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3시스터스 트레킹’ 대표
ㆍ“가이드 교육은 새 세상으로 향하는 일종의 플랫폼”


예전에는 전쟁과 폭력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했다. 그러나 2006년, 빈민들의 자립을 돕는 데 힘썼던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교수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평화라는 단어는 외연을 넓혔다. 빈곤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상태, 이것이 평화의 새로운 정의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네팔 포카라에서 사회적 기업 ‘3시스터스 어드벤처 트레킹’(이하 3시스터스·http://www.3sistersadventure.com/)을 운영하는 러키 체트리 대표도 평화 전도사다. 3시스터스는 네팔의 빈민 여성들에게 가난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기 위해 러키, 디키, 니키 체트리 자매가 1994년 설립한 히말라야 트레킹 여행사다. 이들은 직업이 없는 빈곤층 여성들을 일정 기간 교육한 뒤 3시스터스의 트레킹 가이드로 채용한다. 관광객한테서 받은 가이드 비용 등 수익의 대부분을 빈민 여성들의 교육비와 인건비에 재투자하는 구조다.

서울시가 주최하고 하자센터와 서울시대안교육센터가 주관하는 ‘2009 서울 청소년 창의서밋’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러키 체트리 대표를 지난 2일 만났다. 체트리 대표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친 뒤 트레킹 가이드로 일하는 여성도 있지만 지역 사회로 돌아가 배운 것을 이웃들과 나누며 사는 여성도 많다”며 “네팔 여성들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어떤 계기로 3시스터스를 설립하게 됐나.

“우리 세 자매는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을 운영하고 있었다. 손님 중엔 외국에서 온 여성 관광객들도 있었는데 그들이 우리한테 트레킹 가이드 사업을 해보라고 제안했다. 남성 가이드와 여행하다가 불쾌한 일을 당한 여성 관광객이 많았던 것이다. 나는 과거에 산악 구조 훈련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산에 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이드 사업을 하는 것에 큰 두려움이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네팔 여성들의 열악한 처지 때문이다. 특히 인도와 인접한 네팔 서부의 산악 지대는 발전이 더디다. 교통이 불편하고 많은 것들이 여의치 않다. 이곳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관광업이 매우 훌륭한 방법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에베레스트 지역 주민들의 평균 소득은 나라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다. 경제적 발전이 이뤄지면 학교와 병원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시설도 함께 생긴다. 여행사를 열어 산악 지대의 빈민 여성들을 고용하면 자립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세 자매가 뭉쳤다.”

-사업을 시작하던 당시 네팔 여성들의 처지는 어느 정도로 열악했나.

“네팔에는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적·문화적 관습이 강하다. 저발전 상태의 산악 지역에선 특히 더 심하다. 여성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집과 밭에서 온종일 노예처럼 일한다. 직업에도 제한이 많아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직업은 교사나 간호사 정도다. 이런 현실에 의문이 들었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우리 자매들은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는데 네팔에선 교육을 많이 받은 편에 속한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3시스터스를 세운 것이다.”

-사회가 보수적이라 출발부터 순탄하지 않았을 것 같다. 사업이 자리잡기까지 어떤 점들이 힘들었나.

“우리처럼 여성들이 관광업에 종사하는 것은 정말 드문 경우다. 회사를 열었을 때 많은 사람이 ‘이 여자들 좀 보라’며 놀랐고 불쾌하게 생각했다. 주위 사람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경찰이나 관공서 등 정부 측 사람들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러 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웃은 우리를 괴롭혔고 가이드 훈련 프로그램에 대해 악평을 했다. 심지어 어떤 남성은 우리를 법원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로 충격을 많이 받았다. 과연 이 일이 네팔 사회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한때는 이 일을 그만둘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네팔에 발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발전은 변화를 뜻한다. 네팔은 변해야 한다. 사업은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보수적인 문화 때문에 여성들조차도 트레킹 가이드가 되겠다고 선뜻 나서지 못했을 것 같다.

여성들이 가이드 업무를 배우겠다고 자발적으로 우리 회사의 문을 두드리는 데 2~3년이 걸렸다. 그나마 1~2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획대로 진행했다. 그러자 찾아오는 여성의 수가 서서히 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의 삶을 개선시켜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변화가 시작됐다.”

-3시스터스 외에 ‘네팔 여성에게 힘을(Empowering Women of Nepal)’이란 사회단체도 99년 설립했다. 이 단체는 무슨 일을 하고 있나. 3시스터스와는 어떤 관계인가.

“둘은 사실상 같은 조직이다. 앞서 말했듯이 3시스터스를 설립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극소수의 여성이 우리를 찾아왔는데 학교를 제대로 마친 사람이 별로 없었다. 트레킹 기술만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었다. 다른 교육도 필요했다. 그래서 어떤 교육 센터를 찾아가 봤는데 프로그램은 좋았으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한테 적합한 내용이었다.

