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몇 등쯤 하는가? 선진국은 어떻게 하는가? 왜 우리는 사정이 다른가? 언제부터인가 정부나 국회가 내놓은 정책보고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다. 결론을 내놓기 전에 거의 예외 없이 이렇게 묻고 답한다. 무슨 제도개선 보고서를 봐도, 어떤 진흥사업 계획서를 봐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정책 전문가란 미국은 이렇고, 북유럽은 저러니, 우리는 요렇게 합시다 정도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한다.


일반 시민도 이런 자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에서 해외소식을 찾아보는데, 문제의식이 비슷하다. 다만 내용이 미묘하게 다르다. 이 나라는 이렇고, 저 나라는 저런데, 우리가 뜻밖에 잘하고 있다는 내용이 많다. 댓글 반응도 흥겹다. 국뽕이 차올라 주모를 부른다. 이 표현은 댓글로 배운 것인데, 도저히 이것 말고 달리 전할 방법을 못 찾겠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해외소식을 보면 흥미를 끌기 좋은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일단 정보원이 특별하다. 외국 언론사의 보도물,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외국인,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외국어로 작성된 댓글들이 주요 정보원이다. 때로 유치한 경우가 있고, 대체로 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양상이지만, 외부자의 관점을 번역해서 전달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구성도 흥미롭다. 한국 사람으로서 일상적으로 보는 내용을 외부적 시각에서 보면 이러저러한데, 그 내용을 우리가 다시 보니 재미있다는 식이다. 보는 걸 보는 걸 보는 격이라고나 할까. 이는 일종의 해석학적 성찰의 경험을 만들어 낸다. 시민들은 외부적 시선을 통해 쉽게 비교적 관점을 형성할 수 있고, 조금만 생각해도 성찰의 요점도 갖출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다고 믿는 내용을 되새기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성찰의 내용이 문제적이다. 한국이 뜻밖에 잘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거나, 우리가 잘난 점을 알아주니 뿌듯하다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이웃나라가 알고 보니 후진국이었고, 유럽인이 알고 보니 미개하다는 수준을 넘어선다. 유튜브 댓글만 보면, 우리는 이미 선진국이었는데, 미처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타당한지에 대한 의심은 별로 없다. 바로 해당 내용물이 비판하는 신화들, 즉 미국인의 애국심, 유럽인의 교양, 일본인의 특별함과 같은 종류의 한국인의 자부심을 부추기는 중은 아닌지 재성찰이 없다. 결정적으로 어떻게 봐도 부끄러운 우리 현실에 대한 외부 관찰자의 정당한 비판을 소개하는 내용은 찾기 어렵다.


해외소식의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코로나19 대응국면에 일시적으로 불거진 특이한 현상인지, 이 국면을 계기로 자리 잡은 새로운 전환의 시작인지 역시 시간이 지나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만 이 현상이 자기위안의 소동에 머물지 않으려면 몇 가지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언론과 지역 전문가들이 할 일이 있다.


유튜브에서 해외소식이 유행하는 동안, 우리 언론의 국제뉴스는 어땠는지 돌아봐야 한다. 해외 유력 언론사 특파원이 한국에서 꼼꼼하게 찾아 보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특파원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영국과 미국의 특파원이 한국 방역현실을 모국에 전달하듯이, 우리 특파원이 스웨덴이나 일본 방역정책을 검토해 주면 좋겠다.


또한 각 분야의 지역 전문가들이 시민을 향해 더 많은 발신을 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 내용을 보완하는 관찰자적 시선, 비교의 관점, 성찰의 경험을 제공하는 전문가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모호한 국민성이나 국격이란 개념을 동원하는 사이비 해석이 아니라, 역사적 자료와 비교가능한 통계에 근거한 설명을 듣고 싶다. 정부나 국회의 정책보고서에 나오는 평면적인 나열이 아니라, 성숙한 경험과 숙고한 판단에 근거한 주장을 듣고 싶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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