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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최희진의 뉴스 속 인물

민간시설 ‘열린여성센터’ 서정화·최영미씨

ㆍ“정말 여성 노숙인이 있냐고요? 불황 탓인지 20대가 많아졌어요”

노숙인 중에 처지가 딱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중에서도 여성 노숙인은 남성 노숙인보다 취약한 존재다.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고, ‘여자가 얼마나 게으르면 거리로 나왔겠느냐’는 시선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책 입안자들에게 여성 노숙인 문제는 간과되기 일쑤다. 노숙인 대다수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열린여성센터’는 서울역 근처에 ‘일·문화카페’라는 공간을 마련하고 여성 노숙인들에게 일감을 제공, 자립을 돕고 있다.
                  붕어빵을 구워 파는 것도 센터 식구들이 하는 부업 중 하나다. 서정화 소장과 최영미 아나운서(왼쪽부터)가 
                                                 센터 입소자가 만든 붕어빵을 먹고 있다. |박재찬기자


서울 용산구 서계동 ‘열린여성센터’는 노숙인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노숙인을 지원하는 쉼터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거리에서 지내던 단신 여성과 자녀를 동반한 모자 가정 등 3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여성 노숙인을 구제하는 쉼터는 많지 않다. 열린여성센터가 있어 여성 노숙인들은 겨울 추위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열린여성센터에 진짜 고비는 겨울이 아니라 봄이다. 날이 풀리면 더 많은 노숙인이 거리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서울신학대 이봉재 교수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09년 2월 현재 전국 노숙인구는 2008년 8월보다 약 20% 증가한 5463명으로 집계됐다. 경기 침체가 지속될 경우 이 수는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

지난달 26일 열린여성센터의 서정화 소장과 센터를 후원하고 있는 프리랜서 아나운서 최영미씨(전 KBS·이하 최)를 만났다. 서 소장은 “봄이 되면 노숙인이 크게 늘 텐데 서울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며 “민간 복지기관의 시설 증축을 지원하지도 않고 시립시설을 확충할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들어 20대 여성의 입소 문의가 늘고 있다”며 “이른바 ‘88만원 세대’ 문제와 관련되는 현상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숙인 문제 중에서도 특히 여성 노숙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성수동에서 노동운동을 10년쯤 하다가 1997년부터 노숙인 일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5년간 일했던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는 노숙인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곳이었어요. 거리에 나가면 여성 노숙인을 만나기도 했는데 을지로에서 3~4년씩 노숙하신 분도 계시더군요. 같은 여성이다 보니 돕고 싶다는 마음이 더 많이 생겼어요.

여성 노숙인 중엔 정신질환이 심하신 분도 많은데 그런 분들을 일반적인 쉼터에서 보호하기엔 쉼터의 지원이 너무 열악했습니다. 정신 보건에 대한 이해도 낮았고. 다른 지원은 못하더라도 잠자리라도 편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여성 쉼터를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다시서기를 그만뒀어요. 노동운동을 오래했기 때문에 돈은 별로 없었지만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서계동에 보증금 5500만원, 월세 55만원짜리 집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2004년 4월 열린여성센터를 시작한 거죠.”


-최 아나운서는 어떤 인연으로 열린여성센터를 후원하게 됐습니까.

“(최) 서 소장님이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에서 남성 노숙인 중심의 일을 하시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셨어요. 노숙인들의 실태를 전해주셨죠. 그러다 ‘여성 노숙인 일을 하게 됐다. 한 번 찾아오라’고 해서 놀러가서 보고 그때부터 일을 같이하게 됐어요.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 경기 불황으로 노숙인이 늘었다는 통계가 나오는데요. 현장에서 체감하는 분위기도 실제로 그렇습니까.
“최근 저희 센터에 입소를 문의하는 건수가 굉장히 많이 늘었어요. 입소자를 제외하고, 입소시키지 못한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 통계를 내봤습니다. 2008년 10월에 18명, 11월 19명이었는데 12월엔 35명, 2009년 1월 33명, 2월은 20일 시점까지 24명이었어요. 지난해 가을보다 2배가 늘어난 겁니다. 센터가 좁아서 지금도 거실과 복도까지 잘 수 있는 곳은 다 누워서 자고 있거든요. 여력이 있으면 받겠는데 그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노숙인은 남성이 많기 때문에 여성 노숙인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듯싶습니다.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이 ‘거리에서 어떻게 여자가 노숙을 하느냐. 정말 여자가 있느냐’는 겁니다. 사실 거리에서 노숙인 현황을 파악하는 건 제한적이에요. 오늘 밤엔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내일 밤은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세어봤을 때 최근 서울의 주요 노숙 지역에 있는 여성은 21~25명으로 파악됩니다. 이들은 눈에 잘 띄지 않아요.

