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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소셜 빅데이터가 보여주는 국민의 분노

“아니 지금 그래서 우리나라 권력 실세가 1위 최순득, 2위 장유진(장시호), 3위 최순실, 4위 정유라, 5위 정윤회, 6위 박근혜 이거냐고 ㅋㅋㅋㅋ 무슨 음원이야? 매주 새로운 사람이 차트 진입하네.”


트위터 사용자 @9404****가 지난 10월31일 올린 트윗은 이 사건 관련 트윗 가운데 최다 반응인 3만7943회의 리트윗을 기록했다. 이 사용자의 팔로워 수는 1700명 조금 넘는 수준이다. 광화문에서 연설한 세 딸의 어머니, 대구 여고생처럼 시민들의 정치적 감각이 극적으로 깨어나고 그들의 언어가 순식간에 전파된다. 새로운 영웅이 탄생한다.


100만 촛불의 웅장함과 위대함을 보여준 11·12 시민혁명은 미디어 관점에서 보면 가히 소셜 미디어 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타임라인은 온통 시국 이야기로 가득하다. 트위터로 시작해 페이스북을 넘어 인스타그램으로까지 확산됐다. 어느 정도였을까. 소셜 빅데이터 분석 솔루션 ‘소셜 메트릭스’(다음소프트)를 돌려보니 어마어마한 규모의 데이터가 잡혔다(이 솔루션은 트위터, 블로그, 커뮤니티, 뉴스 전체 문서를 수집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0월24일부터 11월18까지 26일 동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언급한 문서는 모두 1094만824건을 기록했다(검색어, 최순실+박근혜+검찰+촛불+광화문).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의 두 배가 넘는 언급량이다.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이튿날인 10월25일과 100만 촛불집회가 열린 11월12일 하루 언급량은 70만건을 넘었다. 하루 평균 40만건을 20일 넘게 기록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적 분노와 불안, 수치심,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전통 미디어의 특종보도로 시작해 소셜 미디어의 등을 타고 일상공간으로, 거리로 확산됐다. 거리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은 조직이 없어도 소셜 미디어에서 공유한 정보와 이해를 바탕으로 하나의 구호를 함께 외칠 수 있었다. ‘박근혜 퇴진!’


국민들이 인식한 사건 관련 인물 비중은 어땠을까? 인물 연관어 1~2위는 200만건 이상을 기록한 박근혜, 최순실이 차지했다. 사건 초기에는 최순실이 압도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건의 몸통인 박근혜 언급량이 늘어났다. 우병우, 최태민, 정유라가 그 뒤를 이었고 안종범, 차은택, 정윤회, 정호성, 고영태, 김기춘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사건은 기존 미디어의 지형을 흔들었다. 소셜 미디어와 결합된 매우 극적인 상황에서 ‘메이저리티’(majority)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에이케이스 유민영 대표가 ‘손석희 TV’라 명명한 JTBC가 53만건을 기록해 ‘넘사벽’ 영향력을 과시했다. 손석희는 용감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보도로 기존 미디어권력 지형을 송두리째 갈아엎었다. 2위 조선일보, 4위 TV조선이 각각 10만건 전후의 언급량을 기록했고, 3위는 MBC 해직기자 출신 이상호의 고발뉴스가 차지했다. 반면 기존 공중파들은 SBS가 4만여건, KBS와 MBC가 3만여건을 기록하는 데 그쳐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박근혜 대통령 거취와 관련해선 ‘하야’가 가장 많았고 ‘퇴진’과 ‘탄핵’이 뒤를 이었다. 시간 순서로 보면 초중반엔 하야가 압도적이었다가 11·12 집회를 계기로 퇴진이 1위로 올라섰으며, 대통령이 국정주도 의지를 밝힌 이후로 탄핵 언급량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긍정어 분포와 부정어 분포가 대통령 지지율과 부정 평가에 맞먹는다. 국정농단, 범죄, 분노, 증거인멸, 미치다, 국기문란, 충격, 막장 같은 단어가 긍·부정어 상위권에 랭크돼 있다. 국민들은 굉장히 오랜 시간을 집단 트라우마 상태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전체 문서 1000만여건 가운데 700만건 이상의 문서에서 심리를 나타내는 언어를 쏟아낸다는 것은 이 사상 초유의 게이트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건조하게 ‘팩트’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섞어내고 있는 것이다.


분노의 감정이 가장 강력하게 표현된 지점은 국민연금과 삼성, 최순실의 관계가 언급됐던 순간이다. KBS <뉴스후>에서 관련 의혹을 보도한 뒤 트위터 사용자들은 밤새 30만건이 넘는 분노를 토해냈다. 너무 분해 밤잠을 못 이룬다고 했다. 새벽 4시가 되어서도 언급량이 줄지 않았다. 세금을 갈취하고 심지어 알바생에게까지 걷어간 국민연금마저 재벌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악용했다는 의혹이 분노 게이지를 폭발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민혁명은 소셜 미디어 혁명에 다름 아니다. 지금 전 세계는 이 아름답고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를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현상으로 주목하고 있다. 광장에 흩뿌려진 권력을 정치권은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대통령이 이 거대한 민심을 외면하고 끝내 퇴진을 거부한다면, 상상을 뛰어넘는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유승찬 | 스토리닷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