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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최희진의 뉴스 속 인물

‘후불제 민주주의…’낸 유시민 前 보건복지부 장관

“지난번 대통령선거는 사기, MB는 헌법을 잘 모른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50)은 말로 말을 몰고 다니던 인물이었다. 그가 한마디 날카로운 말을 던지면 그의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에선 수백, 수천 마디의 말이 격하게 쏟아져 나왔다. 더욱이 그의 별명은 ‘노무현의 남자’가 아니었던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감정과 평가까지 그에게 투사되면서, 그는 언제나 논란과 소란의 중심에 있었다.


    유시민 전 장관은 ‘돌베개’ 출판사의 빈방 하나를 얻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는 공직을 떠난 후부터 “담배와 별거 중”이라며
         “담배를 안 피우니 커피라도 마셔야 한다”고 했다. 이날도 그는 직접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렸다. 파주 | 박재찬기자


그러나 유 전 장관은 지난해 5월 제18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권력을 잃었다. 유권자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자는 얼마간 침묵해야 한다. 그는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글 쓰고 공부하던 ‘지식 소매상 유시민’으로 돌아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책을 썼다. 총선 이후 6~7개월간 집필한 책이 지난 9일 <후불제 민주주의-유시민의 헌법 에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지난 12일 경기 파주의 ‘돌베개’ 출판사에서 유 전 장관을 만났다. 그의 말은 여전히 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헌법을 잘 모른다”거나 “지난번 대통령 선거는 사기”라고 단언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책에서 ‘불임정당’이라고 비판했던 민주당에 대해서는 “정치적 대안을 조직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며 “심한 절망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참여정부 시절 자신의 언행을 반성하기도 했다. 그는 “일을 소신껏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남들에겐 독선으로 비칠 수도 있는 것이었다”면서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책의 머리말을 보니 1년간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간 칩거나 운둔에 가까운 생활을 했던 건가요.
“칩거, 은둔까지는 아닌데 ‘인간관계는 지성의 무덤’이라고, 정치권에서도 그렇지만 마당발치고 지적인 사람이 드물죠. 지적인 사람이 마당발인 경우도 드물고요.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내가 된다’는 게 마당발의 정체성이고, ‘내가 읽은 것이 내가 된다’는 게 공부하는 사람의 정체성이죠. 똑같이 주어져 있는 시간을 어디에 쓰느냐의 차이인데 두 가지를 다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정치하면서 신세진 분들이 많아요. 동문들이나 저희 팬클럽, 친척들, 문중 어른들도 그렇고…. 일일이 성의 표시를 하기 힘들 만큼 (행사·모임 등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욕하는 소리가 들리죠. 그런데 책을 써서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참 죄송하죠.”


-책의 부제가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입니다. 헌법을 주제로 잡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1995년 무렵에 독일작가 귄터 그라스가 신작 소설 <광야>를 펴내고 텔레비전 인터뷰를 했어요. 그때 ‘헌법 애국주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들었어요. 독일 기본법 그러니까 헌법이죠, 독일 헌법의 정신과 지향, 가치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애국이고 아닌 것은 애국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처음 듣는 얘기였고 많이 와 닿았어요. 그때부터 ‘한국의 87년 헌법이 문장은 좀 못났지만 내용은 좋은데, 이런 좋은 헌법을 가지고도 왜 민주주의를 제대로 못할까’ 하는 고민을 꽤 오래했죠. 우리는 헌법을 너무 몰라요. 뉴라이트는 뉴라이트대로 좌파는 좌파대로, 헌법 속에 정말 귀한 것이 많이 있는데 자꾸 다른 데서 찾잖아요. 어떤 문제에 관해 헌법이 뭐라고 하는지 국민들이 알고 있다면 사회적 합의도 좀 쉬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책에서 ‘후불제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 뜻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신다면.
“대학 다닐 때부터 의문을 가졌던 게 ‘시민혁명을 하지 않고도 민주주의를 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였어요.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는 모두 시민혁명을 한 나라예요. 영국, 프랑스가 그랬고 독일도 그런 과정을 거쳤죠. 그런데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국체, 그 기본질서를 획득하기 위한 목적의식적 투쟁을 대중적으로 한 적이 없어요. 사후적으로 4·19와 5·18, 6·10이 일어났는데 이런 항쟁은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자는 투쟁이 아니고, 헌법에 민주공화국이라고 돼 있는데 왜 헌법대로 안 하느냐고 싸움을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명백히 후불제죠.”


