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칼럼+옴부즈만

[옴부즈만]약자에 대한 더 많은 정보와 소통을

한동섭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누군가 도둑이야 소리 지르니 모두가 나를 쳐다봐. 누군가 강도야 소리 지르니 모두가 나를 쳐다봐.” 오래전 서구의 흑인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Funk That’이란 랩 음악의 가사 중 일부이다. 자신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안 좋은 일만 벌어지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는 것이다. 풍자라고 웃어넘길 수 없는 다수의 소수에 대한 사회문화적 폭력을 말하고 있다. 편견이란 무서운 것이다. 그런 일을 실제로 당한다면 얼마나 끔찍할 것인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수원에서 길 가던 젊은 여성이 납치되어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언론이 주목한 것은 경찰의 잘못된 대응이었지만 용의자가 중국교포라는 사실도 적지 않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한 인터넷 공간에는 중국교포 전체를 싸잡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글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중국교포들 중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한데도 교포 모두를 비난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섬뜩할 정도의 극단적 주장도 한다.


수원 살해사건 범인 오모씨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경향신문DB)


이러한 상황에서 경향신문의 보도는 눈길을 끌었다. 경향은 경찰의 잘못된 대응을 짚어가는 한편, 중국교포들에 대해 왜곡된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중국교포를 향한 두 개의 시선’이라는 기사에서 대검찰청 보고서에 근거해 중국교포의 범죄율이 내국인의 범죄율보다 낮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교포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일부의 문제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빌려 일부 중국교포들의 범죄 원인도 교포들의 속성이나 문화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사회문화적 고립에 있다고 보도한다.


이 같은 보도는 언론의 사회적 기능에 부합하는 것이다. 언론은 강자를 감시하고 약자를 대변하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경향은 경찰의 안일한 대응을 질타하며 강자의 문제를 비판했다. 약자를 대변할 때는 합리적 정보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감성적으로 동포임을 강조하거나 어려운 사람들이니 보듬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식이 아니다. 과학적 통계를 제공함으로써 불합리한 의심으로부터 합리적으로 벗어날 수 있도록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맥락의 보도가 유사한 범죄의 재발 방지 대책과도 부합한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근원을 알아야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


보도의 근저에는 잘못된 민족주의 정서는 폭력일 수 있다는 숙고의 흔적이 있다. 경찰이 내놓은 외국인 범죄 예방책에 대해 취재원의 인용을 달아 “편협한 민족주의이자 책임 떠넘기기”라 보도한다. 범죄의 원인을 엉뚱하게도 국적에서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약소 민족의 민족주의는 식민주의와 맞서 싸우기 위한 정당한 저항 이데올로기였지만 강자의 민족주의는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5년 전 한국계 이민자의 버지니아텍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단독범행으로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살육 사건이었다. 사건이 있은 후 우리 사회에는 미국인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는 정서가 지배적이었다. 청와대까지 나서 대책회의를 하고 대통령이 애도 메시지를 보냈다. 애도 메시지 이외에 다른 대책이 없어 곤혹스러워한다는 소식까지 들렸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는 우리의 태도가 의아하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범인이 한국인인 것은 맞지만 한국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가 미국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을 들어 그것은 미국 사회의 문제라고 했다.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의 범인인 조승희씨가 자신의 범행에 대해 밝힌 영상물 (경향신문DB)



당시 우리 사회가 보여준 연대책임 의식은 오랜 기간 공유해온 민족주의 정서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한민족으로 오천년을 살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민족주의는 우리의 당위가 되었다. 문제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회일수록 배타성도 그만큼 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버지니아텍 사건에 대해 강한 연대책임 의식을 느꼈다는 것은 거꾸로 유사한 상황에서 다른 집단에도 그 같은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는 지금 우리가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논제이다.


경향신문의 보도는 보완해야 할 점도 있다. 평상시에 중국교포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기사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특정한 집단이나 사회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경우 사람들은 단편적 사실에 의존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지역 간, 심지어 국가 간에도 일반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약자에 대한 정보의 불평등한 흐름은 그들에 관한 부분적 사실이나 잘못된 정보가 진실인 것처럼 호도될 개연성을 높인다. 약자는 스스로를 대변할 변변한 언로를 확보하기 어렵다.


경향신문은 “한국 사회가 중국교포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게 소통하자”고 제언한다. 소통에는 미디어가 필요하다. 경향을 통해 보다 많은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