2007년에 서울지역 여성 쉼터 입소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어요. ‘거리에서 오는 성적 위험에 어떻게 대처했느냐’고. ‘안 보이는 곳에 숨는다’가 35% 정도였어요. 결국 여성 노숙인이 존재하긴 하지만 우리가 노숙인 현황을 파악하는 지하도 같은 곳엔 없는 거죠. 저희 식구들한테 주로 어디 있었느냐고 물어보면 경비가 없는 작은 빌딩의 계단, 지하철역의 장애인 화장실, 24시간 개방하는 병원 대합실, 교회를 다녔던 분들은 철야 예배 장소에 있었다고 해요. 눈에 거의 띄지 않으니 얼마나 있는지 저희도 알기 어렵습니다.”


-여성 노숙인들이 거리에서 맞닥뜨리는 가장 심각한 위험은 성폭력이겠지요.
“아무래도 그렇죠. 하지만 그런 일이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건 아닙니다. 대부분 숨어지내고 거리에서 남자들과 같이 지내는 분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여성 노숙인을 성추행하는 사람=남성 노숙인’이라는 등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꼭 그런 건 아니거든요. 제가 얘기를 잘못하면 우리 아저씨들이 여성 노숙인을 성추행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려서 다루기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있어요.”


-지금까지 센터를 거쳐간 여성 노숙인들의 수는 어느 정도인가요.
“짧은 기간 왔다가는 분까지 합하니까 550명 가까이 돼요. 그중에 가족과 재결합하거나 자립해서 나간 분이 50% 정도이고 나머지 분들은 쉼터에 적응하지 못해 나가거나 병원에 입원한 분도 있죠. 통계적으로 봤을 때 남성들보다 여성의 자립률이 높아요. 남성들은 쉼터 퇴소 사유를 봤을 때 가족 재결합과 자립을 다 합쳐도 30%가 채 안돼요. 쉼터를 나간 뒤에 결과적으로 자립했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 이후는 모르니까요.”


-현재 센터에 입소해 생활하는 여성 노숙인은 몇 명이나 됩니까.
“45명까지 함께 생활했는데 지금은 30명 정도만 있어요. 원래는 집을 두 채로 운영했어요. 장기적으로 생활하면서 치료받고 자활할 수 있도록 하는 열린여성센터가 있고, 다른 하나는 잠깐 머물 수 있는 응급 상담 보호센터 ‘우리들의 좋은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서계동이 재개발되면서 열린여성센터의 집주인이 집을 비워달라고 하더군요. 1년을 버티다 어쩔 수 없이 빼주고, 지난해 5월 ‘우리들의 좋은집’으로 합치면서 식구가 30명으로 줄었죠. 나머지 15명은 월세를 얻게 하거나 그룹홈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룹홈은 저희 센터에 있던 식구들이 밖에서 함께 살면서 사회적응 훈련을 하는 곳인데 지금 6명이 같이 살고 있어요.”


-여성들이 노숙인이 되는 데는 어떤 이유들이 있습니까.
“저희 센터 이용자들의 통계를 내보면 결혼하셨던 분이 85% 이상이에요. 결혼을 했다가 현재 싱글이거나 아이와 같이 온 모자 가정이 있는데 싱글의 과거를 들어보면 대체로 가정폭력으로 이혼을 했어요. 모자 가정도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온 겁니다. 그 다음이 정신질환이나 신체적 질환, 세번째가 실직 등 경제적 이유예요.”