-이명박 정부가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 절차를 짓밟으며 문명 역주행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역주행을 저지하자면 민주주의 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할 텐데, 국민들이 치러야 할 비용이 얼마나 더 남아 있다고 보십니까.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아직 덜 냈고 훨씬 더 많이 내야 돼요. 지난 10년간은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집권하면서 민주주의라는 자동차의 할부금을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동차 소유권이 국민들한테 이전된 것처럼 보였어요. 그건 집권자들이 헌법 정신과 민주적 절차,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려는 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국민들이 그렇게 느낀 겁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나 이 정권의 실세들은 헌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이견이 있고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어떤 규준, 어떤 판단의 근본적인 잣대를 헌법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식도 없고요. 국민들이 헌법적 권리를 행사하려고 할 때는 이것을 위험하게 보죠. 그래서 차를 빼앗아 간 거예요. 10년 동안 몰고 다녔는데 어느날 갑자기 빨간 딱지 붙이고 ‘내가 타라고 할 때만 타라, 내가 가라고 하는 길로만 가라’라는 명령을 내린 겁니다. 그러니까 ‘이건 내 차인데 정부가 왜 이래라저래라 하느냐’ 하면서 길거리로 촛불을 들고 나온 거죠.

그런데 나와 보니까 내 차가 아닌 거예요. 잡아가고 기소하고, 민주화 투쟁이 끝났느냐고 묻는다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도 나왔지만 아직 ‘민주화 이후’가 아니라는 겁니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는 긴 도정의 어느 중간에 와 있을 뿐이지, 완성된 어떤 경지에 갔던 게 아니라는 거죠.”


-어찌됐든 이 대통령은 국민들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출한 대통령입니다. 이 대통령이 ‘자동차’를 빼앗아 갈 수 있는 것도 적지 않은 국민들이 그의 국정수행 노선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럼요, MB 정부는 국민들의 소망이 만들어낸 정부예요. 지금도 MB 정부가 잘해주기를 기대하는 소망이 있어요. 여론조사를 하면 경제 성장이라는 답이 압도적으로 나오고. 그러나 제가 보기에 지난번 대통령 선거는 사기라는 말입니다. 당시 저희는 경쟁하는 당사자였기 때문에 그 말을 할 수 없었어요. 제가 프리랜서 평론가였으면 이건 사기라고 그때 얘기를 했을 거예요. 지금같은 상황이 올 것이라고 대체로 예측가능했다고 보거든요. 이명박 후보의 공약 자체가 실현할 수 없는 공약이었고.”


-‘7·4·7 공약’(7% 경제성장·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대 경제대국)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7·4·7은 명백한 사기예요. 이 대통령의 7·4·7 공약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한반도 대운하도 제가 보기엔 할 수 없어요. 4대강 정비사업을 갖고 장난하는데 안 될 거고요. 사실 이 대통령이 실현하고 있는 공약은 박근혜씨 공약 ‘줄푸세’거든요.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 질서는 세우고. 박근혜씨는 아무 책임이 없는 것처럼 가끔씩 나타나서 좋은 얘기만 하는데, 대통령은 이명박이지만 정책 운영 기조는 박근혜 공약이라고요. 이것이 나라를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넘어가고 있어요. 좋게 말하면 소망, 중립적으로 말하면 욕망, 나쁘게 말하면 망상이 지배하고 있는 거죠. 이것이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막 가게 만드는 기본 동력입니다.”

                                                                               출처/경향신문


-책에서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서든 직접행동에 의해서든” 현 정권의 문명 역주행을 “짧은 기간에 제대로 끝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여름처럼 정부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다시 분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그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지난해에 촛불을 들고 나왔다가 왜 지금은 안 나올까요. 촛불을 들고 나왔을 때는 기대가 있을 때였어요. ‘외치면 들을 것이다, 세게 외치면 많이 들어줄 것이다’라는 게 있었어요. 그런데 이 정부가 처음엔 그럴 것처럼 보이다가 곧바로 반전시켜서 물리력으로 국민들과 전쟁을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이 헛된 기대였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 거죠. 촛불집회라는 것은 백날해봐야 경찰들하고 집회하는 사람만 고달프지, 이 대통령은 들은 척도 안 하지. 그건 유효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거예요.

