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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미디어 세상]총선을 뒤흔드는 저 거짓말

권력 감시는 언론의 의무다. 명색이 학자가 민주주의의 상식을 정색하고 칼럼 들머리에 적기란 쑥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현실을 짚어보면 전혀 아니다. 총선을 앞두고 생뚱맞은 ‘야당 심판론’이 거세지 않은가. 비단 조·중·동 신방복합체만이 아니다. KBS·MBC·SBS도 도긴개긴이다. ‘친민주’ 평가를 받아온 신문조차 ‘야당 심판과 국정 심판’을 ‘맞불’로 보도하는 기사를 내놓는다. ‘중립’을 내세운 미디어는 “총선이란 정권을 심판하는 일인데, 야당을 심판하자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옳게 개탄하면서도 바로 이어 “이런 주장은 진실에 가깝지만 현실 정치에서 효용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쓴다. 과거 총선과 달리 20대 총선을 앞둔 여론조사에서 야당 심판론이 우세하다는 ‘여론조사’가 근거로 제시된다.

생게망게한 일이다. 무릇 언론의 의무가 권력 감시인 까닭은 또렷하다. 권력이 국민 대다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쳐서다. 언론의 존재 이유는 ‘죽은 권력’ 참시가 아니라 살아있는 권력의 감시와 비판이다. 물론, 비판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가령 박근혜를 진보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비판한다면 언론 행위가 아니라 정치 행위일 터다.

고 김대중과 노무현, 이명박이 현직 대통령일 때 내가 권력을 비판한 기준은 그들이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비판할 때는 ‘조·중·동과 다를 바 없는 언론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 내 책상에는 대선 후보 박근혜의 공약을 담은 공식 홍보물이 있다.

박근혜는 “과거 선거 때마다 표를 얻기 위한” 후보들의 “수없이 반복된 거짓말”을 비난하며 “자신이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믿을 수 있는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박근혜야말로 수없이 반복된 거짓말의 ‘종결자’다. 그는 “경제민주화로 성장의 온기가 골고루 퍼지는 세상”을 공약하며 당시 963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의 고통을 덜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집권 3년이 지난 현재 1200조원을 넘어섰다.

보육비도 “국가 책임”을 공언해놓고 사뭇 당당하게 딴소리다. 무엇보다 놀라운 거짓말은 “해고요건 강화” 공약이다. 일방적 정리해고를 방지하겠다던 그의 공약은 자본의 숙원인 ‘일반해고’까지 가능한 노동개악 추진으로 현실화했다. 가증스럽게도 그 공약 배신을 ‘민생 살리기’로 포장하며,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야당을 심판하라고 대대적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겨레 이정용_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럼에도 조·중·동 신방복합체와 3대 방송은 권력을 감시할 섟에 두남두고 있다. 지난 3년 내내 ‘경제민주화’ 공약을 배신한 권력에 빌붙어 ‘신뢰의 정치인 박근혜’를 음으로 양으로 선전해왔다. 종편은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해 야당을 한껏 조롱하고 정치를 희화화했다.

물론, 언론은 야권도 감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이 총선의 본질은 아니다.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해놓고 어떤 통제도 할 수 없는 헌법 체제에서 유일한 평가 방법이 재임 중의 총선이다. 그런데 총선이 야당 심판이다? 여당이 국회 과반의석까지 거머쥔 마당에 잠자던 소가 웃을 일이다. ‘야당 심판인가, 국정 심판인가’로 총선기사를 쓰는 언론은 중립을 자부할지 모르지만 직무유기일 뿐이다. 여론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며 흐름을 따르자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왜 여론이 그렇게 되었는가를, 누가 여론을 만들었는가를 취재하고 보도해야 옳다.

역대 총선 가운데 20대 총선에서 야당 심판론이 여론조사에서 많이 나오는 결정적 이유는 확연하다. 대통령이 앞장서고 독과점 미디어들이 용춤 추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심지어 3·1절 기념식 연설에서도 국회 심판을 들먹였다. 테러방지법이 절박할 만큼 국가위기라고 부르대던 대통령은 태연히 대구로 가서 ‘진박후보’를 돕는 선거운동을 벌였다. 서울법대 학장 출신으로 행자부 장관을 거친 ‘진박’ 정종섭이 국회 심판을 부르대는 언행은 가여울 정도다.

박근혜는 집권 3년 내내 검찰을 멋대로 부릴 만큼 권력을 만끽했고 국회도 언제나 과반의석이었다. 그럼에도 민생 살리기에 실패한 대통령이 총선에서 ‘야당 심판’을 들먹이는 이 뻔뻔함을 3대 방송사와 조·중·동 신방복합체는 눈 감고 있다. 이미 야권 분열을 부추긴 그들은 야권 연대 움직임도 살천스레 비난하고 나섰다. 그 언론들이 ‘여론’을 내세우며 짐짓 ‘중립’을 가장하거나 ‘야당 심판’을 여론몰이 하고 있다. 정당별 정책 차이도 실종됐다.

3대 방송사와 조·중·동 복합체에서 일하는 언론인들이 섭섭하더라도 충정으로 적는다. 20대 총선정국에서 미디어는 군부독재 시대보다 더 민주공화국의 암적 존재로 드러나고 있다. 역대 어느 총선에서도 언론이 ‘야당 심판’ 따위로 선거의 본질을 오늘처럼 흐려놓진 않았다. 맹성을 촉구한다.


손석춘 |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