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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기자칼럼]참을 수 없는 기사의 가벼움

[장도리]2020년 5월 4일 (출처:경향신문DB)


김정은은 건재했다. 쏟아진 오보를 비웃기라도 하듯 여유 있게 웃으며 활보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없다” “사망을 99% 확신한다”는 말로 오보에 불을 지른 미래통합당 태영호·미래한국당 지성호 당선인은 ‘가짜뉴스’를 퍼뜨린 혐의로 고발까지 당했다.


김정은과 관련한 오보를 두고 ‘인포데믹’이란 말도 나왔다. 잘못된 정보가 전염병처럼 확산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인포데믹은 디지털 시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정보의 속도를 타고 더 빠르게 확산된다.


미국 CNN 등이 김정은 건강이상설을 보도하자, 국내 언론도 빠르게 이를 복제하고 확산시키기 시작했다. 경쟁적으로 김정은 위독설을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포털사이트에 기사가 걸렸다. 포털사이트의 언론사 뉴스 채널마다 김정은 위독설이 주요한 자리에 배치됐다. 이쯤 되면 안 쓰는 곳이 바보가 되는 지경이다. ‘의혹’만 제기하는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마구 날아다닌다.


사실 이런 일들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에서 매일같이 벌어진다. 어떤 날엔 포털사이트에서 구독하는 언론사 채널에 걸린 기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할 때도 있다. 손쉽게 쓰고 소비되는 기사들이 인터넷을 떠돈다. 압도적인 휘발성의 세계다.


속보 경쟁, 베껴 쓰기가 언론의 신뢰도를 추락시키고 잘못된 정보를 확산시킨다면, 기자에겐 자기소외와 몰개성화를 낳는다. 기자는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행위를 통해 기자라는 직업을 수행한다. 어떤 관점으로 보고 어떤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지, 취재와 기사 작성 과정에서 축적된 정보와 지식이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개별 기자를 차별화한다. 기사를 쓴다는 것은 노동인 동시에 자신을 표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조회수를 위한 속보 경쟁, 복제된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기자들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된다. 남는 것은 곧 휘발돼 사라질 기사와 몰개성화된 기자들이다. ‘기레기’란 명칭은 이런 환경에서 자라났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기사를 쓰지 않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어떤 곳은 ‘인턴기자’와 같은 비정규직에게 헐값에 전가한다. ‘온라인용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별도로 만드는 것은 언론사 내부에서 기자들을 계층화하고 차별을 만들어낸다.


디지털 시대, 신문과 같은 레거시 미디어는 여러모로 위기다. 위기 타개를 위해선 새로운 전략과 변화가 필요하다. 물론 디지털 시대 독자들을 사로잡기 위한 시도들과 양질의 콘텐츠가 생산되고 있다. 하지만 관성은 힘이 센 법이라, ‘구식 모객행위’도 여전하다. 암울한 시장 환경에서 한정된 인력과 자원을 어디에 집중해야 할 것인지, 결국은 선택해야 한다.


뉴욕타임스 사례가 영감을 줄 만하다. 버즈피드에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이적’한 벤 스미스는 지난 3월 칼럼을 통해 뉴욕타임스의 회생을 주목한다. 뉴욕타임스는 한때 ‘부상당한 거인’이었지만 이젠 디지털 미디어의 공룡이 됐다. 스미스에 따르면 뉴욕타임스는 매각할 수 있는 모든 자산을 매각하고 오로지 콘텐츠에 집중했다. 그 결과 한때 강력한 경쟁자였던 뉴미디어들을 삼키는 ‘디지털 강자’로 돌아왔다.


<이영경 모바일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