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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최희진의 뉴스 속 인물

탁발순례 5년…마지막 바랑 꾸리는 도법스님

ㆍ“왜 반대하겠어, 대통령이 정직하지 않으니 불신 하는거야”

도법스님을 전북 남원 실상사에서 만날 수 있는 기간은 고작 1주일 정도였다. 31일 경기 여주에서 출발, 서울·경기 지역을 200일간 걸어서 순례하는 ‘생명평화 탁발순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종교인들과 함께 한반도 물길을 따라 100일을 걸었던 대운하 반대 도보순례(이하 강순례)가 끝난 것이 지난 24일인데 말이다. 지친 다리를 쉬게 할 틈도 없이 도법스님은 다시 바랑을 꾸린다. 
 


                                  도법스님이 기거하는 실상사 화림원에선 지리산의 능선이 시원스럽게 내다보였다.
 ‘좋은 곳에 사신다’며 부러워하자 스님은 “좋으면 내려와서 살면 될 것을, 다들 말로만 그런다”며 핀잔을 줬다. 남원 | 강윤중기자

도법스님이 실상사 주지 자리를 버리고 탁발순례를 떠난 것이 햇수로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생명평화라는 화두를 안고 2004년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에서 시작된 대장정은 전라와 경상, 제주, 충청, 강원을 거쳐 수도권에 다다랐다. 올해 서울·경기 지역을 끝으로 탁발 순례는 막을 내린다. 길에서 길을 찾기 위해 나섰던 걸음. 수만리를 걷고 수만명을 만났다. 우리 삶 속에 생명평화의 문화를 일구겠다는 도법스님의 바람은 어느 정도나 이뤄졌을까.

도법스님은 “초기엔 낯선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생명평화를 이야기한다”며 “우리가 작은 불씨를 지피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계관과 철학의 토대를 더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앞으로 계속 해나가야 할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생명평화의 개념을 미처 깨치지 못한 이명박 정부 탓에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을 듯하다. 도법스님은 생명평화라는 기왕의 주제에, 한반도 운하라는 현안까지 지고 길을 떠난다. 지난 26일 아침, 지리산과 마주하고 있는 실상사 화림원에서 도법스님을 만났다.


-건강은 어떠십니까.
“늘 빌빌하지. 인생이 다 빌빌한 것 아닌가.”


-31일부터 서울·경기 지역으로 탁발순례를 떠납니다. 대도시라서 종전 순례지들보다 걷는 길이 힘들지 않을까요.
“강순례단에 참여하느라 원래 일정보다 80일쯤 미뤄져 숨이 가빠. 서울·경기 지역이다보니 골치도 아프고. 계획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서울은 아직 계획이 나오지 않았어. 아마 경기 100일, 서울 100일인 것 같아. 그동안 생명평화라는 주제만 갖고 했지만 올해는 한반도 운하 문제를 현안으로 붙잡고 대화를 하니까 그게 좀 다르지. 이전엔 지역자치단체별로 1주일 정도씩 머물렀는데 이번에는 1주일에 두세 군데를 하게 되고. 서울은 포럼 형식이나 다른 형태로 사람들을 찾아가 대화하는 방식이 될 것 같아. 서울에 100일씩 돌아볼 데가 없잖아.”


-2004년 탁발순례를 시작할 때 수경스님이 함께 가셨습니다. 이번에도 동행이 있습니까.
“수경스님은 무릎이 안 좋아서 중도에 그만뒀잖아. 이번엔 김민해 목사님이 같이 순례를 하고, 강순례단에 관여했던 이들도 가끔 왔다갔다할 것 같아. 탁발순례는 얻어 먹고 얻어 자는 거니까 많이 다닐 수가 없어요. 숙식을 따로 해결하는 사람들은 상관 없지만 숙박을 함께 하는 숫자는 10명을 넘지 않도록 하는 게 기본적인 원칙이야.”


