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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최희진의 뉴스 속 인물

“시민 기본권 물 장삿속 막았지만 안심은 일러”

ㆍ광주시 ‘상수도 위탁방안’ 제동 걸은 대책委 석주연·신천호씨

상수도 사업이 민영화되면 하루 수도요금이 14만원에 이를 것이라는 ‘괴담’이 인터넷에 떠돌던 때가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논란이 됐던 지난해 여름의 일이다. 광우병 이슈가 사그라지면서 수돗물 괴담은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괴담의 원인이 됐던 상수도 민영화의 흐름은 현재진행형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경기 광주시다. 광주시는 2008년 3월 한국수자원공사(이하 수공)와 기본협약을 체결하고, 상수도 시설의 운영·관리·요금 업무 등을 수공에 위탁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이른바 ‘상수도 민간위탁’이다. 위탁 사업비 2664억원을 들여 광주시 상수도를 20년간 수공에 넘긴다는 게 골자다.

그런데 광주시의회가 지난달 22일 이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본회의에 상정된 ‘상수도 위탁운영계획 동의(안)’를 4 대 4로 부결시킨 것이다. 시의회가 민간위탁 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수도 민간위탁 반대 운동의 중심엔 광주시민들이 있었다. 지난달 31일 ‘상수도 민영화 반대 광주시민 대책위원회’의 석주연 집행위원장(사진 오른쪽)과 신천호 집행위원(왼쪽)을 만났다. 이들은 동의안 부결은 예상하지 못한 낭보였지만 안심할 수도 없다고 했다. 광주시가 동의안 의회 상정을 다시 추진할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부결을 예상했습니까.
석주연(이하 석)=전혀요. 지난해 11월18일 상임위원회가 열렸을 때 ‘부결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3 대 2로 가결됐거든요. 본회의에서도 통과될 것으로 생각했지요. 본회의를 방청하려고 했는데 회의장을 새벽부터 봉쇄했어요. 방청을 못하게 한 거죠. 통과시키려고 작정을 했구나 생각하고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대책위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된 겁니까.
신천호(이하 신)=사실 저희의 대응이 늦어서 걱정이 컸습니다. 시가 상수도 민간위탁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해 9월까지 몰랐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지난해 3월 이미 수공과 기본협약을 맺었더군요. 8~10월이 위탁 타당성 검토 기간이었는데 당시 시에 민간위탁 계획에 관해 문의했더니 ‘지금 당장 시행할 생각은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수공과 기본협약을 맺은 지자체가 워낙 많았고(2008년 기준 53곳), 경기 포천·의왕시도 기본협약을 맺었으나 일에 진척이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조차 물 민영화의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어요. 더욱이 시에서 계획이 없다고 답변하는 바람에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거죠. 그런데 지난해 10월 타당성 검토용역 보고가 끝나자마자 시가 한달 안에 주민설명회까지 일사천리로 치러낸 겁니다.


-광주시가 민간위탁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시민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석=민간위탁 반대 서명운동을 하면서 만난 시민들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특히 연세 많은 분들께서 분노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르신들은 물만은 요금 걱정 크게 하지 않고 써오셨잖아요. 물이 기업에 넘어가는 일은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렇다면 시가 주민들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는 뜻인데.
석=주민설명회가 열린 것이 지난해 11월28일이에요. 12월10일까지 주민 의견 수렴기간을 두고 그 이후엔 시의회에 동의안을 상정하는 상황이었어요. 저희는 다른 루트로 알아봤기 때문에 9월에나마 민간위탁 계획을 알게 됐지만 시민들은 민간위탁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책위를 꾸리자마자 공청회를 요구했어요. ‘사업설명회 수준으로는 안 된다’ ‘민간위탁을 시작한 다른 지역에서 문제가 됐던 부분에 대해 의견수렴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그러나 시는 답변이 전혀 없었습니다. 시의회에 동의안을 그대로 넘겨버렸어요. 시민 의견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강행하겠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시민을 대의해야 하는 시의회라도 공청회를 열라고 요구했는데 이 역시 이뤄지지 않았어요.


-광주시가 민간위탁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광주시는 ‘상수도 사업에 돈이 많이 들어가고 관리하기도 어려운데 전문기관인 수공에 맡기면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투자도 많이 할 수 있다’고 말해요. 이게 상수도를 민간에 위탁해야 한다는 첫번째 이유입니다. 두번째는 유수율 제고예요. 유수율은 수돗물 총생산량 중 실제로 요금이 걷히는 수량의 비율을 말하는데 현재 광주시의 유수율은 83% 정도예요. 수공에 위탁하면 이것을 88%로 올릴 수 있다는 주장이죠.

하지만 유수율 83% 수준이면 지방상수도치고는 높은 편입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광주시 상수도 사업이 적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2003년부터 상수도 사업 당기순이익은 계속 흑자였어요. 2007년도 예산 이월액이 130억원 정도였고요. 투자할 여력이 있는 겁니다. 예산이 부족하면 환경부에서 4.5% 정도의 저리로 자금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상수도를 지자체가 직접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있는데도 시는 그것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죠.


