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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리즈=====/최희진의 뉴스 속 인물

국내 최초 ‘성미산 마을극장’ 극장장 유창복

ㆍ“공동체 문턱 낮춰 지역사회와의 소통 꿈꿉니다”

‘터’가 유별난 것일까. 성미산 마을에선 상상하는 모든 것이 손에 잡히는 현실이 된다. 성미산 사람들은 ‘공동육아’라는 말조차 낯설던 1994년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세웠고, 2007년 자동차 1대를 주민들이 돌려가며 나눠타는 카 셰어링(car sharing)을 시작했다. 5년 전엔 성미산을 허물고 아파트와 배수지를 짓겠다는 서울시와 싸워 결국 개발 계획을 보류시키기도 했다. 

이 정도 성과라면 서울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생태공동체라는 평가가 과하지 않다. 시민단체 4곳이 새 집을 짓겠다고 결심했을 때, 성미산 마을을 1순위 후보지로 꼽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닌 셈이다.
 


                                  성미산 마을의 엄마·아빠들이 결성한 ‘아마밴드’가 지난 5일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개관 기념 공연 무대에 올릴 노래를 연습하고 있다. 지하 1·2층에 모두 9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은 
                               어린이들이 뛰어놀기 좋도록 나무 대신에 푹신한 재질의 의자를 놓았다. |김정근기자

환경정의와 함께하는시민행동, 녹색교통, 여성민우회 등 4개 시민단체는 지난해 가을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지하 2층·지상 5층짜리 건물 ‘시민공간 나루’를 세우고 한집 살림을 시작했다. 시민 운동의 경계를 뛰어넘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면서 새로운 일을 벌여보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전입 주민인 시민 운동가들과 터줏대감 성미산 사람들은 머리를 맞댔고, 지난 7일 첫번째 합작품을 선보였다. ‘나루’ 지하에 국내 최초의 마을 극장인 ‘성미산 마을극장’(http://cafe.naver.com/sungmisantheater.cafe)을 개관한 것이다. ‘나루’가 기꺼이 공간을 내놓았고 성미산 사람들이 운영을 맡았다.

지난 5일 개관 기념 공연의 막바지 연습이 한창인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유창복 극장장(48·사진)을 만났다. 유 극장장은 성미산 마을에서 12년을 살아 온 공동체 1세대 주민이다. 그는 “성미산 공동체의 결속력이 강하긴 하지만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 지역 사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지는 고민해야 할 문제”라며 “마을극장이 공동체와 지역사회, 시민단체와 지역사회 간의 담을 허무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처음 나루가 마을 주민들에게 공간을 임대하겠다고 했을 때 용도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왜 극장을 열기로 했는지 궁금합니다.
“2007년 마을 사람들과 길을 막고 축제를 했습니다. 그때 ‘두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동아리를 급조했어요. 만들고 싶은 동아리를 만들어라. 딱 2개월만 연습해서 무조건 축제 무대에 올려라. 별별 동아리가 다 만들어지더군요. 지난해 축제 때도 이 동아리들이 무대를 장식했어요. 놀아보니까 재미있거든요. 사람들이 1년에 한번 노는 것으로는 양이 안 차는 거죠.

그럼 극장을 만들자. 그래서 극장으로 쓸 지하실을 보러다녔어요. 그런데 층고가 4m 이상 나오는 지하가 없었어요.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때마침 시민단체들이 ‘나루’를 짓고 이사를 온다는 겁니다. 지역 주민들한테 공간을 영구 임대하겠다고 하기에 극장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지하 2층을 파려면 공사비가 몇 배 더 든다고 하는데, 눈 딱 감고 ‘그냥 가자’고 했어요.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하면 되지 않을까 해서. 예산이 3억5000만~4억원 정도 들었는데 모은 돈은 아직 10%도 안 돼요. 시작 단계죠.”


