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유쾌하지 않은 직업 ‘법원 집행관’의 세계
TV 드라마에서 법원 집행관처럼 일관되게 악역으로만 그려지는 직업도 흔치 않다. 주인공이 매달리며 사정해도 그들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저항하는 주인공을 야멸차게 밀쳐내고 집안 여기저기에 ‘빨간 딱지’를 붙인다. 냉혈한도 이런 냉혈한이 없다.
가공의 세계에서 창조된 이미지는 현실에서도 차용된다. 지난해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을 비판하는 성명에서 “국정홍보처 공무원들은 행정관이 아니라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악덕 ‘집달리’ ”라고 표현했다. 드라마와 정치판을 막론하고, 집행관은 누구에게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집행관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딱지’. 어떤 사건이 재판을 거쳐 집행관의 손까지 갔다면, 평온하게 갈등을 해소하기는
어렵게 됐다는 뜻이다. 집행관은 사람들의 한숨과 악다구니를 날마다 마주하며 산다. |김세구 선임기자
그래서 만났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는 악명에 대해 집행관들도 할 말이 있을 듯 싶었다. 지난달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이중재 집행관(55)의 하루를 동행 취재했다. 그는 “난처한 상황도 많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4시간 남짓 밖으로 돌아다니는 만큼 “사무실을 집행하러 갔을 때 건물 안에 화장실이 보이거든 미리 가 두는 게 좋다”는 ‘인간적인 조언’도 들려줬다.
■ 사회상을 반영하는 빨간 딱지
집행관 한 사람이 하루에 처리하는 사건 숫자는 10~15건 정도다. 이 날 이 집행관이 받아든 서류는 12건. 모두 서울중앙지법 관할 구역인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의 집과 사무실이다.
첫 사건은 동산 압류였다. 채무자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도록 값나가는 집기에 빨간 딱지를 붙여야 한다. 이 집행관과 업무를 보조하는 집행관 사무원 김 과장(익명을 요구했다), 김인균씨가 3인 1조가 되어 함께 자동차에 올랐다. 운전은 강남 골목골목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인간 내비게이션’ 김씨가 맡았다.
도착한 곳은 ㅎ사의 사무실이었다. 한 잡지사가 광고대금 742만원을 받지 못했다며 ㅎ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법원은 물건을 압류하라고 판결했다. 집행관들은 압류 판결을 집행하러 갈 때 채무자에게 미리 알리지 않는다. 돈 되는 물건을 빼돌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집행관의 느닷없는 방문에 사무실 직원들이 동요했다. “법원에서 오셨다고요? 판결 문서가 있습니까? 그것부터 보여주십시오.”
소동은 길지 않았다. 서류를 제시하자 직원들은 순순히 물러섰다. 집행관 사무원들은 에어컨과 컴퓨터, 복사기, 책상 등에 재빠르게 빨간색 딱지를 붙였다. 사무실을 방문하는 외부 손님이 압류 사실을 알 수 없도록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붙여준다. 채무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배려다. 이 모든 과정에 소요된 시간은 5분 남짓. 불편한 일은 되도록 빨리 끝내는 편이 서로에게 좋다.
“사무실이 가정집보다 마음 편합니다. 가정집을 압류하러 갔는데 아픈 사람이 있거나 어린 애들이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난처하죠. 일반 사무실도 ‘주먹 쓰는’ 사람들이 연루된 때엔 승강이가 벌어집니다. 그래도 집행관을 협박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주로 채권자와 시비가 붙지요.” 이 집행관이 담배를 빼물며 말했다.
집행관의 ‘트레이드마크’인 빨간 딱지의 이름은 ‘압류물표목’이다. 가압류인 경우에는 초록색 딱지를 붙인다. 지난해 압류물표목이 사용된 본압류 사건은 1만936건, 가압류는 2970건을 기록했다. 2004년만 해도 본압류 사건이 1만5873건이나 됐지만 같은해 11월 개인회생제도가 개선, 시행되면서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채무자가 개인회생 인가를 받으면 법원은 재산에 관한 집행 절차를 중단해야 한다.