-지자체에선 ‘수공은 공기업이니 민간위탁은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전 세계 민영화가 이런 수순으로 진행됐습니다. 처음부터 민간기업에 넘긴 것이 아니라 우선은 공기업에 넘겼어요. 지금 시점에서는 민간기업에 바로 넘길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고, 넘긴다 해도 국민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유화로 가는 단계인데 말만 ‘일부 위탁이다’ ‘공기업에 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거죠.


-민간위탁을 실시하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계약을 중도해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신=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중대한 사유가 수공이나 지자체에 발생했을 때 해지할 수 있는데 그런 상황은 드물어요. 가장 큰 문제는 수공이 지자체와 실시협약을 맺은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정수장 폐쇄라는 겁니다. 정수장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상수도를 생산하는 시설인데 수공이 정수장을 폐쇄하면 지역 주민들은 수공이 생산하는 광역상수도를 마셔야 합니다.

광주시내에 정수장이 두군데 있는데 민간위탁이 시작되면 이곳도 폐쇄된다고 봐야겠죠. 지자체가 정수장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수십년간 들인 재정, 혈세가 순식간에 날아가는 겁니다. 20년의 민간위탁 계약이 끝나도 한번 폐쇄한 정수장을 복구하는 게 쉽지 않으니까 주민들은 계속 수공이 만든 수돗물을 사먹어야 하는 거죠.


-광주시가 위탁계획 동의안을 다시 의회에 상정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신=2월에 위탁계획 동의안을 시의회에 재상정한다는 이야기가 한나라당 시의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어요. 저희는 1월부터 다시 대응을 시작할 계획이에요. 저희가 요구하는 것은 시의회가 위탁계획 철회안을 시장에게 제출하라는 겁니다. 시장이 철회안에 서명한다면 민간위탁을 사실상 포기하게 되는 것이죠. 저희는 철회안 제출을 목표로 싸울 생각입니다.

석=공사에 일단 위탁하면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시민사회와 광주시가 지혜를 모아 내실있는 대안을 마련하자는 게 저희 입장이에요. 물을 주민들의 기본적 권리로 보려는 의지만 있다면 대안을 찾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일이 한결 쉬워지지 않을까요.

“물산업 강국되자” 논리로 추진
민간위탁은 민영화의 첫 단계

한국수자원공사와 실시협약을 맺고 상수도를 위탁한 지방자치단체는 2008년 12월 현재 전국 164곳 중 13곳이다. 2004년 첫 테이프를 끊은 논산을 비롯해 정읍, 사천, 예천, 서산, 천안(공업용수), 고령, 금산, 동두천, 거제, 양주, 나주, 단양 등이다. 지자체와 수공의 위탁 계약은 ‘기본협약-위탁 타당성 검토-위탁심의위원회 심의-동의안 의회 상정-실시협약’ 순으로 이뤄지는데, 기본협약을 맺은 지자체는 2008년 기준으로 53곳이다.

상수도 위탁을 추진하는 지자체들은 ‘민간위탁은 민영화와 다르다’고 말한다. 상수도 시설의 소유권을 지자체가 유지하고 있고, 사기업이 아니라 수공이라는 공기업이 맡아 운영하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민간위탁은 민영화의 첫 단계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7년 7월 환경부가 발표한 ‘물산업 육성 5개년 세부 추진계획’을 보면 이 나라의 상수도 사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부는 이 보고서에서 물은 공공재가 아니라 ‘경제재’이며, 상하수도는 공공서비스가 아니라 ‘산업적 서비스’라고 천명했다.

이어 보고서는 상하수도 민영화가 국제적 추세라며 그 근거로 “세계 인구의 9%가 민간기업에 의해 상하수도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뒤집어 말하면 세계 인구의 91%는 여전히 정부가 생산·관리하는 물을 마시고 있다는 뜻이지만 보고서에서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보고서는 우리도 “세계적 수준의 물산업 강국”이 되기 위해 상수도를 유역 단위로 광역화해 관리하고, 현재 지자체가 관할하는 상수도 사업 구조를 “공사화·민영화·위탁” 등의 형태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탁과 민영화가 실제 효과 측면에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환경부 보고서처럼 물을 ‘산업’으로 보는 인식의 기원은 1990년 등장한, 저 유명한 ‘워싱턴 컨센서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기본 내용은 무역·산업·금융 분야에서 정부 규제를 철폐하고, 자본·상품·서비스가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과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특징 중 하나가 자연의 상품화다. 삶을 영위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물과 곡류 등의 수급을 소수의 다국적기업이 주무른다. 정부보다 사기업이 대규모로 운영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자체들도 효율성 논리에 따라 상수도 민간위탁을 추진하고 있지만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수공이 상수도에 투자한 만큼 수익을 거둬들이려면 수도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수공이 대신 투자한다고 해서 지자체가 재정을 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지자체는 물가인상률을 반영해 수공에 위탁 운영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수공이 실시협약을 체결하면서 계약서에 비밀유지 조항을 덧붙여, 각 지자체 간의 계약 조건을 비교·검토할 수 없게 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상수도 민영화 반대 광주시민 대책위원회’의 신천호 집행위원은 “지자체 주민들이 낸 세금은 지역을 위해 재투자되어야 하는데 특정 기업의 운영대가로 넘어간다는 것은 혈세 낭비”라고 지적했다.

 

<사진 남호진·일러스트 김상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