-시민단체와 지역 사회가 공간을 공유하며 결합한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닌데. 나루가 성미산 공동체에 어떻게 기여하길 기대하시는지.
“우선 우리한테 공간을 줬잖아요. 공간을 내준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나루가 없었다면 극장은 불가능한 일이었고. 두번째는 나루도 이젠 주민이에요. 여기서 잠은 안 자지만 하루 대부분을 여기서 지내니까. 앞으로는 나루가 지역에 줄 도움을 찾아야겠죠. 아직은 이사 와서 짐정리 하기 바쁘고 주로 중앙정부를 상대로 하는 활동에 익숙해진 활동가들이기 때문에, 풀뿌리 운동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아직은 몸이 안 되어 있어요. 나루가 마을을 정색하고 돕는다는 것도 어렵고. 같이 살면 그게 배우는 것이고 서로 돕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지금은 서두르지 말자고 했어요. 1년쯤 지나면 관계가 새롭게 생기지 않을까요.”


-극장 운영은 누가 하게 됩니까.
“주민들이 자원봉사로 직접 해야지요. 주민 중에 전문가가 있고 그 전문가들이 먼저 움직인 것이지만 그건 3~4명밖에 안 돼요.

극장을 열고 나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전업 주부도 좋고 길찾기 하는 고등학생도 좋고 지역 사회의 사람들을 모아서 교육을 하려고 합니다. 동네 아마추어들이 올리는 공연은 조명이든 음향이든 교육생들이 맡아서 스태프를 하는 거죠. 이 과정을 수료한 사람 중에 ‘나 이거 계속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극장에서 일하라고 하기도 하고. 좀 거창하긴 하지만 공연예술학교를 운영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에요. 마침 사회적 기업 제도가 있다고 하더군요. 극장 운영에 사회적 기업을 결합시켜서 취업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기대가 많이 돼요. 주민이 배워서 조명기사가 된다고 하면, 생각만 해도 신나죠.”


-2월7일부터 3월29일까지 개관기념 페스티벌이 이어집니다. 기간이 짧지 않은데, 개관 공연도 주민들이 직접 기획했습니까.
“마을을 좀 알고 극장에 대해 이해가 있는 예술가와 예술단체를 초대했습니다. 경계와 소통이라는 콘셉트로 내용이 채워졌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여러분 마음대로 해석하고 협의해서 콘텐츠를 내놓으시라고 했어요. 이렇게 하니까 자기 극장이 되는 거예요. 예술단체들이 자기 일처럼 기획에 참여하고 섭외며 여러 가지를 각자 동원하는 것으로 하니까 일이 신나게 진행되더군요.”


-개관 공연이 끝난 후엔 어떤 공연을 무대에 올릴 계획인지 장기적인 운영 방침을 설명하신다면.
“우선 개관 공연은 공사비 모금을 위한 중요한 홍보입니다. 개관 공연을 잘 마쳐야겠죠. 두번째는 극장이 쇼케이스 역할을 하게 할 겁니다. 이 공간에서 뭘 하고 놀 수 있을지 상상하려면 직접 놀아보는 방법 외에는 없어요. 그래서 다양한 장르를 실험적으로 다 해봐야 합니다. 극장이라고 하면 영화, 연극, 라이브콘서트 딱 3가지를 생각하는데 그것만은 아닙니다. 3가지는 물론이고, 찜질방처럼 드러누워서 영화를 본다든지, 아이들 재워놓고 엄마들만 나와서 음악 크게 틀어놓고 막춤을 춘다든지. 생활이 그대로 연장된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극장 운영의 방향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어요. 일단 개관공연을 해본 후에 정해야죠."


