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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푸른 오월의 블루

평일 아침 9시 컴퓨터 앞에 앉은 중학생 둘째의 낄낄거리는 소리에 집 안 분위기가 밝아옵니다. 혼자 뭘 하나 봤더니 온라인수업에 선생님께서 잠깨라고 준비해오신 퀴즈를 선착순으로 풀고 있습니다. 화면에 올라오는 문제를 아는 사람은 마이크에 이름을 재빨리 얘기하고 정답을 말하는 게임입니다. 엉뚱한 답을 이야기한 친구 때문에 아침부터 웃음이 한바탕 쏟아집니다. 좁디 좁은 집 안에 갇혀 하루 종일 지내고 있는, 북쪽의 군대도 두려워한다는 중2가 오랜만에 보여준 밝은 모습에 나머지 식구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자리 잡습니다. 


올해 봄은 그리도 쉽게 오지 않습니다. 


컴퓨터 화면 속 발표를 맡은 친구의 얼굴이 가득히 채워지는 것을 보며 동요의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그렇습니다. 그 친구는 20명 남짓한 시청자가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한 겁니다. 그저 나온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역할을 맡은 것이죠.


볼거리가 워낙 없던 시절, 공중파를 타는 행위는 특권이거나 행운이었습니다. 스타들이 예전 일반인의 자격으로 출연한 TV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보여준 모습이 지금도 때때로 나오는 것을 보면 일반인이 우연히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은 가문의 영광쯤 되는 에피소드였습니다. 


화면 속 아이들의 얼굴을 보다 벌써 수십년 전에 효창운동장에서 열린 어린이날 특별 행사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태권도 시범단과 고적대의 연주, 공수부대의 고공낙하와 같은 화려한 볼거리를 보기 위해 운동장의 관람석은 수많은 어린이들로 채워졌고 파란 하늘엔 자리를 메운 어린이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저 멀리 방송 카메라가 관중을 스케치하기 위해 움직이자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들 옷 매무새를 황급히 만져주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그 커다란 운동장에서 당신 아이가 화면에 잡힐 리 만무하고 혹여 나오더라도 점처럼 작게 보일 것이 뻔한데도 조금이라도 예쁘게 보이고파 준비하던 모습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리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번주에는 부모님들의 얼굴이 화면에 나왔습니다.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의 학부모 총회가 온라인 회의로 열렸기 때문입니다. 그리 많지 않은 숫자의 학생이 공부하는 소규모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부모님의 얼굴을 화면에서 만나자 오랜만에 상봉하는 가족들을 보는 듯 반가웠습니다. 학부모들은 정해진 시각에 모였지만 화상회의 시스템의 사용법이 익숙하지 않아 회의를 시작하는 데 한참이 걸렸습니다. 각자의 집이나 사무실 배경에 저 멀리 뉴욕이나 런던의 특파원을 보는 듯한 분위기로 모인 50명이 넘는 사람들은 화면 속 타일처럼 모여 컴퓨터 화면을 통해 우리집 방안으로 다가왔습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좁은 집 안에 갇혀 있는 데 안타까움을 느끼는 심정은 모든 부모님이 같았습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이렇게 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아이에게 지금의 학년을 한 번 더 다니게 하고 싶다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눈빛이 카메라를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 봄 역시 쉽게 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 어린이날 청와대 방문 행사는 게임 ‘마인 크래프트’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고 했지만 서로 만나는 것은 아직 안전하지 않기에 바이러스가 침투하기 어려운 가상의 세계에 지어진 청와대 맵으로 방문해야 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작품 40만점 역시 <동물의 숲>에서 전시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기술의 발전이 대안을 제공함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다가도 어릴 적 효창운동장의 함성이 귓가에 생생해지며 아련한 슬픔이 밀려옵니다. 


5월은 푸르지만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블루’입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