국민들의 비판의식이나 욕구가 사라졌느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다만 어떤 방식으로 표출해야 할지 모르는 겁니다. 굉장히 위험한 상황인 거죠. 에너지가 갈 데가 없는 거예요. 온라인에서만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계속 이런 식의 의사표시에 머물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니라는 거죠. 국민들이 어떤 형식의 의사표시를 하게 될까, 그건 예측하기 어렵죠. 저는 좀 불안해요. 이 침묵의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폭발의 강도가 세질 것이기 때문에….”


-민주당에 대해서는 “일종의 불임정당”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정부·여당의 인기 하락을 야당이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며 꺼낸 표현이었는데.
“좀 심한 표현이긴 한데…. 민주당을 보면 2002년에 느꼈던 절망감보다 더 심한 절망감을 느낍니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고 나서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후보 교체론 나올 때, 제가 민주당 정책위원회인가 초대를 받아서 세미나를 했어요. 그때 강연 제목이 ‘민주당, 죽거나 혹은 바꾸거나’였어요. 당시 민주당은 죽을 게 거의 확실했지만 지금 민주당은 죽지도 않아요. 보궐선거나 지방선거도 그런대로 할 것이고. 바꿀 수는 있느냐, 절대 안 바꿉니다. 죽을 염려가 없기 때문에 바꾸지 않아요. 그런 회의 때문에 더이상 민주당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하죠.”


-민주당이 대안적 정당으로 기능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시는 겁니까.
“얼마든지 대안을 조직할 수는 있어요. 다만 기본적으로 대안적 정치 세력이 성립한다는 것은 대를 위해서 소를 버리는 풍조가 섰을 때 가능한 것이거든요. 그런 조짐을 전혀 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하는 겁니다.”


-어떤 것이 ‘소’에 해당됩니까.
"다 자기가 잘났잖아요.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민주당 내 정파는 정파대로, 진보신당·민주노동당은 진보신당·민노당대로 자기만 옳아요. 고만고만하게 국민들의 마음에 안 드는 집단이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이 대안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거죠. 대안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없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도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뜻이에요. 민주당은 지금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지금보다는 좋아질 겁니다. 그러니 혁신할 필요가 뭐 있겠어요.”


-국민들이 민주당을 불신하는 원인을 찾다보면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유 전 장관은 참여정부가 시대적 과제에는 잘 대응했으나 정치적으로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참여정부가 정치적으로 후한 점수를 얻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국민들이 만족을 못한 거죠. 외환위기 이후에 국민들이 소망했던 경제적 부가 빨리 쌓이지 못했다든가, 해마다 60만~70만명 이상 쏟아져나오는 청년 노동시장에 충분한 일자리를 빨리 못 만들었다거나 그런 정책적인 부족함이 많이 있었죠. 있는 힘을 다해서 대응을 한다고 했는데, 해 보니까 그게 참 힘들더라고요. 쉽지가 않아요. 국민들은 ‘노무현이 자존심을 조금만 굽히면 국민이 더 행복할 수 있는데 자기 고집만 세운다’고 이해를 했죠. 정말로 소통이 어려웠어요. 또 이러면 언론 탓하는 것 같지만, 기본적으로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는 언론이 매개돼 있잖아요. 그런데 보수언론은 보수언론대로 진보언론은 진보언론대로 약점만을 때렸죠.”


