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결국 HBO 맥스에 돌아올 것이다. 근사한 새 모자를 쓰고 돌아올지 모른다. 시카고 대학에서 미국 흑인 영화와 매체를 연구하는 재클린 스튜어트 교수는 이 영화에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설명을 서장으로 붙여서 제공하게 될 것이라 밝혔다.
영화가 돌아온다니, 언제 떠났단 말인가? 지난 8일 반인종주의 시위 정국에서 할리우드 극작가 존 리들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노예제도를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유색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HBO가 미국의 노예제도와 남부연맹에 대한 “폭넓고 완벽한 그림”을 함께 제공하기 전까지 이 영화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HBO는 “인종주의적 묘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릇된 것”이라는 응답과 함께 일단 목록에서 영화를 지웠다.
HBO의 신속한 대처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편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책임 있는 플랫폼 사업자의 자세를 보였다고 칭찬한다. 반대로 ‘정치적으로만 올바른’ 인식을 갖고 사실상 내용 검열을 무분별하게 자행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또 다른 편에서는 거대 통신사가 소유한 신규 사업자가 유료 이용자들이 떨어져 나갈 것을 두려워해서 취한, 일종의 위기대응 매뉴얼에 따른 행동일 뿐이라고 냉소적으로 본다.
사태는 간단치 않다. HBO를 책임 있는 사업자라 할지, 무책임한 검열자로 볼지, 아니면 그저 이용자 극대화에 골몰하는 기회주의자로 취급할지 등의 다른 의견들을 그저 사람들이 제각각 이념과 정견이 달라서 그렇다고 치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인종주의 이념을 담은 내용물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이념이 다른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정견이 같은 사람들도 다른 견해를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광장에 노예무역상 전력이 있는 역사적 인물의 동상이 오랫동안 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민이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자. 공개적으로 파괴해서 없애자는 의견, 동상 옆에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는 교육용 구조물을 설립하자는 의견, 동상에 대해 개인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장치를 부가해서 설치하자는 의견, 광장의 더 좋은 자리에 노예해방의 상징물을 더 크게 세워야 한다는 의견, 그리고 또 다른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전문가들이 복수의 대안으로 정리해서 제시하고, 공론조사를 통해서 시민적 합의를 도출해서 대응하면 좋겠지만, 이게 끝일 리 없다. 성별, 민족, 종교, 연령 등에 따른 억압과 차별을 함의하는 내용물은 광장뿐만 아니라 도서관, 교실, 대중매체, 교류매체, 그리고 결정적으로 국가기구에 온갖 변형된 방식으로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는 수상한 동상을 다 때려 부수고, 귀에 들리는 나쁜 목소리를 모두 없애면 된다고 쉽게 단정하지 말자. 그렇게 없애는 쪽이 최악의 억압이라는 생각을 가진 선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실은 더 좋은 방안이 나올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염려스러운 것은 시민과 그 대표들이 해야 할 일을 거대 플랫폼 사업자에게 내맡기는 경향이 강해지는 일이다. 심지어 이를 장려하는 정치인도 있다. 덕분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어느덧 내용물에 대한 편집권을 행사하는 언론매체처럼 보이기 시작했으며, 넷플릭스와 유튜브는 내용중립성이라는 가치를 슬그머니 내려놓는 듯 보인다.
플랫폼 사업자가 서비스를 고도화하기 위해 내용물의 목록에 대한 편성권을 행사하는 일은 고유한 일이다. 그러나 누구도 플랫폼 사업자에게 민주적 다원성의 한계를 규정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누구도 플랫폼 사업자에게 불투명한 문화적 편향을 계발해도 좋다는 권능을 허락하지 않았다. 거대 과점 사업자들이 이런 권한과 권능을 어떻게 행사해도 무방하다는 듯한 시민의 무심함이 우려스럽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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