일이 잦아지면 막상 방송국은 어떤 부분을 보여줘야 시청자의 눈길을 잡을 것인가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리얼을 넘어선 생리얼의 콘텐츠가 탄생되게 됩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카메라가 켜지기 전 시작한 리얼리티는 카메라가 꺼진 후에도 미처 완성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생이 날것 그대로 투영되고 우연에 의해 자연스레 고여진 진정성이 빛을 발할 때 그 우연한 행운(serendipity)에 우리의 감동은 호응합니다.

 

조작되지 않은 진실한 삶이란 그 어떤 연극보다 큰 감동을 주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생리얼을 그토록 찾고 있는지 모릅니다. 앤디 워홀은 1968년 스톡홀름 전시 카탈로그에서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동안 유명해질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 15분을 위해서 먼저 나의 삶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송길영 |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