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의 사회와 과학-조인트의 추억
(경향신문 9월15일자)
고등학교 때 교련선생님의 별명은 ‘피바다’였다(어쩌면 ‘피받아’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야 그런 별명을 가진 교련선생이 거의 학교마다 하나씩 있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 당시 교련선생은 내게 악의 상징 그 자체였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있을 수 있는가? 그럼에도 교련선생은 정신훈련을 한답시고 우리를 한시간 내내 서있게 하면서, 움직이는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라고 한 뒤 조인트를 깠다.
네이버사전에 의하면 “한 축에서 다른 축으로 회전력을 전달하는 부분”이고 의학적으로는 ‘관절’을 조인트라고 하지만, 사회에서 쓰이는 조인트는 무릎 아래쪽을 발로 걷어찬다는 의미다. 의학에서 조인트는 관절이니 무릎을 걷어차는 게 맞겠지만, 무릎을 잘못 걷어차이면 십자인대 손상 등이 초래될 수 있기에 무릎 아래가 선호된 게 아닌가 싶다. 잘은 모르겠지만 조인트는 먼저 군대에서 유행했고, 사회 전체가 병영이나 다름없던 70-80년대에 사회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그 기원이 어떻든 간에 조인트의 효과는 ‘직빵’이었다. 교련선생에게 불려나가 조인트를 까인 아이는 희한하게도 남은 시간 동안 흔들림 없는 자세를 유지하곤 했다. 교련선생에게 나름의 반항을 하느라 삐딱한 자세로 서 있던 나 역시 딱 한번 조인트를 까인 적이 있다. 대부분의 체벌이 맞는 걸로 인한 아픔과 다른 애들 앞에서 혼난다는 부끄러움이 반반 정도 섞여 있는데 반해 조인트는 부끄러울 새도 없는, 그야말로 아픔 100%의 얼차려였다. 그 후부터 교련선생에게 개기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복도에서 만나면 인사까지 할 만큼 조인트의 아픔은 강렬했다.
시대가 좋아져 조인트는, 심지어 군대에서조차 자취를 감췄고 아주 은밀한 곳에서만 행해지고 있는데, 그 중 한곳이 바로 큰집이다. 올해 초 MBC 사장으로 내정된 뒤 아무 일도 안하던 김재철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김우룡의 말에 따르면 “큰집에 불려가 조인트를 까였다.” 그 뒷일은 다들 알 것이다. 큰집서 나온 김재철은 MBC 내에 암약하던 좌빨들을 대거 숙청했고, MBC는 아주 건전한 방송사로 재탄생했다. 이게 바로 조인트의 효과다.
하지만 좌빨이란 건 고구마 줄기와 같아서 아무리 잘라도 계속 기어나오기 마련이다. 굳이 마르크시즘에 경도되지 않더라도 정부 시책에 반대하면 좌빨이 되는 이 세상에서, 현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마지않는 4대강 사업에 훼방을 놓는 자는 순도 100%의 좌빨이리라. 안그래도 현 정부 출범 직후 광우병 의혹을 일으켜 현 정부의 공적 1호가 된 피디수첩은 4대강 사업이 사실은 대운하라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감히 말하지 못하는 그 얘기를 논리적으로 제시했다. 화들짝 놀란 국토해양부는 방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걸었지만 실패하고 말았는데, 이때 나선 이가 바로 김재철이었다. 그는 사장 직권으로 방송을 내보내지 않는 강수를 뒀다. 이는 어지간한 의지가 없으면 하기 힘든 조치였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방송은 나갔지만, 김재철은 지금 많은 이로부터 욕을 먹고 있다. 언론사 사장이란 자가 언론자유를 막는 행태는 분명 괴이하긴 하다. 하지만 조인트를 한번 까여본 경험이 있는 난 김재철을 비난할 수 없다. 왜? 조인트는 아프니까. <수심 6미터의 비밀>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김재철이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간다. 아마도 그는 큰집에 또 끌려가 조인트를 까이는 상상에 전율했을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김재철과 똑같은 행동을 했을 거다. 김재철을 욕하는 당신들, 조인트 까여본 적 없죠? 없으면 말을 하질 마세요. 그게 얼마나 아픈데요.