우리 교육생들은 산악 지역에서 온, 배우지 못한 여성들이었기 때문에 직접 커리큘럼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완성되기까지 2년이 걸렸다. 교육 내용이 여성친화적이었기 때문에 교육생들이 좋아했다. 그러니까 ‘네팔 여성에게 힘을’이 트레킹 기술 등 지식을 여성들에게 가르치고 나면 3시스터스가 이들을 가이드로 채용하는 구조인 셈이다. 여성들은 1개월짜리 교육 프로그램을 마치자마자 일자리를 구해 돈을 벌 수 있다.”

-트레킹 기술 외에 어떤 것들을 가르치는지 설명해달라.

“트레킹 기술과 안전 수칙을 교육하는 게 최우선이지만 이외에도 많은 것이 있다. 예컨대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자부심을 갖도록 격려하고, 글을 읽고 쓰는 법도 가르친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우리 프로그램이 또 다른 직업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훈련을 받은 뒤 자신이 가이드 일을 계속할 것인지 아닌지 스스로 결정한다.

만약 다른 직종에 관심이 있다면 다른 일을 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미술에 재능 있는 여성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그가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미술 강사와 연결해준다. 그림을 그리는 데 필요한 도구도 제공한다. 교육생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을 경험해 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다 보면 호텔에서 일하는 8~10세의 어린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가 방문했던 어떤 지역에선 300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 일하고 있었다. 이들 중 일부를 포카라로 데려왔고, 어린이집을 마련해 먹이고 재웠다. 20여명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작은 집이지만 지금 이 어린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3시스터스 덕분에 삶이 바뀐 여성들의 사례를 알고 싶다.

“저개발 지역 출신의 자매가 있었다. 이전까지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다가 3시스터스에 와서 교육받고 가이드로 일했는데 똑똑한 친구들이었다. 자신들도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들은 6개월간 3시스터스에서 지내다 각기 다른 곳으로 떠났다. 1명은 새로운 정착지에서 조산사로 취직했고 다른 1명은 정식 교사는 아니지만 교육자로 일하고 있다. 한 소녀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다 도망쳐 나왔다. 갈 곳이 없어 떠돌다 운좋게 우리한테 왔다. 시간이 걸렸지만 그는 아픔을 극복했고 지금 우리와 함께 일하고 있다. 많은 여성이 우리 프로그램을 거치며 달라지고 있다.”

-3시스터스처럼 영리사업에서 얻은 수익을 사회 운동에 재투자하는 곳을 사회적 기업이라고 한다. 네팔에 사회적 기업이 활성화되어 있나.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기업으로는 3시스터스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은 사회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단체를 유지할 방편으로 사업을 시작하는데 우리는 사업이 먼저였고 사회 운동이 나중이었다.”

-사회적 기업이 뜻깊은 일을 지속적으로 하려면 수익성이 좋아야 한다. 장사가 잘되는지 궁금하다.

“여성들에게 숙식과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기 때문에 3시스터스를 유지하려면 수익이 나야 한다. 아직까지는 충분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현재 3시스터스엔 여성 가이드 84명과 남성 가이드 30여명이 있다. 여성 가이드에 특화되어 있긴 하지만 남성 관광객들도 종종 가이드 의뢰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손님의 90%는 여성이다. 2008년 관광객 800여명이 3시스터스에서 가이드를 구했다. 요즘 네팔의 정치 상황이 좋지 않아서 관광객이 줄었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 우리의 활동을 응원하는 관광객이 많다.”

-3시스터스가 한국인들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은 ‘선수’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대회에서 수상한 경험도 많다고 들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사회적 기업가를 지원하는 ‘아쇼카 재단’이 있다. 유망한 사회적 기업가들을 ‘연구원(fellow)’으로 선발하는데 3시스터스도 아쇼카 연구원이다. 2008년엔 아쇼카 재단이 주최하고 나이키가 후원한 ‘게임 체인저스(Game Changers)’라는 대회가 있었다. 스포츠를 통해 여성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 단체에 시상하는데 3시스터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적인 잡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지난해 개최한 ‘지오투어리즘(Geotourism)’ 대회에서도 우승했다. 지속가능한 관광을 고민하는 단체에 주는 상이다. 여성의 스포츠 활동을 지원하는 재단인 네덜란드의 ‘위민 윈(Women Win)’도 후원금을 여러 차례 줬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설립한 재단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는 우리가 새로운 교육 센터를 짓는 데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보수적인 네팔 사회에서 여성 사회적 기업가로 성공했다는 점이 놀랍다. 어릴 때부터 사회 운동에 관심이 많았나.

“아버지가 사업을 했는데 사회복지에도 관심이 많은 분이었다. 그런 가정에서 자라면서 언젠가는 사회복지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하지만 막상 자원봉사자로 일하려고 했을 때는 학교를 갓 졸업했기 때문에 돈이 별로 없었다. 자원봉사자가 되려면 나 자신의 생계부터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원봉사자가 되기에 완벽한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숙박시설 사업부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도 사회적 기업가가 되고 싶다는 청년이 늘고 있다. 그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한다면.

“사회적 기업가가 되려면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상엔 혁신해야 할 것이 많다. 많은 것이 새롭게 창조되길 기다리고 있다. 재능을 찾아내 이를 사회 속에서 실천하겠다는 열정이 필요하다. 각자가 갖고 있는 창의력을 발견하고 내면의 소리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Posted by 미디어로그 칸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