-지난 24일 강순례가 마무리됐는데요. 직접 만나본 시민들의 여론은 어떻던가요.
“강순례단의 순례 이전과 이후, 여론의 흐름이 달라. 그 전에는 찬·반의 비율이 반반이든가 반대가 조금 낮든가 했는데 지금은 반대가 70% 정도야. 굉장한 거지. 이게 반드시 순례단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다들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종교인들이 나서면서 걱정하고 있던 사람들이 말을 하게 하고, 말만 하던 사람들이 행동하게 되고. 이건 아니라는 의심이 들었던 사람들도 분위기가 찬성으로 기우는 것 같으면 말을 못 꺼내. 그런데 우리가 가면 핑계거리가 생겨. 우리를 기회 삼아서 말 못하던 사람들이 말을 하고 그런 생각들이 공론화되는 거야. 이것이 결국 전체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그 정도면 강순례단이 충분히 제 역할을 한 거라고 봐.”


-과거의 새만금 반대 삼보일배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삼보일배 때와 같은 국민적 관심을 기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삼보일배는 지율스님의 100일 단식처럼 목숨을 건 극단적인 행위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지. 강순례는 누구나 시간만 내면 할 수 있는 일이니 그렇게까지 관심이 집중될 이유가 없고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지도 않아. 운동이라는 게 누구나 마음을 조금만 열면 할 수 있는 일이어야지. 꼭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운동이라면 문제가 있는 거야.”


-탁발순례는 물론 강순례에 참여하신 까닭 역시 스님의 화두인 생명평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주제에 천착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선은 ‘불교를 제대로 하는 게 뭘까’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온 것이고. 또 내 생명에 관한 문제를 떠나서는 내 삶의 문제를 다룰 수가 없잖아. 세번째 이유는 우리 사회가 말로는 생명의 가치를 얘기하면서도 정작 가치 중심이 생명에 있지 않다는 거야. 돈이나 국가, 종교, 이념, 권력 등이 가치의 중심이 되고 있어. 그래서 글 쓰는 공부를 해본 적도 없는데 글을 쓰게 됐어.

80년대 초에 썼던 글이 아마 ‘화엄경에 나타난 생명의 질서’였었나…. 그때만 해도 이런 얘기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지. 90년대 소련이 무너지고 진보적인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다 시민운동, 환경운동으로 가면서 비로소 그 얘기를 조금씩 하기 시작한 거야. 그런 때에 내가 실상사에 와서 살게 되고 지리산 댐 건설 문제를 만나면서 생명평화 운동이 진행됐지. 지리산에서 생명평화·민족화해·평화통일을 위한 1000일 기도를 하면서 생각이 정리됐어.”


-생명평화 운동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 겁니까.
“불교에선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자기 자신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도 자기 자신이라고 해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걸 놓치고 있어. 전부 ‘너 때문’이야. 국가 탓에, 종교 탓에, 반대편 탓에. 우리 속담에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라고 하잖아. 이건 불교의 사유 방식과는 맞지 않는 거지.

그래서 생명평화의 개념을 내세워 일단 삶을 바라보는 눈과 사유 방식, 태도를 바로잡은 뒤에 너의 문제와 사회, 국가의 문제를 얘기하자는 거야. 내 생명에서부터 출발하자는 거지. 바깥의 문제를 모른 척하자는 건 아니야. 그런 문제들을 제대로 보려면 우선 주체적인 문제의식으로 내 삶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야.”


-스님의 탁발순례가 5년째인데 세상은 여전히 어지러운 것 같습니다. 대운하 건설도 중단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요.
“4대강 정비계획으로 명패를 바꿔서 추진한다고 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정직한 사람으로 비쳐졌다면 나는 그 말, 우리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봐요. 강을 살리기 위해 하천에 손을 대자, 옛 뱃길을 살리자, 그걸 왜 반대하겠어. 그런데 대통령이 정직하지 않다는 불신이 있으니까 아무리 아름다운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말이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이후 불과 두세달 안에 너무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명박씨가 평지돌출한 인물이 아니잖아요. 한국 사회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서울의 시장을 4년 했다는 말이지. 그러면 거기서 그의 면면이 드러났을 것 아닌가. 그 사람에게 철학과 가치 의식, 인품과 자질이 있는지 말이야. 나는 이전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고 지방에 있으니까 잘 모르잖아요. 청계천 했다더라 이 정도만 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대통령이 돼서 하는 걸 보면 어떻게 이런 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싶어. 대통령이 된 이후에 하는 발언을 보면 이건 너무 아니라는 거야. 철학이 빈곤하다는 건 그냥 양보한다고 쳐도, 현대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인데 민주주의라는 상식 자체를 갖추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어떤 대목에서 그런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민주주의가 잘 굴러가려면 정직해야 하고 허심탄회해야 하고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에요. 그런데 이명박씨는 정직하거나 허심탄회하다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고, 국민을 이해하거나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게 거의 보이지 않아.

