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길어야 너무 긴 것인가?”
데이터의 엄호를 받은 새로운 질문이 미디어 종사자들을 괴롭힌다. 지면의 한계 때문이 아니라 독자들의 반응성 때문에 생긴 질문이다. 특히 모바일과 동영상이라는 양대 키워드는 길이에 대한 압박을 강화한다. 확실히 작은 화면의 스마트폰으로는 긴 글을 읽기 어렵고, 동영상 호흡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동영상 뉴스채널인 미국의 ‘나우디스(NowThis)’ 같은 모델은 ‘더 짧게’로 결론을 내린 사람들의 신념을 강화시킨다. 나우디스는 1분짜리 온라인 동영상 뉴스로 천문학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신생 언론사다. 최근 1년 동안 70억 조회수를 기록했다. 동영상 한 개당 평균 조회수가 110만건에 이른다. 그들의 홈페이지에는 “홈페이지란 말도 너무 낡았어. 당신의 소셜피드로 뉴스를 갖다줄게”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페이스북을 핵심 거점으로 활동하는 나우디스는 홈페이지에 사망선고를 내린 첫 번째 언론사로 기록될 만하다. 이 회사에는 에디터팀과 데이터팀이 같은 비중으로 존재한다. 철저하게 반응성을 분석해 뉴스 아이템과 길이를 결정한다. 그들이 선택한 최적의 시간은 1분이다. 가령 버니 샌더스를 인터뷰한 뒤 이를 다섯 개의 영상으로 잘라서 배포하는 식이다. ‘버즈피드’ ‘바이스’ ‘마이크’ 같은 언론사들은 데이터에 기반한 동영상 뉴스 서비스로 새로운 미디어를 실험하고 있다.
나우디스를 벤치마킹한 한국의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스(FACE)’에 올라온 동영상 길이도 1분30초 남짓이다. 이들이 퀴어페스티벌 현장을 찍어 편집한 영상은 무려 480만 조회수에 2700개 이상의 댓글을 기록했다. 페이스의 조소담 대표는 “방송사 뉴스처럼 단순히 알리는 기사가 아니라, 현장에 가서도 독자와 똑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하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느낀 그대로를 보여주려 한다”고 밝혔다. 공급자가 아니라 수요자 중심의 언론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이들의 실험이 성공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영향력이나 수익성, 지속성 면에서 확고하게 검증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것이 뉴스의 미래이고 정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는 편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짧은 것이 정답인가? 질문을 바꿔 얼마나 짧아야 너무 짧은 것인가? 미래학자 피터 힌센은 그의 책 <뉴 노멀>에서 길이의 한계치는 제로(0)로 수렴된다고 전망했다(Limit(길이)=0). 이제 정보는 발신자보다 수신자에게 더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상징하는 플랫폼이 길이를 140자로(0에 가까운) 제한한 트위터라고 덧붙인다.
정말 그럴까.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렵다. 정작 트위터 창업자 에반 윌리엄스는 좀 더 긴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미디엄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었다. 길고 짧은 것이 미디어의 궁극적 지향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에반 윌리엄스가 가장 좋아하는 미디어는 여전히 뉴욕타임스다.
비디오 마케팅 전문가인 그렉 자르보에는 ‘비디오가 전통 미디어의 모든 것을 바꾸는 12가지 이유’라는 글을 썼다. 그가 열거한 12가지 이유에는 ‘짧은 것이 이끈다’와 ‘긴 것이 성장한다’는 다소 모순되는 항목이 둘 다 포함돼 있다. 2015년 가장 인기 있는 비디오의 대부분이 5분 이하였다고 한다. 반면 긴 동영상을 보는 데도 사람들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또 모바일 기기의 화면이 커지고 커넥티드TV가 증가한 것이 긴 동영상을 보게 만드는 요소라고 진단한다. 태블릿 PC에서는 10분 이상의 긴 동영상을 보는 비율이 급격히 증가한다.
얼마 전 후배가 유튜브 채널 ‘생각 많은 둘째언니’를 열었다고 알려줘서 들어갔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진지충,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 온라인 관계, 플로베르의 통상관념사전 등을 주제로 한 다소 진지한 채널에 10여일 동안 2000명이 넘는 구독자가 몰렸고 1만5000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동영상도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각각의 동영상 밑에 달린 수십개의 아주 길고 진지한 댓글들이었다. 밀레니얼스는 스낵커블 콘텐츠나 짧은 것만 소비한다는 통념을 깬 것이다. “집 밖에서 인스턴트 음식만 먹다가 오랜만에 엄마가 해준 집밥을 먹는 것 같은 채널”이라는 댓글은 사람들이 서둘러 내린 결론을 의심하게 만든다.
밀레니얼 세대가 왜 10시간18분 동안 진행된 은수미의 필리버스터에 열광했는지, 또 20대들이 어떻게 지난 총선의 반란을 이끌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길이와 자극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편견이 낳은 또 하나의 도그마일 가능성이 높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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