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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에 비해 여성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드라마에서는 전문직 남성과 비전문직 여성으로 성역할이 구분되고, 여성이 갈등을 유발하고 문제를 일으키면 남성이 해결해주는 이야기가 많다고도 한다. 2016년 한 해 우리나라의 텔레비전 방송에 대한 평가이다(경향신문 2017년 3월26일 인터넷 보도). 이 문제적 상황 규정은 왠지 익숙한, 그래서 진부한 이야기로도 들린다. 거의 40여 년 전에 여성이 텔레비전 뉴스에 어떻게 묘사되고 있는지를 논한 터크만(Tuchman)은 텔레비전 뉴스에서 ‘여성은 상징적으로 소멸되어 있다’고 했다. 여성의 상징적 소멸, 다른 말로 여성의 과소 재현 양상은 40여 년을 지나 2017년을 관통하는 현재 한국에서도 여전히 문제적 상황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여성의 재현은 언제나, 전 세계 어디에서나,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왔다.

 

물론 그동안 미디어가 여성을 재현하는 방식에 변화가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2010년대 일일 드라마만 보더라도 그 어떤 시절보다 더 많은 전문직 여성과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변화는 단순히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복잡성을 띠고 있다. 미국의 텔레비전 재현 연구들은 ‘몇몇 권력 있는 여성’의 이미지가 과도하게 표상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것이 여성의 선택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구조적 불평등을 개인적 선택의 결과로 보이게 한다고 비판하는 중이다.

 

물론 여성 재현 문제의 복잡성이 우리 사회가 지닌 여성 재현 문제 그 자체를 무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매년 발간되는 시민단체 모니터링 보고서들을 보면, 재현 문제가 개선되기는커녕 상상도 못한 새로운 방식(시사 프로그램에서 남성들의 ‘공적’ 담론을 여성들이 멀리 떨어진 부엌에서 바라보게 하는 방식)이 등장하는 지경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대안은 명확하다. ‘심의 강화’이다.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는 관련 심의규정도 개정했고 이에 따라 심의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개정된 심의규정 제30조의 첫 항은 ‘양성을 평등하게 묘사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고 성차별과 고정관념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 그럼 이제 앞으로 우리는 ‘평등한’ 방송을 보게 될까? 그렇지 않다. 심의규정은 명문적인 규정일 뿐 더 중요한 것은 심의위원회의 인적 구성이나 성평등 인식이라는, 진짜 실용적 문제를 일단은 뒤로 미루어 놓고서라도, 개정 심의규정이 평등에 대한 상상력을 제한하는 더 큰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규정은 우리가 바라는 방송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향점을 드러낸다. 이 지향점의 가장 큰 문제는 ‘양성’이다. 페미니즘 이론과 실천이 개척해 온 길 중 가장 큰 흐름 중 하나인, 생물학적 성차를 기반으로 한 성별 구분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다시 거꾸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양성, 즉 남성과 여성이란 과연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그리고 ‘평등하게 묘사하여야 한다’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여기, 이 ‘평등’에 바로, 숫자들이 개입하게 된다. 평등은 숫자로 환원되는 것이다. 물론 숫자가 중요하다. 단순히 다양성 개념을 인종(한국 개념으로는 다문화)이 선점해 버렸기에 생물학적 남성들만으로 구성된 비정상회담이 다양성을 구현한 프로그램으로 인정받는 사회 속에서라면, 예능 프로그램의 남성 출연자 비중이 여성 출연자 비중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사회라면, 숫자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숫자를 넘어서,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평등한 방송’의 최종 상태가 무엇인지를 상상하고, 거기서부터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다시 계산해 와야 한다. 그래서 먼저, 우리는 ‘양성’을 버려야 한다. 생물학적 성별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존재들을 상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도 ‘평등한’ 방송이 될 수 없다. 남성 대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재현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역만 늘어놓으면 된다는 단순한 해결책을 내놓게 되고 만다. 보호받는 여성만 등장하는 것이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여 남성을 보호하는 힘센 여성을 내놓으면 해결책이 되는가. 만일 그 여성이 성소수자 차별 발언을 하고 있다면 그것이 어떤 ‘평등’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남성들만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다고 비판하면 숫자를 보정할 수 있도록 여성들만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가녀리지 않은 ‘남자 같은 여자’를 등장시킨 후 고정 관념을 벗어났다고 하는 것은 여전히, 이분법에 의한 상상력의 제한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것을 저것처럼 바꾸면 저것과 동일하다는 동일성의 논리로 평등을 상상할 수 없다. 평등은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개념이고 이는 수적 균형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방송은 ‘양성을 평등하게 묘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그 일상을 다양하게’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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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