-나루와 성미산 공동체가 ‘마을 아카이브’를 함께 만든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마을이 한 15년 되니까 제가 비교적 1세대인데도 옛날 일들이 기억이 안 나요. 이 마을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많은데 그들은 과거의 경험을 공유할 방법이 없고. 마을이 커지면서 새로운 소통의 문화, 새로운 소통의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무척 커요. 관계라는 것은 기억을 공유하면서 형성되는 거니까 과거의 기록을 모으면 기억을 공유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디지털 아카이브에 들어갈 자료에는 마을 축제나 성미산 지키기 운동 자료가 있고 어린이집의 옛날 날적이, 회의록 등도 있어요. 온라인에 아카이브를 만든다면 오프라인에선 공동서재를 운영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마을에서 벌이는 사업이 점점 많아집니다.
“마을의 범위를 제한하고 결속력을 심화할 것인지, 아니면 마을을 확장할 것인지 고민이 늘 있죠. 하지만 도시에선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재개발이에요. 마을이 재개발된다고 하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죠. 둘째는 도시이기 때문에 저만해도 이제는 공기가 싫어요. 도시의 문화·교육 자원이 농촌에 뿌리를 내려야 농촌도 살 만한 곳이 되지 않겠습니까. 한 20가구 내려 가서 몇 명은 농사 지어서 식구들 먹여살리고, 또 몇몇은 이것을 가공해서 생협에 팔고. 이미 마을에 귀농 프로젝트가 떴어요. 땅 보러 다닌다니까요.”


-마을에 별난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나루처럼 일부러 이사 오는 경우도 많을 것 같습니다.
“ ‘지역 사회 안에서 유연해져야 한다, 섬이 되면 곤란하다’ 이런 문제 제기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생협은 조합원이 2500가구가 넘는데 공동체 사람들은 1000가구도 안 돼요. 지역 사회가 더 많아요. 생협 게시판에서 ‘공동체 사람들끼리 별명을 쓰면 위화감을 준다, 쓰지 말자’는 논쟁이 붙었어요. 그런 식으로 약간의 문턱과 알력이 있는 겁니다. 사실 벽이 없는 공동체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벽은 불가피하지만 문턱이 높으면 썩어요. 열린 문턱이란 뭘까. 원활한 소통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런 고민을 하죠. 극장이 이 담을 쉽게 허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미산 마을은
공동 육아와 대안 교육 등을 실천하고 있는, 성미산 주변의 생태 공동체를 말한다. 행정 구역상으로 서울 마포구 성산동·망원동·합정동 등에 걸쳐 있다.

성미산 마을의 시초는 1994년 문을 연 공동육아협동조합 ‘우리어린이집’이다. 믿고 맡길 만한 어린이집이 없어 고민하던 동네 주민들이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아이를 맡기고 싶다는 부모들이 늘면서 이후 어린이집 3곳이 추가로 생겼다.

부모들이 일단 뭉치니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공동육아조합원들은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먹이기 위해 2000년 마포두레생활협동조합을 출범시켰다. 현재 2500여가구가 생협에 가입해 먹거리와 생필품을 해결하고 있다. 2002년에는 유기농 반찬가게 ‘동네부엌’이 문을 열었다. 생협 조합원 중 일부가 공동 출자한 가게다. 마을 아빠들은 2003년 자동차 정비소인 ‘성미산 차병원’도 만들었다.

아이들이 자라니 부모들의 관심은 자연스레 대안학교로 이어졌다. 부모들과 뜻있는 교사들이 손잡고 2004년 9월 12년제 대안학교인 ‘성미산 학교’를 설립했다. 2005년에는 마포지역 반경 2㎞ 내에서 들을 수 있는 소출력 라디오 방송 ‘마포 FM’이 개국했고, 2007년에는 자동차 1대를 동네 주민들이 돌려가며 타는 ‘성미산 자동차 두레’가 시작됐다.

성미산 마을의 출발은 공동 육아였지만 이들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구심점은 성미산이다. 2001년 서울시가 성미산(해발 65m)에 아파트와 배수지를 짓겠다고 한 게 발단이 됐다. 주민들은 마을에 하나뿐인 뒷산이 훼손되는 것을 볼 수 없다며 성미산에 텐트를 치고 항의 농성을 했다. 이들은 2년의 싸움 끝에 서울시로부터 계획을 보류하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주민들은 이 과정을 거치면서 지역 사회의 문제에 눈을 떴고 더불어 사는 삶을 고민하게 됐다.

그러나 성미산이 마을 사람들에게 온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다. 현재 홍익재단이 성미산에 홍익대 부속 초·중·고등학교를 짓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창복 극장장은 “과거 성미산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그 힘으로 아직 버티고 있다”며 “마포구청에 반대 의사를 전달하겠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어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