나는 이해가 안 되는 게, 서울시장을 4년이나 했는데 어떻게 서울시민들이 이명박을 그렇게 많이 지지했냐 이거야. 우리처럼 지리산 골짜기에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찍었다고 할 수도 있겠는데, 지적 수준으로 보면 서울 사람들이 제일 높지 않겠어? 이명박씨가 남원시장이나 부산시장, 전주시장을 했다면 내가 서울시민들을 이해 못할 바도 없겠지만,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똑똑한 서울시민들이 그 사람을 그렇게 지지했다면 이건 뭘 의미하는 거겠어요? 결국은 종교인과 지식인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얘기야.”

“강을 봐, 감동이 있잖아 … 돈과는 바꿀 수 없어”

-현 상황에 종교인과 지식인의 책임이 크다는 말씀입니까.
“막말로 얘기하자면 종교인과 지식인 모두가 곡학아세를 하고 있다는 거야. 돈이나 권력, 명예, 혹은 자기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권력의 주인은 국민이잖아.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여론인데, 이 여론을 형성하는 주도층은 종교인과 지식인들이라는 말이지. 그럼 한국사회 문제의 책임을 따질 때 최우선 순위는 결국 종교인과 지식인인 거예요. 종교인과 지식인들이 보편적 진리와 양심적 신념, 생명이나 국민을 위해 종교를 쓰고 지식을 사용했다면, 그렇게 여론이 형성됐다면, 국민들이 과연 이명박에게 표를 몰아줬을까? 그런 점에서 이제는 종교인과 지식인의 문제를 다뤄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 
 


                                   도법스님은 “자연의 아름다움은 돈이나 아파트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라며 
              “최고의 아름다움을 대운하 계획으로 파괴하겠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원 | 강윤중기자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이 다른 비판 논리를 무력화시켰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돈귀신에 현혹돼 있는 거지. 부자귀신, 돈귀신, 일등귀신, 경쟁력귀신, 효율성귀신. 사람들이 여기에 홀려 있는 거야. 그러니까 경제 살리겠다는 말에 너도나도 ‘그래 맞아, 맞아’ 한 것 아닌가. 그러면 누가 국민들로 하여금 돈 타령, 더 큰 집 타령, 더 좋은 자동차 타령을 하게 만들었을까? 이것도 결국은 종교인과 지식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거야. 신문·방송에 제일 많이 나오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 아닌가. 더 무서운 건 일반 대중들이 정치인들은 믿지 못하지만 종교인과 지식인의 얘기는 듣는다는 거야.”


-청계천에서 촛불을 들고 이명박 정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이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문제는 두 가지라고 봐요. 단순화해서 말하면 생태 위기와 민주주의의 위기. 과거엔 국가권력, 이념권력이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짓밟았다면 지금은 자본권력이 민주주의가 살아숨쉬기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에요. 욕망에 대한 탐닉이라고 할까. 비록 민주주의가 제도화됐다 해도 이기적 욕망의 탐닉이란 것이 민주주의가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없게 만드는 한계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거야. 생태 위기도 결국은 민주주의의 위기 탓에 발생한다고 볼 수 있고. 양극화도 마찬가지고. 해답은 민주주의를 우리 시대 삶의 문화로 가꿔내는 작업이 이뤄져야 생태 위기와 사회 모순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겠나 생각해요.”


-이 대통령이 시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나 대운하 건설을 강행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나는 잘 모르겠는데, 그이가 갖고 있는 기질을 봤을 때 어떤 형태로든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는 것 같아. 그동안 일을 해왔던 경험도 많이 작용하리라는 생각이 들고. 이명박씨는 민주적으로 국가·사회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기본적인 상식 자체가 제대로 안 돼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개인의 기질과 경험,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과 교양의 부재 또는 왜곡. 이런 것들이 맞물려서 어지간하면 끝까지 하려들지 않겠냐는 전망이 있고 나도 일정 부분 그렇겠구나 싶어요.”