-참여정부의 약점이라면.
“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농담도 있었지만 참여정부는 국가의 역할을 강화하는 진보적인 측면도 있었고, 시장에서의 규제완화라든가 개방화를 진전시키는 자유주의적인 측면도 있었어요. 그런데 진보파에서는 자유주의적인 측면을 공격해서 신자유주의로 몰아가고 보수언론에서는 진보적인 면만 부각해서 친북 좌파다, 퍼주기다로 몰아가면서 말하자면 양쪽에서 치여버린 거죠. 사실 항변할 무엇도 없었어요. 그냥 일방적으로 당했죠. 대통령이 항변해봐야 그 말 때문에 더 많이 당했고, 그러니까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노 전 대통령이나 유 전 장관이나 말씀은 많이 하셨던 것 같은데.
“장관할 때는 거의 안 했잖아요. 능력 부족이었죠, 한마디로(웃음). 소통하고 공감대를 만들어내고 오해가 있으면 푸는 게 실력인데 실력 부족이었던 거죠. 그건 변명할 여지가 없어요. 원래 정치라는 것 자체가 권력 게임이니까 늘 적대적인 환경에 둘러싸이게 마련인데 그 적대적인 환경을 잘 돌파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정권이 망하지 능력이 있는데 왜 정권이 넘어가겠어요(웃음).”


-공직에 있을 때 ‘노(盧)의 남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노 전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친노’ 이미지 때문에 손해본 것도 있지 않았나요.
“마이너스된 것도 있겠지만 노무현 정권이 아니었으면 국회의원이 될 일도 없었고 장관 할 일도 없었겠지요. 좋은 게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도 치르는 거잖아요. 그런 것도 없이 좋은 것만 하겠다는 건, 돈 안 내고 1급 레스토랑에서 잘 먹고 나오겠다는 것과 똑같은 거죠. 맛있는 음식 먹고 나오면 호주머니가 가벼워지는 게 당연하잖아요.”


-참여정부 시절 여당에는 유 전 장관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유 전 장관 자신이 여권 통합에 장애물이 되거나 노 전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까.
“노 전 대통령한테 부담이 왜 안 됐겠어요. 당에서 반대하고 유력한 분들이 청와대에 전화해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입각시키지 말라고 했는데. 그때 저희 집사람이 자존심이 좀 상했어요. ‘당신이 대통령 대신 얻어맞고 싸워줬는데 딱 한 번 대통령이 당신 위해서 싸워주는 것까지 못 견딜 건 뭐 있느냐’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해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랬더니 장관으로 지명을 하셨더라고요. 제가 대통령께 큰 부담을 드렸기 때문에 ‘왜 대통령이 저런 사람을 장관시켰느냐’라는 말은 안 나오도록 해야 되겠다 해서 근신하고 열심히 일했죠.”


-김영춘 전 의원이 2004년 “유시민은 왜 저토록 옳은 이야기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할까”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 이 발언은 유 전 장관을 줄곧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됐습니다.
“제가 워낙 미운털이 많이 박혔으니까 사람들이 그런 거죠. 사람들이 그 말을 들었을 때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여겼으니까 그 말이 먹힌 거죠(웃음). 제가 평소에 행실을 똑바로 했으면 그런 말이 나오지도 않았고, 나와도 기자들이 그렇게 써먹었겠어요.”


-그래도 요즘은 많이 부드러워지셨다고들 하던데.
“기자들과 싸움은 안 하잖아요. 제가 기자들과 하도 많이 싸워서 조·중·동·문(조선·중앙·동아·문화일보)뿐만 아니고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의 저희 당 출입기자들도 저를 안 좋아했어요. 제가 잘 알아요. 그분들이 자기 블로그에 그런 얘기를 올려놓으니까. 그 블로그를 보면서 ‘아 이분들은 나를 안 좋아하는구나, 안 좋아할 만도 하지’ 했어요.”


-정치 무대에는 언제쯤 복귀하실 계획인가요.
“연극 끝났잖아요. 노 전 대통령도 글 올려 놓으셨던데, 새 연속극 시작했는데 지난번 연속극에 나오던 사람이 자꾸 텔레비전에 나오면 시청자가 짜증내요. 우리는 객석 구석에 앉아서 조용히 다음팀 공연을 구경하는 게 도리인데, 지금 하도 엉망이라 이런 책도 내는 거죠. 또 저도 먹고 살아야 되고…. 옛날 유신 때, 5공 때도 쫓겨난 사람들은 원래 출판사로 가서 책 쓰면서 살았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이 사회 속에서 생물학적으로 존재하려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해야 하잖아요. 좀 비참해 보이나(웃음)? 멋있게 얘기하자면 고산 선생, 다산 선생도 귀양가면 책 쓰고 후진을 양성했기 때문에 저도 학생들 가르치고 책 쓰면서 조신하게 귀양살이 하는 거죠.”