“봄 되면 더 많이 거리로 나올텐데 숫자가 적다고 내버려둘 순 없죠”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은 노숙까지 가지 않고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에서 지낼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정책 담당자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하죠. 하지만 제도라는 건 항상 사각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가정폭력 쉼터가 다 포괄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일단 가정폭력 쉼터는 응급하게 남편의 폭력을 피해서 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주거가 노출되지 않는 게 중요하고요. 쉼터에서 6개월 정도 지내면서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자립하시도록 하는데, 이혼한다고 다 위자료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다음에는 갈 곳이 없는 거죠. 그래서 노숙인시설로 오는 경우가 많아요.”


-센터 식구들의 연령대는 대체로 어떻습니까.
“40~50대가 과반을 차지하고 30대가 30% 정도였어요. 최근에는 20대가 꽤 많이 오고 있어요.”


-20대 여성이 늘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이른바 ‘88만원 세대’, 20대 실업문제와 연결되지 않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노숙하는 20대 중엔 장기 실업자였던 친구가 많아요. 집이 자식들을 먹여살릴 만큼 넉넉하면 모를까, 집에 머물기가 힘든 거죠. 그래서 집을 나오는 거예요. 건강하고 일 잘하는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겠지만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갖고 있는 친구들도 있거든요. 면접에서 자꾸 떨어지고 아르바이트를 해도 적응하지 못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노숙으로 내몰리는 겁니다.”

“(최) 제가 일하는 곳 1층에 패스트푸드점이 있는데 요즘 영업을 24시간 하잖아요. 밤에 보면 젊은 여성이 많이 들어가서 의자에 앉아 졸고 있어요. 그렇게 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러 나가는 거죠. 서울에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해서 월세 내려고 했다가 일자리를 못 구하면 보증금 까먹고 갈 데가 없어지는 거예요.”


-최근 입소한 20대 여성의 사례가 있습니까.
“일주일 전쯤 경찰이 27세 여성을 데리고 센터에 왔어요. 왜 집을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취업하려고 서울에 왔는데 서울이 지방보다 취업하기 더 어렵다’고 하더군요. 이 친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사람과 눈을 안 마주쳐요. 우울증이 아닌가 우려하고 있어요. 얼마 전엔 이 친구가 갑자기 혼절을 했어요. 놀라서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병원에서 ‘의식을 잃었다기보다는 본인이 일부러 의식을 놓고 있는 것 같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그만큼 마음의 병이 깊어졌다는 거죠.”


-노숙인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정부 차원의 정책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서울에 민간이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는 몇 군데 있습니까.
“모자 가정만 갈 수 있는 곳이 3군데 있고 부자 가정이 갈 수 있는 시설도 한 곳이 있어요. 저희는 모자 가정과 독신 여성이 올 수 있고요. 정신질환 여성이 갈 수 있는 곳도 있습니다. 대부분 20~30명 규모이기 때문에 시설 전체를 통틀어도 입소할 수 있는 사람은 240~250명 정도입니다.

사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집을 잃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고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난해 오히려 여성 쉼터 2개가 문을 닫았어요. 서울에서 수용 인원이 30명 이상인 시설을 하나 지으려면 적어도 396.6㎡(약 120평)가 필요해요. 1인당 13.22㎡(약 4평)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서울에서 이 정도 하려면 10억원은 있어야 해요. 정부 지원도 별로 없는데 누가 100평이 넘는 노숙인 건물을 짓겠어요. 어려움이 많죠.”


-열린여성센터도 새로 짓고 있는 센터 건물의 공사비를 모금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월세로 살다가 전세로 옮겨보려고 했는데 전세 자금을 겨우 마련하니까 이제는 아예 집을 사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중간에 법 조항이 신설됐거든요. 노숙인시설은 사회복지시설이 아니었는데 사회복지사업법에 ‘노숙인보호’ 조항(2004년 1월 개정)이 들어가면서 사회복지시설이 됐어요. 이에 따라 ‘법인은 사회복지사업의 운영에 필요한 재산을 소유하여야 한다’는 조항(사회복지사업법 23조 1항)의 적용을 받게 된 겁니다. 시설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부분에선 맞는 지침인데 저희처럼 돈이 없는 기관에선 어려운 거죠.”

“(최) 서계동이 재개발 지역이다 보니 집값이 많이 올랐어요. 돈을 아무리 모아도 오르는 시세와 재개발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거예요. 서울에서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자꾸 줄어들고 아무리 모금을 해도 되지 않는 상황이 온 거죠.”


