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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자기 표현주의’ 시대

처음 직장에 입사할 시절, 모든 지원자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잔뜩 공개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과 가족에 대한 사항까지도 회사에 주어야 합격의 영예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부모의 학력과 직업, 나의 키와 몸무게를 넘어 거주하는 곳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심지어 혈액형에 이르기까지 온갖 정보를 요구했으니 요즘 기준으로는 상식 밖인 세월이었습니다. 그중 혈액형은 왜 필요한 것이었을까 지금도 의문입니다. 혹 사고가 났을때 직원들 중 수혈이 가능한 사람을 모집하기 위해서일지, 아니면 “김 차장은 소심하다 생각했는데 역시 A형이었군”과 같은 말도 안 되는 억측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의심합니다.


어느덧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늘어나 경쟁이 심해지고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선제적으로 선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단순히 학력이나 과외활동과 같은 세칭 ‘스펙’을 쌓아놓고 자기소개서에 몇 줄 넣는 것으로는 그 사람에 대해 잘 알 수 없으니 일상적 기록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관심사와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자기 표현주의(Self-Expressionism)’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자기 표현주의’는 라이프스타일 공개를 통해 자신의 의지와 관심을 표현함으로써 사회에 신호를 보내는 행위입니다. 


이들의 삶 속 일상적 구매의 행위는 브랜드의 가치에 대한 동조로, 자신이 선택한 콘텐츠의 수용은 지적 취향에 대한 선언으로, 특정인에 대한 지원과 동의의 팔로우 행위는 사회적 연대에 대한 증명으로서 타인에게 인식됩니다. 이 행위들에 대한 종합적 이해는 당사자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자본의 집약체로서 작용될 수 있기에 단편적인 서술인 자기소개서보다 더욱 풍부한 이해의 도구로 쓰일 수 있습니다. 개인이 공개한 라이프스타일이 그 사람을 설명하는 의미있는 데이터가 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이력을 관리한다는 것은 실시간으로 내 인생 기록을 어떻게 남기느냐 하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모든 게시물이 곧 그 사람의 포트폴리오이고 활동 경력이 됩니다. 어떤 동호회 활동을 했는지, 누구와 교류했는지뿐 아니라 얼마나 성실하게 자기 관리를 했는지까지도 보입니다. 이처럼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소셜미디어의 세계에 포장은 있을지언정 거짓말은 할 수 없습니다. 지원서에 “저는 성실하고자 노력하는 아침형 인간으로…”라고 쓰는 것보다 매일 아침 러닝 기록을 올리는 ‘인증’ 사진들이 더욱 강한 메시지가 됩니다. 운동 후 땀 흘린 사진 한 장이 허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수십일, 수백일 꾸준히 인증하면 그 활동은 곧 그의 정체성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표현주의’는 자기 포장에서 시작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성에게 매력을 어필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신뢰를 주기 위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시작합니다. 온라인에 사진을 올리면서 타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취미로 시작한 일도 노력이 깊으면 전문성이 되고, 자랑으로 시작한 일도 꾸준함이 깃들면 정체성이 됩니다. 그렇게 자기를 표현하는 것 자체를 즐기고 그 안에서 자기만의 성찰과 진정성을 찾는 이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내가 보내는 무수한 신호가 주파수가 맞는 누군가에게 공명하기를 바라며 우리는 지금도 일상을 편집하여 자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휴대폰 사진 앱의 필터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나보다 나은 것처럼 그 표현된 자기와 실제의 자아가 얼마만큼 동일할까 하는 문제가 그다음으로 다가올 것 같지만, 개별 데이터의 합은 개인의 삶과 같기에 농도와 밀도가 깊어질수록 표현된 자기가 진짜 내가 되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Mind Mi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