제도 변경 외에 경기와 사회상의 변화도 압류 사건의 증감에 영향을 준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채권·채무 소송이 크게 늘었던 것이 그 사례다. 당시 웬만한 사업체들이 인력을 감축했던 것과 반대로, 법원은 폭주하는 소송 때문에 직원 규모를 늘려야 했다. 사법고시 합격자 1000명 시대가 열리면서 예전보다 돈 벌기가 힘들어진 변호사들이 소송에 걸려 재산을 압류당하는 사건도 심심찮게 있다. 수입이 좋기로 소문난 개업 의사들도 경기가 나빠지면 집행관의 방문을 받는 채무자 신세가 된다.
하지만 TV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집행관이 채무자의 집에 구둣발로 난입해 막무가내로 집행하는 일은 거의 없다. 채무자가 폭력을 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 “채권자도 채무자만큼 힘들다”
이 집행관은 “집행관 중에서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고생을 좀 한다”고 말했다. 그도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걱정을 했다. 사정이 딱한 채무자를 만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하지만 첫 사건부터 ‘질이 좋지 않은’ 채무자와 마주쳤다. 덕분에 돈을 빌려주고도 받지 못하는 채권자들의 답답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집행관들이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채무자는 빚을 갚을 능력이 되는데도 최소한의 성의마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어떤 채무자는 35만원짜리 장뇌삼을 구입하고 값을 치르지 않아 소송까지 당했다. 고급 주택에 사는 한 채무자가 2000만원을 갚으라는 판결에 대해 “밍크코트 한 벌 값도 안되는 일로 시끄럽게 군다”고 말해 당혹스러웠던 적도 있다.
‘배째라’식의 채무자도 어려운 상대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찰에 ‘수상한 사람’을 신고하는 채무자도 있다. 어떤 사람은 흉기를 휘두른다. 채무자와 충돌하는 일이 잦은 부동산 명도 사건에 인부들이 넉넉하게 동원되는 이유다.
부동산 명도는 말 그대로 채무자의 부동산을 채권자에게 넘겨주라는 법원 판결이다. 판결이 나온 이후 채무자가 스스로 집을 비우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날도 집행관이 강제로 부동산과 압류된 물건들을 넘겨 받아야 했다.
약속된 시간, 법원에 등록된 인부 15명이 집행 장소 앞에 나타났다. 인부들은 가능한 한 단 시간 내에 압류물을 밖으로 꺼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채무자가 거칠게 저항할 때 진압하는 역할도 한다. 인부들의 일당은 채권자가 지불한다. 법률상으로는 소송의 원인을 제공한 채무자가 부담하도록 돼 있지만, 빚을 못 갚아 쫓겨나는 사람이 일당을 지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많은 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려면 길찾기를 잘해야 한다. 집행관 사무원들이 재판 문서와 간단한 지도를 보며 동선을 상의하고 있다.
일부 채권자들은 “이사 비용을 챙겨줄테니 강제로 명도하기 전에 집을 비우라”며 채무자에게 돈을 쥐여주기도 한다. 인부들이 들어낸 물건을 창고에 보관할 경우 그 보관료까지 채권자들이 내야 하는 탓이다. 압류한 물건의 경매 가격이 채권액과 비슷하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채권액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집행관은 “보통 채무자들의 어려움만 부각되지만 소송은 채권자들에게도 힘이 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명도는 결국 연기됐다. 김 과장이 채권자와 채무자가 합의를 보도록 중재한 것이 성공했다. 채무자는 “오늘 안으로 사무실을 비우겠다”고 약속했고 채권자는 채무자를 한 번 더 믿어주기로 했다. 인부들은 일당을 벌 기회를 놓쳤지만, 집행관들에겐 화해가 성사되는 것만큼 다행스러운 일도 없다.