-노숙인 쉼터는 지역 주민들한테도 환영받기 어렵지 않나요.
“당연히 안 좋아하시죠. 서계동에 이사왔을 때도 처음 2년은 힘들었어요. 지금은 다행히 같이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주민들이 많이 봐주시지만. 초창기엔 쓰레기를 봉투에도 넣지 않은 채 저희 집 앞에 갖다 놓으셨어요. 그래서 저희가 직접 봉투에 담고 청소했어요. 계속 치우니까 한동안 갖다 놓던 분들도 점차 안 하시더군요.

지금 어떤 쉼터 한 곳이 중랑구에 건물을 사서 이사를 했어요. 그런데 구청이 지역주민 민원을 이유로 들면서 허가를 안 내주는 겁니다. 그래서 1년 넘게 시설 허가를 못 받고 운영하고 있어요. 저희도 새 건물이 들어서는 곳의 구청이 허가를 안 내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습니다.”


-신축 건물의 공사는 어느 정도 진행됐습니까.
“자선 음악회 ‘쉼표를 위한 에튀드’를 열어서 모은 성금이 있고 여기에 서계동 집의 보증금, 약간의 은행 대출 등을 보태서 76㎡(23평)짜리 집이 있던 작은 터를 하나 샀어요. 여기서 40명이 살 수는 없잖아요. 그 집을 허물고 재건축을 시작했죠. 게다가 내년 1월1일부터 저희도 노숙인시설의 법정 면적 기준(1인당 13.22㎡)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합니다.

다행히 지난해 1월 좋은 건설회사를 만났어요. 그쪽에서 ‘일단 짓는 것부터 먼저 시작하겠으니 돈은 천천히 모아달라’고 하셨는데 연말 되면서 건설회사들이 어려워졌잖아요. 3주 전에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 짓는 것을 잠시 멈춰야 할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건축이란 게 한 번 멈추면 다시 시작하기 어려운 것이라서 공사를 완전히 중단하지는 못하고 띄엄띄엄 하는 식으로 버티고 있어요.”


 

-센터의 재원은 어떻게 이뤄져 있나요. 별도의 후원은 없습니까.
“정부에서 운영비를 지원받기 때문에 재정의 60%가 정부 지원이고 40% 정도가 민간의 후원이에요. 민간 후원은 ‘사회복지 공동모금회’나 기업에 제안서를 내서 받는 기금과 5000원, 1만원씩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회원들의 회비가 있어요. 저희도 연말을 기대했어요. 기업들이 이웃돕기 성금을 보통 연말에 기부하니까. 하지만 소규모 시설엔 돈을 쓰려고 하지 않더라고요. 기업들이 기부금을 낼 때는 기본적으로 홍보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작은 사회복지시설은 그런 게 적으니까. ‘하는 일의 취지는 좋지만 윗분들이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부드러운 답변으로 여러 번 거절당했죠.”


-노숙인 지원 활동의 궁극적 목표는 자립일 텐데, 노숙인이 자립하는 데 필요한 요건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부 차원에서 주거 지원 사업이 있으면 자립해서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죠. 대한주택공사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매입 임대주택을 지원하고 있는데 노숙인 쪽에도 300가구를 할당했어요. 노숙인 주거 지원사업이 중요했던 이유는 독신인 사람도 입주할 수 있게 했다는 겁니다. 임대주택 정책이란 게 부양가족이 있어야 점수가 높아져서 우선순위가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임대주택 제도가 있어도 노숙인은 사실상 해당이 없었던 거죠. 지금은 300가구 입주가 끝나서 매입 임대주택 지원이 중단되긴 했지만 저희한테 매우 중요한 정책이었죠.”

“(최) 노숙인 문제에 관해 아무리 의논해도 답이 안 나오는 건 제도 때문이에요. 공무원이 잘못하거나 담당자가 소홀해서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고요. 어느 한쪽으로 책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서로 떠밀 수 있는 위치에 열린여성센터가 놓여 있어요."


