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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경제민주화와 자본독재

자주적 말길. 군부독재가 언로를 관리하던 시기에 언론학자 방정배가 던진 화두다. 비판언론학을 개척한 원로 언론학자는 학문의 모방이나 이론 흉내 따위를 벗어나 한국의 언론 현실을 포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언론학계에 보기 드문 저작이 나온 지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학문은 현실과 괴리되어 있다.

 

경향신문DB

더러는 미디어 빅뱅 시대에 케케묵은 언로 타령이냐고 눈 흘길 수 있다. 실제로 대다수 사람이 똑똑전화로 날마다 문자를 나누며 소통할 만큼 말길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가. 미디어는 넘쳐나지만 정작 말길은, 아니 말길 이전에 말문이 닫힌 영역이 있다. 당장 독자들 다수는 앞에 쓴 똑똑전화라는 말이 거북했거나 조소를 머금었을 법하다. 왜 그럴까. 국립국어원이 아무리 우리말로 옮겨 권해도 미디어들이 받지 않아서다. 만일 신문과 방송이 똑똑전화를 쓴다면, 자연스럽게 들릴 터다.

 

단순히 외래어 순화에 그치지 않는다. 말문이 닫혀 일상에서 거부감마저 일으키는 말들이 있다.

 

가령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자본가라는 말은 낯설다. 그 말을 하는 순간, 혹 사상이 의심받지 않을까 경계해야 한다. 하물며 자본독재라는 말이 공론장에서 시민권을 갖기란 어렵다.

 

하지만 우리에겐 불편한 자본독재는 지구촌에서 자유롭게 논의되고 있다. 이를테면 프란치스코 교황마저 자본이 지배하는 체제를 새로운 독재로 공언했다. 그럼에도 교황이 방한하고 신드롬까지 일으킨 한국에서 그의 독재론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문과 방송이 부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딴은 교육방송이 방영한 민주주의 다큐를 놓고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유기업원이 앞장서서 색깔몰이에 나서고 그 방송사 이사들이 용춤 추며 간섭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아닌가. 윤똑똑이들 주장처럼 자본의 무분별한 이윤 추구 논리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자는 주장이 경제를 망친다면, 북유럽 자본주의는 물론 독일 경제도 오래전에 망했어야 옳다.

 

나는 지금 의도적으로 칼럼 표제에 자본독재를 내세우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솔직건대 학자인 나조차 자기검열의 유혹을 받을 만큼 자본의 힘은 막강하다. 행여 그 말이 대중성 없다고 예단할 일은 아니다. 그런 속단이야말로 민중을 대중으로 얕잡고 잠재성을 꼭꼭 밟는 논리일 수 있다.

 

교황이 비판한 독재는 규제 없는 자본주의. 박근혜 대통령은 정반대로 임기 내내 규제를 암덩어리로 부르대왔다. 국정방송이나 다름없는 3대 방송과 조··동 신방복합체도 탈규제를 외쳐댔다. 그 결과다. 교황이 말한 자본독재의 전형적 보기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민생은 힘들지만, 자본과 그 대변자들은 살찔 대로 살쪄왔다.

 

6월대항쟁 이후 30, 자본이 한국 사회를 사실상 지배하는 권력을 거머쥐기까지 1등공신이 미디어다. 군부독재 성립과 유지의 최대 공신이었던 과거와 다를 바 없다. 상대가 군부에서 자본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1961년 쿠데타 이후 87년 대항쟁까지 제도언론은 군부독재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군부독재라는 말이 점점 호응을 얻어 마침내 그들을 몰아낼 때까지 열정적으로 나선 주체가 바로 민중이었다.

 

그런데 군부가 권력을 잃은 빈 공간으로 자본이 들어섰다. 박정희나 전두환 앞에 설설 기던 자본은 6월대항쟁 이후 목에 잔뜩 힘을 주기 시작했다.

 

군부독재를 몰아내는 데 도움은커녕 군부와 한통속이던 자본이 민중항쟁의 수혜를 만끽해온 셈이다.

 

자본독재와 견주면 총칼과 곤봉을 앞세운 군부독재는 차라리 순진하다. 자본독재의 힘은 그들의 숙원인 일반 해고를 노동개혁으로 박근혜 정권이 강행할 만큼, 비정규직의 눈물과 고통을 정규직 탓으로 돌릴 만큼, 광고를 무기로 거의 모든 미디어를 장악할 만큼 강력하다.

 

미디어가 자본독재를 기피함으로써 한국은 자본에 대한 규제를 공론장에서 논의하기 어렵다. 당장 시대적 과제인 경제민주화를 짚어보라. 한국 정치와 언론에서 경제민주화 논의는 고작 누가 구조조정을 인간적으로 할 것인가에 머물고 있다. 그 수준은 유럽과 견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매파힐러리나 광대트럼프보다도 못하다.

 

민중의 삶, 민생을 참으로 살리려면 자본독재를 자본독재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다양한 체제라는 엄연한 사실, 한국자본주의는 북유럽은 물론 보수당 정권의 독일자본주의와도 다르다는 진실을 헬조선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가능한 한 많이 공유해나가야 옳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헬조선식밖에 없다고 강변하는 부라퀴들이 언론계만 아니라 대학 강단에도 수북하기에 더 그렇다. 닫힌 말문을 트고 벅벅이 말길을 열어가야 할 이유다.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