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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최희진의 뉴스 속 인물

독립단편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 감독 김조광수 배우 이현진

ㆍ“남자를 안는다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머쓱했어요”

사실 누나들은 좀 속상할 수도 있다. 당초 여성들의 몫이어야 했을 미소년을 여자도 아닌 남자에게, 그것도 ‘완소남’에게 넘겨줘야 하니 말이다. 졸지에 괜찮은 남자 둘을 잃어야 하는 누나들로서는 통탄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을 봤을 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남녀를 불문하고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소년을 사랑하게 되는 또다른 소년의 이야기, 독립단편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이하 소소만)가 오는 20일 개봉한다.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의 감독을 맡은 ‘청년필름’ 김조광수 대표(왼쪽)와 ‘석이’ 역을 연기한 배우 이현진씨. |남호진기자


종전의 퀴어영화(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에 관한 영화) 주인공들은 인생과 존재에 대해 고뇌하느라 바빴다. 덕분에 영화 분위기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거웠다. 하지만 ‘소소만’은 두 남학생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설렘을 예쁘장하고 ‘샤방샤방’하게 그렸다. 그 자신 동성애자인 영화사 ‘청년필름’의 김조광수 대표(43)가 직접 감독으로 나섰고 시트콤 <김치치즈스마일>에 출연했던 배우 이현진씨(23)가 남학생을 사랑하는 ‘석이’ 역을 연기했다.

남자와 남자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는 영화를 내놓고도 너무나 당당한(!) 두 사람을 지난 7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났다. 감독은 전례없이 발랄한 퀴어영화가 탄생했다는 점에 신이 났고, 배우는 이 영화 덕분에 좋은 연기 경험을 쌓았다며 뿌듯해 했다.


-퀴어영화라면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가 대부분인데 ‘소소만’은 낭만적인 순정 만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퀴어영화가 이렇게 산뜻해도 되는 겁니까.
김조광수(이하 김조) = 이성애자들이 가진 편견 중 하나가 ‘동성애자들은 힘들 거야’입니다. 사실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이성애자 중에도 힘들고 괴로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게이들도 행복하고 발랄하게, 때로는 철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지금까지 한국의 퀴어영화들이 어두운 면, 무거운 면을 담았다면 저는 반대로 ‘편견을 가지지 말라’는 뜻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기획할 때 남성 관객을 일부러 배제한 측면도 있어요. 이성애자 남성 관객들이 이 영화를 불편하지 않게 느끼길 바란다면 작은 영화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거겠죠. ‘남자 이성애자들이 불편하다고 한들 나는 그런 것 따위 고려하지 않겠어’ 하는 생각도 솔직히 있어요. 이를테면 그런 거죠. 퀴어에 관대하지 않은 남성 이성애자들 앞에서 까불면서 저항하는 그런 느낌? 기존의 퀴어영화들이 묵직한 펀치를 날리는 방법으로 저항한다면, 저는 ‘메롱’한다는 느낌으로 ‘우린 이렇게 잘 살고 있거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김조 대표는 영화사 ‘청년필름’의 대표로 영화 <해피엔드>, <질투는 나의 힘> 등을 제작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직접 감독으로 나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김조 = 2006년 11월 제가 제작한 영화 <후회하지 않아>가 개봉했습니다. 퀴어영화였고 독립영화로서는 드물게 흥행에 크게 성공했어요. 그때 1년에 한편 정도는 꾸준하게 퀴어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퀴어영화를 만들 수 있는 감독을 찾고 있었는데 하겠다고 나서는 감독이 없더라고요. ‘그럼 이참에 내가 한번 해?’ 이런 생각을 한 거죠. 우리 회사 회식하는 자리에서 그냥 툭 던지는 말로 ‘내가 단편을 찍어볼까 생각 중이야’ 했더니 프로듀서들이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어요. 일을 벌이고 난 뒤에 감당하기 어려워서 좀 괴로워했죠.


-‘소소만’과 비슷한 시기에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가 개봉합니다. 지금 왜 동성애 코드가 주목받고 있습니까.
김조 = 이전까지 영화 산업에선 동성애를 상업적이지 않은 소재로 봤던 것 같아요. 동성애를 그린 영화는 성공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구심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최근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 영화 <왕의 남자>처럼 동성애를 측면에서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크게 성공했잖아요. 이를 계기로 영화계가 새로운 소재를 찾는 과정에서 ‘이제는 동성애가 대중적 성공을 가로막는 굴레가 아니라 훌륭한 상업적 소재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어느 이동통신 광고에도 동성애가 소재로 등장합니다. CF까지 동성애를 이야기할 정도라면 우리 사회가 동성애에 많이 관대해진 것으로 봐도 될까요.
김조 = 그렇죠. 관객들이 먼저 관대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든 드라마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되레 너무 조심했던 것 같아요. 관객들은 미국 드라마 <퀴어 애즈 포크> 같은 외국 콘텐츠를 좋아해왔는데 우리가 뒤늦게 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관객들이 열린 마인드로 동성애를 바라봐주시니 저같은 사람들한테는 반가운 일이지요.