(경향신문 9월15일자)
고등학교 때 교련선생님의 별명은 ‘피바다’였다(어쩌면 ‘피받아’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야 그런 별명을 가진 교련선생이 거의 학교마다 하나씩 있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 당시 교련선생은 내게 악의 상징 그 자체였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있을 수 있는가? 그럼에도 교련선생은 정신훈련을 한답시고 우리를 한시간 내내 서있게 하면서, 움직이는 사람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라고 한 뒤 조인트를 깠다.
네이버사전에 의하면 “한 축에서 다른 축으로 회전력을 전달하는 부분”이고 의학적으로는 ‘관절’을 조인트라고 하지만, 사회에서 쓰이는 조인트는 무릎 아래쪽을 발로 걷어찬다는 의미다. 의학에서 조인트는 관절이니 무릎을 걷어차는 게 맞겠지만, 무릎을 잘못 걷어차이면 십자인대 손상 등이 초래될 수 있기에 무릎 아래가 선호된 게 아닌가 싶다. 잘은 모르겠지만 조인트는 먼저 군대에서 유행했고, 사회 전체가 병영이나 다름없던 70-80년대에 사회로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김재철 MBC 사장이 지난4월18일 서울 공덕동 롯데호텔에선 연 긴급기자회견 도중 파업후 자신의 태도를 비판한 경향신문의 사설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강윤중기자
시대가 좋아져 조인트는, 심지어 군대에서조차 자취를 감췄고 아주 은밀한 곳에서만 행해지고 있는데, 그 중 한곳이 바로 큰집이다. 올해 초 MBC 사장으로 내정된 뒤 아무 일도 안하던 김재철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김우룡의 말에 따르면 “큰집에 불려가 조인트를 까였다.” 그 뒷일은 다들 알 것이다. 큰집서 나온 김재철은 MBC 내에 암약하던 좌빨들을 대거 숙청했고, MBC는 아주 건전한 방송사로 재탄생했다. 이게 바로 조인트의 효과다.
하지만 좌빨이란 건 고구마 줄기와 같아서 아무리 잘라도 계속 기어나오기 마련이다. 굳이 마르크시즘에 경도되지 않더라도 정부 시책에 반대하면 좌빨이 되는 이 세상에서, 현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마지않는 4대강 사업에 훼방을 놓는 자는 순도 100%의 좌빨이리라. 안그래도 현 정부 출범 직후 광우병 의혹을 일으켜 현 정부의 공적 1호가 된 피디수첩은 4대강 사업이 사실은 대운하라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감히 말하지 못하는 그 얘기를 논리적으로 제시했다. 화들짝 놀란 국토해양부는 방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걸었지만 실패하고 말았는데, 이때 나선 이가 바로 김재철이었다. 그는 사장 직권으로 방송을 내보내지 않는 강수를 뒀다. 이는 어지간한 의지가 없으면 하기 힘든 조치였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방송은 나갔지만, 김재철은 지금 많은 이로부터 욕을 먹고 있다. 언론사 사장이란 자가 언론자유를 막는 행태는 분명 괴이하긴 하다. 하지만 조인트를 한번 까여본 경험이 있는 난 김재철을 비난할 수 없다. 왜? 조인트는 아프니까. <수심 6미터의 비밀>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에 김재철이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간다. 아마도 그는 큰집에 또 끌려가 조인트를 까이는 상상에 전율했을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도 김재철과 똑같은 행동을 했을 거다. 김재철을 욕하는 당신들, 조인트 까여본 적 없죠? 없으면 말을 하질 마세요. 그게 얼마나 아픈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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