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방역 덕분에 시민들이 깨달은 바가 많다. 그중 첫째는 역시 위기일수록 정부 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민간 기업과 협조하면서, 행정력을 동원해서 척척 일을 해내는 질병관리본부는 감동 그 자체다.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정부 당국은 2018년 메르스 발생 당시에도 있었던 그 조직임에 틀림없는데, 수행력도 성과도 크게 다르다.
문득 방송통신 분야를 돌아본다.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 3개의 정부부처를 갖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 기술기반을 고도화하고, 각종 방송통신 및 내용물 관련 서비스제공 사업자를 관리하고, 시민의 민주적 의견형성과 고품질 문화향유를 돕는 정부 당국이 하나가 아니라서 셋이라 좋다고 해야 마땅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컨대 당신이 인터넷 스트리밍 기술과 동영상 복원 기술을 갖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KBS와 EBS의 오래된 방송물을 재가공해서 새로운 서비스로 제공하려는 사업계획을 가지고 두 공영방송사와의 협상에 진척을 보였다 해도, 어느 당국으로부터 어떤 행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만약 당신이 가상광고 기술에 접목한 크라우드 펀딩의 방법으로 드라마를 제작해서 동영상 플랫폼에 제공하려 한다고 가정해 보자. 정부의 어느 부처에서 무슨 법을 들고나와 규제하려 할지 예상할 수 없다.
보건과 통신은 다르고, 방역과 방송도 엄연히 다르다. 그러나 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질본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방통위, 과기정통부, 문체부를 같이 보기 어렵다. 이들은 국내 방송통신 서비스와 내용제공 사업의 혁신을 돕기는커녕 급격하게 망가지는 방송통신 현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 혁신적인 방송통신 서비스가 새롭게 등장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다.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하여 국내 고품질 프로그램 제작역량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지고 있다.
만약 정부가 조직개편을 해야 한다면, 그 첫 번째는 방송통신 분야의 정부부처를 통폐합하는 일이 돼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무슨 초강력 초대형 정부부처를 만들어 매체 산업을 이끌어야 한다는 식의 케케묵은 ‘컨트롤 타워론’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방송통신 분야에 오래된 관련법을 정비해서 규제 개혁을 강도 있게 추진하기 위해 정부 당국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논지다.
정부는 2010년 세계적 방송사업자를 길러낸다는 명목으로 무리하게 방송시장에 개입하던 당시 거대 방송통신위원회가 범한 실패를 되짚어 반성해야 한다. 2013년 미래창조라는 구호를 근사하게 내세웠지만, 결국 국내 사업자 관리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주저앉았던 미래창조과학부의 오류에서 배워야 한다.
국정농단을 심판하고 보궐선거로 정권을 잡은 이 정부가 지난 3년 동안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대표적인 분야가 바로 방송통신 분야다. 이미 늦었지만 제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정부·여당이 나서야 한다. 야당과 협의하고 각 부처를 달래며 실질적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비유컨대, 지금 방송통신 및 내용물 관련 정부부처들은 각자 두 손 가득히 규제 보따리를 들고 서로 움직이지 못하는 형국에 처해 있다. 사업자 진입규제, 경쟁규제, 편성규제, 광고규제 등 너무 오래되어 약인지 독인지도 알 수 없는 규제 보따리를 쓰지도 버리지도 못한 채 그저 쥐고 있다. 이제 모든 규제 보따리를 풀어 헤쳐서 과감하게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기고, 보완할 것은 보완해야 한다. 새로운 수납공간에 보기도 좋고 쓰기도 좋게 담아야 한다. 바로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라도 관련 부처를 과감하게 구조조정해야 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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