-현진씨는 2007년 시트콤으로 데뷔, 이번이 첫번째 영화 출연입니다. 퀴어영화라는 사실은 둘째치고, 왜 첫 영화로 돈 안 되는 독립영화를 선택했습니까.
이현진(이하 이) = 영화를 어떻게 찍는지 경험을 쌓아보고 싶었어요. 장편 영화를 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해요. 단편 영화니까 부담없이 찍을 수 있겠다 싶었고, 출연을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이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회자되며, 이렇게 인터뷰도 하고 시사회도 하는 영화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이 영화가 자신의 이미지나 이후 작품 캐스팅에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까.
이 =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퀴어영화를 찍으면 오히려 여성분들 반응이 훨씬 더 좋더라고요. 퀴어영화에 관한 기사에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어가는구나’라든가 ‘훈훈한 정보’라는 여성분들 댓글이 달리고.(웃음) 그런 것을 보면 잘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감독님이나 PD님들 생각은 잘 모르지만, 제가 시청자 입장이고 관객 입장이었을 때 어떤 배우가 퀴어영화를 했다고 해서 ‘저 배우 좀 이상한가’ 이렇게 생각할 것 같진 않아요. 오로지 퀴어만 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저는 그게 아니잖아요.


-동성애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습니까.
이 = 친구들이 처음엔 ‘너 왜 게이영화 찍냐, 친구로 못 지낸다’고 했어요. 그래서 얘기했습니다. ‘너희들이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사실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에 대해 전혀 모르잖아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일에 관해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 되는 거죠.


-영화 줄거리가 김조 대표의 실제 경험담이라면서요.
김조 = 두 가지 실화를 합쳐놓은 겁니다. 두 사람이 버스에서 만났고 길거리를 걷다가 마지막에 서로 안는 것은 실제 이야기예요. 그런데 남학생들끼리 서로 ‘삥’ 뜯고 ‘삥’ 뜯기는 과거 회상 장면은 그 사람과 관련된 게 아니죠. 그건 다른 실화예요. 제가 ‘삥’을 뜯기고 난 뒤 ‘삥’ 뜯은 놈을 못 잊어서 만나볼까 따라다녔던 적이 있는데 잘 안 됐어요.


-연기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었을 텐데요.
이 = 아무래도 포옹 장면이죠. 사랑하는 눈빛 같은 건 어렵지 않았는데 맨 마지막에 안는 장면이 있어요. 조금 어색했어요. 제가 남자 중학교에 남자 고등학교 출신이거든요. 여자들은 길 가거나 쇼핑할 때 서로 팔짱끼는 것도 잘하는데 남자들은 절대 손도 안 잡잖아요. 남자를 안는다는 건 정말 상상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 장면이 닥쳤을 때 ‘그래 한번 해보자’ 결심했는데도 힘들더라고요.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연기자라면 어떤 역할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앤티크>라는 영화를 한번 볼 생각이에요. 그 영화에 나오는 김재욱 형이 인터뷰하면서 ‘이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이성애자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하셨잖아요. 연기하는 게 많이 힘들었다는 얘기죠. 그 배우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기했나 유심히 보고 공부할 생각이에요.


-제작비를 마련하는 과정이 범상치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응원하는 256명의 ‘소년단’이 각각 1만~10만원씩 십시일반으로 제작비를 지원했다고 하던데.
김조 = 순제작비가 650만원이고 마케팅비가 150만원이에요. 모두 800만원인데 800만원 중에 소년단 분들이 450만원을 모아주셨어요. 나머지는 제가 사비를 털어서 돈을 냈습니다. 독립영화는 대부분 그래요. 감독이 자기 돈 내서 영화를 만들거든요. 그래도 순제작비 중에서 굉장히 높은 비중, 한 75% 정도를 관객들이 모아주신 거죠.


-돈이 없다는 이유로 배우들에게 출연료도 주지 않았다면서요. 이거 노동 착취 아닙니까.
김조 = 모든 스태프, 모든 연기자가 노 개런티예요. 그래서 650만원에 찍을 수 있었던 거죠. 독립 영화인데 개런티를 주면 또 얼마를 주겠어요. 예를 들어 ‘자 여기 10만원이야’ 하면서 줄 수는 없잖아요. 안 주는 게 낫지. 받는 사람도 ‘우리 노 개런티로 출연했어요’가 낫지 ‘10만원 받았어요’ 이럴 수도 없고. 저는 배우들도 용기가 있지만 배우들의 회사도 용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한번 움직이려면 비용이 많이 들잖아요. 배우도 그랬고 회사도 그랬고, ‘퀴어영화인 것 상관 없고 열심히 하겠다’고 하셨어요. 고맙죠.


-앞서 말한 대로 ‘소소만’은 이전에 나왔던 퀴어영화와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이 영화가 한국 영화사에 어떤 의미로 기록되기를 바라는지 말씀하신다면.
김조 = 저는 동성애 영화를 ‘퀴어영화’라고 굳이 따로 부르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퀴어영화가 다양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퀴어지만 호러도 있고 액션도 스릴러도 코미디도 있고, 그러면서 퀴어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저는 이 영화가 그런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소소만’을 기점으로 퀴어영화도 전방위적으로 모든 장르를 다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는 거죠. 저는 다음 번에는 퀴어면서 호러인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삥’ 뜯고뜯기던 두 남자, 서로에게 끌리는데…

■ ‘소년, 소년을 만나다’는

민수(김혜성)는 어느날 버스 안에서 석이(이현진)를 만난다. 석이는 과거에 길 가던 민수를 붙잡고 ‘삥’을 뜯었던 불량 학생. 다시 만난 두 소년은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배우 예지원씨가 사랑의 큐피드로 깜짝 등장해 극의 재미를 더한다.

본 영화 14분에 메이킹 필름 21분, 총 35분짜리 짧은 영화다. 영화가 순식간에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도 아직 메이킹 필름 상영이 남아있으니 자리를 뜨지 말아달라는 게 감독의 당부다.

오는 20일 서울 ‘하이퍼텍 나다’를 비롯해 부산, 광주 등 전국 대도시 극장에서 개봉한다.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