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건종 숙명여대 교수·영문학

영국 보수주의 정권의 탁월한 분석가인 앤드류 갬블은 대처 수상의 신자유주의 정부의 정체성을 ‘자유로운 시장/강한 국가’의 역설을 통해 설명한다. 경제, 금융, 복지 등의 정책에서는 시장의 자유와 경쟁 원리의 효율적 구현을 위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정치적 측면에서는 시장과 경쟁의 자유와 소유의 권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과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질서 확립, 공권력과 법치주의의 강조와 같은 보수적 권위주의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즉,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심화시킬수록 강력한 귄위주의적 국가 기구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앤드류 갬블의 이 역설은 대처 정권을 넘어서서, 그 이후 전지구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본질을 간파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물질적 재화 생산의 가공할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부의 집중이 체계적이고 구조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세금의 재분배 기능은 약화되고 정치는 기업과 자본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와 함께 여론을 지배하는 기술은 정교해지고 시민사회의 정치의식은 빈약해 진다.


 문제는 오늘의 상황에서 ‘강한 국가’라는 것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강한 국가가 대립하고 있는 것, 강한 국가가 억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시민 사회의 자발적 역동성이다. 강한 국가는 참여하고 비판하고 개입하는 시민적 능력을 강화하고 신장시킬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제도들을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폐기시킬 것을 요구한다. 그 핵심적 과제로서 미디어를 국가와 자본에 종속시킨다. 미디어는 국민 동원의 기제로 전환된다. 이 단계에서 미디어는 쇼 비지네스와 상품 마켓팅을 모방한다.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는 이 과정의 값진 부산물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자발적 의지로 참여를 박탈당한 대중이 된다. 사회적 이성의 마비이다.


 ‘자유로운 시장/강한 국가’의 역설은 경제와 복지의 부문에서 국가의 기능이 축소되고 이념적 정치적 영역에서 국가 권력이 강화되는 것이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친서민’과 ‘공정한 사회’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기본적인 정체성이 시장 친화적 신자유주의 정부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핵심적인 입법들이 이미 모두 완료되었다. 동시에 ‘강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작업도 비교적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가 공영방송의 변화이다. 이명박 정부에 의해 임명된 공영방송의 사장들이 일관되게 공력을 들인 것 중 하나는 비판적 저널리즘을 약화시키는 것이었다. 이 정부 출범 후 KBS 사장이 바뀌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한 것이 사회 비판 프로그램의 퇴출 혹은 연성화였다. 비판적 저널리즘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것으로 평가받아온 탐사보도팀은 해체되고 기존의 팀장과 팀원은 좌천, 전보되었다. 남아있는 심층 탐사 보도 프로그램은 4대강, 세종시, 천안함의 문제를 다루는 대신 중년여성의 요실금, UFO에 대한 호기심, 점술의 세계를 심층 보도했다. 최근에 MBC사장에 의해서 전격적으로 단행된 <후플러스>에서 <여배우의 집사>로의 변화는 이러한 현상이 한 단계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시민적 능력의 약화, 쇼 비지니스와 상품 마케팅의 모방, 그리고 사회적 이성의 마비가 이 하나의 행위 속에 집약되어 있다.


 공동체적 관심사가 되는 사회적 의제를 공유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가지는 것은 시민적 능력의 가장 중심적인 부분이다. 이 능력이 만들어지고 성장하는 곳이 미디어이며, 그 핵심에 비판적 저널리즘이 있다. 심층 탐사 보도 프로그램은 그 자체가 한국 사회의 민주화의 결실이면서 동시에 중요한 도구였다. 비판적 저널리즘이 권력에 의해 순치되고 미디어가 이 기능을 포기하면, 시민적 능력도 함께 고사된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사회가 ‘강한 국가’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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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