-정책 담당자들 간에 책임 소재가 어떻게 분산돼 있습니까.
“ ‘부랑인 및 노숙인 보호시설 설치·운영규칙’이란 게 같은 보건복지부령으로 되어 있는데도 노숙인은 지방자치단체 이양 사업이고 부랑인은 중앙정부 사업이에요. ‘우리들의 좋은집’을 세웠을 때도 복지부에서 지원을 받기로 했는데 2005년 1월 지방 이양 사업으로 변경되면서 정부 지원을 못 받은 적이 있어요. 예산은 2004년 11월 이미 서울시로 넘어간 거예요. 시에선 예산 편성이 안돼 지원할 수 없다고 하고. 노숙 문제는 님비현상이 심한 분야잖아요. 지자체에선 좋아하지 않는 거죠.

이런 사업은 중앙정부에서 하는 게 맞아요. 기존 사회복지시설처럼 노숙인시설도 민간이 땅을 제공하면 정부가 건물을 지어서 시설이 운영되도록 해야 하는데 중앙정부에선 손을 떼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민간시설을 짓는 데 돈을 줄 수 없다고 하고요.”


-경기 침체가 지속된다면 노숙인 수가 증가할 텐데요.
“내년부터 노숙인시설의 법정 면적 기준이 적용되면 쉼터에서 지내던 노숙인들도 다시 거리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수용 인원 1인당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면적을 충족시킬 수 없는 작은 시설은 기준선을 넘어가는 인원을 내보내야 하잖아요. 그럼 서울시는 이 문제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하는 겁니다. 민간이 건물 짓는 것을 보조하지 않겠다면 시립시설을 늘려야 하는 거예요.

금 노숙인 시립시설로는 시에서 건물을 사서 설치한 ‘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가 있고 서대문에 있는 ‘구세군 브릿지센터’도 시에서 직접 재원을 마련한 거죠. 하지만 서울시는 다른 시립시설을 추가한다는 계획이 없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08년 6월 통계를 보면 노숙인 수가 4448명이에요. 그런데 올 2월 전수조사를 했더니 지난해 6월보다 915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왔어요. 저희는 폭풍전야라고 보고 있습니다. 겨울은 너무 추우니까 어떻게든 버틸 것이고, 봄이 되면 거리로 더 많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럼 지자체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 아닙니까.”


-노숙인 문제를 정책적 차원에서 다뤄야 할 현안으로 여기기보다, ‘게으르고 무능한’ 개인들의 불행으로 치부하는 편견도 사태 해결의 장애물인 것 같습니다.

“(최) 여성 노숙인 문제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여자가 오죽하면 길에 나오겠느냐. 어디 가서 설거지라도 하지’ 다 그렇게 얘기해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오죽하면 길에 나왔겠어요. 나왔을 때는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으니까 나왔을 거란 말이죠.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도 있고 신용불량에 경제 능력이 없는 건 물론이고, 법적·사회적으로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살려야 하잖아요. 그 수가 몇 명 안된다고 죽으라고 할 수는 없고요. 우리가 모른 척 내버려둬서는 해결될 수 없는 일입니다.”



 

열린여성센터는
여성노숙인 자립 돕는 쉼터…2004년 오픈 550명 거쳐가

‘열린여성센터’(소장 서정화)는 여성 노숙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자활을 도울 목적으로 2004년 4월 서울 용산구 서계동에 문을 열었다. 현재까지 여성 노숙인 550여명이 이곳을 거쳐갔고 이 중 50%가 가족과 재결합하거나 자립에 성공했다. 직원은 사회복지사 6명을 포함해 모두 7명이 일하고 있다. 센터는 미술·음악치료 등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정신과 전문의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입소자들을 무상으로 진료한다. 센터는 자립을 원하는 노숙인들이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부업도 제공하고 있다.

월세였던 센터 건물을 전세로 옮기기 위해 2004년 11월부터 지난해까지 자선 음악회 ‘쉼표를 위한 에튀드’를 39회 개최하기도 했다. 최영미 아나운서가 기획, 진행을 맡았으며 뜻을 같이하는 예술인 350여명이 무료로 출연했다. 그러나 전세로 옮기는 일은 사실상 무산됐다. 사회복지시설은 법인 소유여야 한다는 법 조항이 신설됐고 수용 노숙인 1인당 13.22㎡를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이 2010년부터 적용되기 때문이다. 센터는 현재 이사를 하기 위해 건물을 구입, 재건축을 하고 있으나 건축비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6-301-251526 또는 1006-401-251523 (예금주:열린여성센터)



<글 최희진 사진 박재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