-이 대통령이 최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통의 전제조건이 뭐라고 생각해요? 일단 정직해야 하고, 상대의 말을 귀기울여 듣는 데서부터 소통이 가능해지죠. 그런데 어디에서도 이명박씨에 대해 ‘참 정직하다, 경청할 줄 아는구나’ 이런 느낌을 받을 수가 없어. 그런데 어떻게 소통이 되겠어. 될 수가 없지. ‘언론이 우리를 소통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식의 얘기를 자꾸 하고 있는데 이건 대통령이 할 얘기는 아니라고 봐. 우리 같은 사람이 할 얘기지. 그건 스스로 ‘나는 대통령의 자질과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거야. 설혹 그런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래. 그런 얘기를 하고 싶으면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지. 우리처럼 운동하는 사람으로 남든지, 아니면 면장 정도나 하든지.”


-세상이 시끄러우니 순례길에 나설 때도 마음이 편치 않으시겠습니다.
“나는 경제가 어떻고 기술적 타당성이니 효율성이니 이런 건 전문가가 아니니까 잘 몰라. 일반인의 관점에서 이번 강순례를 하면서 느낀 점 한 가지를 얘기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삶이 무엇이겠어? 아름답게 살고 싶은 거잖아. 아름답게 살려니까 돈을 벌어야겠고, 그래야 아름다운 집도 짓고 좋은 자동차도 사고 ‘행복한 눈물’ 같은 예술작품도 구하고.

그런데 과연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넘어서거나 대신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을까. 내가 보기에 그런 건 있지 않아요. 그동안 막연했던 것들을 이번 강순례를 하면서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확인했어요. 강을 보더라도 그렇지. 자연이 만들어낸 강과 강변, 이것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은 그야말로 아름다움 자체야. 우리 가슴에 감동을 줘. 이 강과 강변이 파괴되고 오염된 곳에 가면 이건 어딘가 아프고 갑갑한 거야. 운하를 왜 건설한다고 할까. 아름다움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지한 거야. 우리가 아름다움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너무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결국 운하 문제로 불거지는 거야.”


-단어 자체가 추상적이어서인지, 때로는 생명평화라는 화두가 어렵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건 구체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야. 우리가 생명이라는 문제를 추상적·관념적으로 다루다보니까 너무 크게 느껴지는 것이지. ‘생명’이라는 말을 ‘지금, 여기, 내 생명‘이라는 말로 바꿔보면 절실한 문제일 수밖에 없어. 지금 여기 내 생명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중요한 문제가 있을까? 국가? 종교? 이념? 정치? 이게 다 뭔가. 왜 국가와 종교, 이념, 정치가 존재하는 걸까? 왜 우리가 자유와 정의,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 것인데? 결론은 간단해. 지금 여기 내 생명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자 함이야.”


-생명평화를 실천하는 첫걸음은 무엇인가요.
“제일 먼저 내 생명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이뤄진 존재인지 알아야겠지. 예를 들어 태양이 없으면 내가 존재할 수 있을까? 태양의 도움을 받지 않고 태양과 관계 맺지 않는다면 지금 여기 내 생명은 존재할 수가 없어. 천하없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 하더라도 태양이 없으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불가능해. 가장 민감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산소로 호흡하지 않는 일이야. 물과 밥도 그렇지. 산소와 물, 밥이 서울대학에서 만들어져? 삼성에서 만들어내? 청와대에서? 아니잖아.

이 절대적인 생명의 조건들은 현대 문명에선 절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우리가 아파트를 먹고 살 건가, 컴퓨터를 삶아먹고 살 건가, 아니면 휴대폰을 볶아먹고 살 건가.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자연과 농촌, 농업 이거 우습게 알아도 괜찮아.

그러나 우리는 죽으나사나 밥 먹고 된장 먹고, 김치와 물을 먹고 숨 쉬어야 돼. 서울에서는 생명에 필요한 절대 조건은 하나도 안 만들어져. 오직 소비시키고 오염시키고 파괴하고.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이야. 이렇게 생명의 문제를 짚어보면 너 없는 나는 존재할 수가 없어. 그런 것을 통찰했던 예수나 붓다는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라’ ‘중생을 외아들 사랑하듯이 해라’ 이렇게 표현한 거야. 그렇게 했을 때만 너와 나의 관계가,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평화롭게 행복해진다는 거야.”