-지난 시간을 돌이켜봤을 때,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까.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한 것 같아요. 그때는 마음속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이 가득했어요. 이재오·김문수씨 이런 사람들이 너무 미운 거예요. 뿐만 아니라 옛날에 공안검사 하면서 죄없는 사람 징역 살렸던 사람들이 너무 뻔뻔하게 똑같은 소리를 하고, 다른 당 국회의원을 간첩이라고 했잖아요.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기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런 게 얼굴에 나타나니까 그 사람들도 저를 싫어했죠.

또 하나는 국회의원 배지가 참 귀한 건데 이것을 하찮게 여기는 듯한 언행을 제가 했죠. 저는 사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정치를 하는 게 맞고, 공익을 위해 국회의원 배지를 꼭 버려야 한다면 가차없이 버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노출시키지 말았어야 하는 거였어요. 그런 것이 부지불식간에 노출되니까 다른 국회의원들이 볼 때는 잘난 척하고 건방진 놈으로 보일 수밖에 없죠. 그때는 인간관계보다는 일이 똑바로 되는 게 매우 중요했거든요. 남들이 봤을 때 좋게 보면 열정이고, 나쁘게 보면 독선이죠. 지나고 생각해보면 이렇게 했으나 저렇게 했으나 별 차이 없는 건데. 괜히 그렇게 살았어요(웃음).”


-노 전 대통령을 만나러 봉하마을에 종종 내려가십니까.
“책만 보내드렸어요. 한 번 가서 봬야 하는데…. 1월에 한 번 갔다왔어요. 외로우시니까 가끔 가서 말벗 해드리면 좋죠. 지난해에도 여러 명이 가서 낫질도 하고 톱질도 하고…. 금년에는 가면 뭐를 시킬지 모르겠지만. 노 전 대통령께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 책을 몇권 추천해드렸는데 읽어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식구들은 유 전 장관이 공직을 그만두고 평범한 가장으로 돌아온 것을 좋아할 것 같습니다.
“저희 꼬마가 이제 초등 3학년인데 축구를 좋아해요. 저녁에 일찍 들어가면 축구하러 가자고 그러죠. 딸은 금년에 대학에 들어갔고. 설거지도 점점 더 자주하고 가끔씩 음식도 제가 만들어요.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늘 하던 거였는데 한 6년 못하다가 하려니까 처음엔 양념통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누구나 겪는 자잘한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어요.”


-책도 새로 내셨지만, 앞으로 무슨 일을 하실 계획입니까.
“올해의 계획은 또 책을 써야죠. 이 시대의 모든 가장들에게 가족들과 살아가고 아이들한테 기회를 주는 일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잘난 척하고 제멋대로 살던 놈이 나이 오십 되어서 1년 동안 지출과 수입을 어떻게 맞출지 고민하고 있어요. 남들은 30대에 하는 고민인데(웃음). 우리 집사람은 박사고, 저는 석사인데도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둘 다 직장이 없으니까(웃음). 금년에는 사람들이 읽으면서 한쪽한쪽 넘길 때마다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무엇을 쓰면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88년 이해찬 보좌관으로 정계 인연
두차례 국회의원, 토론 잘하기로 유명

자칭 ‘지식 소매상’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1959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78년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고, 80년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을 맡아 반정부 투쟁을 주도했다. 83년 ‘서울대 학원프락치 사건’에 연루돼 구속 수감됐는데 당시 그가 법원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던 ‘항소 이유서’는 지금도 명문으로 거론될 정도로 화제가 됐다.

정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88년 이해찬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부터다. 2002년 개혁국민정당의 대표집행위원으로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3년 고양시 덕양구갑에서 실시된 보궐선거를 통해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재선됐다. 2006년 44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을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유 전 장관은 토론을 잘하기로도 유명하다. 2000년엔 MBC <100분 토론>의 진행자를 맡아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저서로 <거꾸로 가는 세계사>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대한민국 개조론> 등이 있다. 현재 경북대에서 ‘생활경제’ 과목을 강의하고 있으며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파주 |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 | 사진 박재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