이어서 방문한 어느 사무실 앞에는 채권자들과 열쇠기능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채무자가 문을 잠그고 종적을 감춰서 강제개문(强制開門)하기로 한 사건이다. 채무자가 집 안에 있으면서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을 때도 열쇠기능사가 문을 연다.
당사자의 동의나 법원의 영장 없이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은 검찰도 보유하지 못한 막강한 권한이다. 이 때문에 검찰의 구속영장을 집행관이 집행하기도 한다. 피의자가 문을 걸어잠그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 때 집행관이 문을 여는 식이다.
열쇠기능사는 법원에 등록된 업체에서 파견된다. 열쇠를 파손하지 않고 감쪽같이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에 솜씨 좋은 일류 기술자들이 집행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도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아파트나 수입 자동차의 자물쇠가 점점 복잡하고 정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집행관은 특히 “타워팰리스 같은 고급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채무자를 만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채무자가 1층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강제개문은커녕 엘리베이터조차 탈 수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채무자가 좋은 집에 살고 비싼 차를 탈수록 빚을 돌려받기가 더 힘든 셈이다.
■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상식적으로 집행관에게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은 채무자들이다. 그러나 집행관은 채권자들에게도 욕을 먹는다. 채무자의 사정을 배려해 집행 날짜를 조정할 때 그렇다.
집행관들은 어린이나 학생들이 집에 있는 시간을 되도록 피하려고 애쓴다. 방학과 겹치는 때엔 집행 기일을 미루기도 한다. 부동산 명도의 경우, 날씨가 궂으면 하지 않는다. 비 오는 날 쫓겨나야 하는 채무자의 처지를 생각해서다. 이 집행관은 “이런 이유로 연기하면 채권자들은 이해를 못 한다”며 “ ‘내 돈 내고 하겠다는데 왜 안 하느냐’며 채근한다”고 말했다.
채무자들의 처지가 안타까울 때 집행관이 자비를 털어 빚을 갚아주는 일도 있다. 대개 100만원이 넘지 않는 소액 사건의 경우다. 머뭇거리다 기회를 놓친 일은 후회로 남는다. 이 집행관은 “60만원이면 살림살이가 경매에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며 “그때 대신 갚아주지 못한 일이 요즘도 자꾸 생각이 난다”고 털어놨다.
집행관들은 강제개문을 하거나 채무자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지만, 같은 이유로 소송당하는 고충을 겪기도 한다. 김 과장은 “채무자가 들고 있는 흉기를 빼앗으려고 손목을 비틀었다가 멍이 들게 한 적이 있었다”며 “그 탓에 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집행관들은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며 “나만 해도 무혐의가 벌써 세 번”이라며 웃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이날의 집행은 오후 2시30분이 돼서야 끝났다. 집행관들은 점심도 거른 채 쉬지 않고 이집 저집 문을 두드렸다. 이날 열쇠기능사는 문을 여는 데 실패했고, 어떤 채무자의 집은 문을 열어주지 않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런 집은 열쇠기능사와 함께 다시 찾아와야 한다. 허탕친 사건은 있지만, 다친 사람이 없었고 큰 싸움도 없었다. 종종 채무자가 사무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하고, 문 밖으로 뛰쳐나오며 흉기로 집행관의 팔을 스치는 일도 있지만 다행히 이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집행관은 “집에선 일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며 “내가 사는 동네에도 내 직업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동네 주민과 언제 어떻게 마주칠지 알 수 없어서다. 실제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채무자의 집에 집행을 나간 적도 있다.
집행관은 누구에게도 유쾌하지 않은 직업이다. 정보기관 직원이 아닌데도 신분을 숨기고 살아야 할 정도다. 하지만 집행관이 현장에서 채권·채무자를 상대하며 험한 일을 맡아주지 않는다면 법원의 판결은 휴지조각에 불과해진다. 이 집행관이 말한대로 “누가 해도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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