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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G20행사장 도자기교체 대서특필하는 방송신문은 과연 언론인가

 이상돈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포폰’이니 ‘대포차’니 하는 명칭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것은 조폭이나 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권의 핵심부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이 ‘대포폰’을 이용해서 무엇인가를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이 요즘 세상을 흔들고 있다. 청와대는 ‘대포폰’이 아니라 ‘차명폰’이라고 해명하나 구차하기 이를 데 없다.

 정권의 감시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지인 명의로 된 ‘차명폰’을 써야 했다면 그나마 납득이 가겠지만 부당하게 권력을 행사한 공직자들이 떳떳하지 못한 휴대폰을 사용했다면 이들이 하려던 일이 어떤 것인지는 짐작할 만하다. 이런 정황을 수사하던 검찰이 슬그머니 수사를 단념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니 밝혀져서는 안 되는 큰 일이 숨어 있다는 의혹이 일 수 밖에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사퇴를 거부한 닉슨의 소식을 헤드라인에 올린 워싱턴포스트

 ‘대포폰‘ 사건은 현 정권의 ‘정직한 생얼굴’을 잘 보여주고 있는 ‘리얼리티 쇼’이다. 덕분에 이명박 정권은 ‘병역면제 정권’ ‘위장전입 정권’에 이어 ‘대포 정권’이란 별명을 하나 더 얻게 됐다. 이런 소리를 들어도 꿈적도 하지 않는 것이 이 정권의 속성이니, 이를 ‘후안무치 정권’으로 규정한 명진 스님의 표현이 가슴에 와 닿는다.

 사건을 일으킨 총리실의 부서는 현 정권의 실세를 배출한 지역 출신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여권 내에서 이 지역 출신에 반기를 들었던 정치인들이 사찰의 표적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이 정권 들어서 총리를 지낸 사람들은 하나 같이 최고의 학력과 최상의 경력을 자랑했던 인물들인데, 바로 그런 총리들 아래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이 엘리트 총리들은 자기 부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문제가 돼도 남의 일인 것처럼 태연하고 있으니 참으로 대단하다.

 ‘대포 폰’ 사건은 닉슨 대통령을 사임으로 몰아간 워터게이트 사건과 흡사하다. 1972년 6월,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건물에 자리 잡은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했던 괴한들이 경찰에 체포됨으로서 시작된 이 사건은 그 배후에 백악관 보좌관들이 있었고 대통령이 사건을 보고받고 은폐를 지시했음이 드러나게 되어 결국 닉슨은 사임하고 말았다. 정적(政敵)을 사찰하려던 시도가 결국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이다.

 ‘대포폰 게이트’는 검찰이 은폐에 가담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는 점에서 워터게이트 보다 문제가 더 심각하다. 하지만 스폰서니 뭐니 하는 추잡한 스캔들로 얼룩져서 갈 데까지 간 한국 검찰에게 ‘대포폰 은폐 의혹’은 별 일도 아닐 것이다. 언론은 또 어떠한가. 워터게이트 보다 더 심각한 권력남용 사건은 젖혀 두고 주요 20개국(G20) 행사장의 도자기 교체를 더 크게 보도하는 방송과 신문을 과연 언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요즘 세상은 미국 영화 ‘웩 더 독(Wag the Dog)’을 연상시킨다. 섹스 스캔들로 인해 재선에 실패할 것을 우려한 대통령이 ‘가짜 전쟁’을 일으켜서 미디어의 관심을 돌려 위기를 탈출하려는 모습을 그린 이 정치풍자 영화의 타이틀은 ‘개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의미다. 대포폰 사건에 뒤이어 터진 검찰의 느닷없는 청목회 후원금 수사에서 그런 냄새를 지울 수 없다. 뜬금없이 들먹이는 개헌도 4대강 같은 실정을 덮기 위한 ‘가짜 전쟁’ 같다. 개 꼬리가 몸통을 멋대로 휘두르는 병적(病的)인 상황이 언제나 끝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