-귀농학교, 대안학교 등 탁발순례 외에도 하시는 일이 많습니다.
“내가 하자고 한 일도 더러 있지만 다수는 내가 하자고 한 일이 별로 없어. 누가 하자고 한 일이지. 나는 일 적극적으로 안해. 그럴 능력도 없고. 탁발 순례야 내가 주도한 거지만. 지리산 댐 건설 문제는 이미 불거진 것을 내가 실상사로 가져온 것이었고. 처음에 내가 아주 작은 불씨를 만드는 역할을 했고 그 다음에 수경스님이 앞장서서 한 거지. 귀농학교도 누가 하자고 해서 한 것이고 작은학교(중등과정 대안학교)도 마찬가지고.”


-지리산에 순례길을 조성하는 사단법인 ‘숲길’의 이사장도 맡고 계십니다.
“그것도 내가 한 게 아닌데 내가 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성찰의 문화를 가꾸는 운동인데 이것도 순례의 성과물이야. 2004년 지리산 일대와 구례, 섬진강변을 걸으면서 걷는 순례문화가 중요하겠다, 특히 청소년을 위해 이것을 대중화하는 게 필요하겠다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거야. 작년에 한 20㎞ 조성했고, 올해는 60㎞ 정도 할 거야. 전체는 300㎞ 정도가 되지. 편안하고 여유있게 걸으면서 자기 성찰을 할 수 있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도란도란 얘기 나누면서 걸을 수도 있어. 그런 과정에서 온갖 자연 생태와 지역의 역사, 문화를 만나는 거지.”


-탁발순례 출발일까지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십니까.
“여기 화림원 주변을 서성거리거나 혼자 슬슬 거닐기도 하고 책도 보고 그러지.”


-순례 떠나기 전에 특별히 준비하시는 게 있습니까.
“그냥 여행 다니는 사람 여행 가는 정도로 준비하는 거지, 뭐. 탁발순례도 인생의 한 여행이니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 칫솔·가방·신발도 준비해야 되고 잠자리가 불확실하니까 침낭도 준비해야 하고. 준비를 따로 하는 게 있다면, 이런 길을 나섰으니까 더 성의있게 해야겠다는 마음의 준비 정도.”


-서울·경기 지역 순례를 마치신 뒤에는 무엇을 하실 계획입니까.
“몰라, 그건. 다음 일을 어떻게 알아? 구상한다고 되나? 구상한 게 되는 경우가 없더라고. 미래에 대해서 계획이나 이런 건 없어. 다만 그때그때 상황에서 내 양심과 신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과 선택을 하는 건데, 진지하게 검토해서 이것이 세상 이치에 맞고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내가 할 수 있는 그 길을 가는 거지.

다만 앞날을 전망해 본다면 내가 해 온 일이 불교를 제대로 해보자, 사회적으로 대안을 찾아보자 이런 거니까. 이것을 어디에서 할 것인가 생각했을 때 결국은 자연과의 관계, 지역과의 관계, 농촌과의 관계 속에서가 아닐까 싶어. 그러면 그 현장은 결국 실상사와 실상사가 자리잡고 있는 지역 농촌 사회인데 아마 이것에 관계된 일들을 하지 않겠는가, 장소를 옮긴다해도 내용적으로는 그런 문제를 다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나 아직은 ‘꼭 해야 된다’ 그런 일은 없어요. 끝나면 봐야지.”

도법스님은 누구인가
98년 조계종 분규 수습…생명공동체 운동 상징

한국 불교 개혁과 생명평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도법스님은 제주에서 4·3사건 희생자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18세에 전북 김제 금산사로 출가했고 봉암사와 송광사 등에서 10년 이상 수행했다.

1990년 수경스님, 현응스님 등과 함께 수행단체인 ‘선우도량’을 발족시켰으며, 94년 조계종 개혁불사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98년 조계종 분규 당시 산에서 불려나와 총무원장 권한대행으로 사태를 수습했다. 사태를 정리한 뒤 홀연히 선방으로 돌아갔다.

95년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에 있는 실상사 주지로 부임, 귀농학교와 대안학교 등을 설립하며 생명공동체 운동에 나섰다. 2000년 2월 시작한 ‘지리산 좌우대립 희생자를 위한 1000일 기도’를 통해 생명평화라는 화두를 얻었다. 2004년 3월 실상사 주지의 소임을 내려놓고 5년째 전국을 걸으며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이어가고 있다. 사회가 비인간화와 생명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순례에 나섰다.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지리산 생명평화결사’ 탁발순례단장, 사단법인 ‘숲길’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남원 |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