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불법 민간인 사찰이 급기야 언론사로까지 확대된 사실이 확인됐다. 23일 서울, 조선, 경향, 한겨레신문 등의 보도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일부 유력 정치인의 동향뿐 아니라, YTN을 비롯한 KBS, MBC 노조와 해당 언론사 간부들의 동향을 사찰했다 한다. 그리고 관련 동향을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경찰청 등에 보고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한다. 한국기자협회(회장 우장균)는 그동안 정부의 불법 민간인 사찰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그 전모를 확실히 밝혀내 책임자를 처벌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오늘 사찰 대상이 언론사에까지 이르렀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개탄을 금치 못한다. 개명 천지에 있을 수 없는 일이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돼 왔다는 사실에 분노를 금치 못한다. 이것이 정녕 세계 변방에서 중심국으로 발돋음 했다는 G20 개최국 정부의 행위란 말인가? 뒤로는 추악한 일을 하면서 ‘국격’을 논했단 말인가? 유신시대나 군사정권 때나 있음직한 사찰의 망령이 아직도 언론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단 말인가?
한국기자협회가 언론에 대한 사찰에 분노하는 것은, 언론이 신성불가침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나 기자 개인의 무제한적인 자유가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헌법적인 명제인 것이다. 따라서 공적 목적을 위한 언론의 취재, 보도 행위는 그 누구의 간섭과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사회적 합의이다. 정부는 YTN과 KBS, MBC노조와 해당사 간부들에 대한 사찰이 국무총리실 일개 사무관의 포켓 수첩에 적힌 메모일 따름이고, 노조에 대한 동향보고일 뿐 언론사에 대한 사찰이 아니라고 강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찰이 이뤄진 시기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이른바 ‘낙하산 사장 임명’과 이를 통한 ‘방송장악’ 논란이 거세게 일던 때였다. 이로 인해 YTN과 KBS, MBC 등이 홍역을 치렀고, 이 과정에서 80년대 이후 처음으로 언론인들에 대한 대량 해직과 무더기 징계가 자행됐던 시기였다. 그리고 아직도 8명의 언론인들이 해직의 멍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언론계로서는 크나 큰 아픔이었던 바로 그 시기를 관통하는 한 복판에 이번 사찰이 있었다. 또 불법 사찰 내용을 바탕으로 정부의 언론 정책이 입안됐을 것이라는 의혹까지 커지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국기자협회는 불법일 뿐 아니라 반인륜적이기도 한 정치 사찰을 몰아내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선배 언론인들과 우리의 언론 역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불법 사찰을 정치 공작의 도구로 쓰다가 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스러져간 정권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다. 정부는 언론사 불법 사찰에 대해 명명백백히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은 물론 재발 방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검찰도 한 점 의혹 없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길 촉구한다. 그것만이 최근 정치적 중립 논란에 휩싸인 검찰을 국민의 검찰로 바로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한국기자협회는 정부와 검찰의 후속 조치를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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