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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사회적 합의’ 논의의 장, 언론이 마련해야

코로나19로 인해 6월 개최 예정이던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연기됐다. 대신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인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가 진행 중이다. 해시태그를 통해 상호 연결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의 특성을 활용하여, 다양하게 꾸민 아바타들이 함께 걷는 이미지가 연출되는 온라인 축제이다. 하지만 해시태그를 통해 검색된다는 특성을 이용해 성소수자를 모욕하는 표현들이 등장하면서 ‘시각적으로’ 행진을 방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 참여자들은 “혐오표현이 등장하니 이제야 진짜 퀴어 퍼레이드” 같다는 감상을 남겼다.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의 권리를 오랜 기간 외면해온 동안 일상생활과 축제, 온라인과 오프라인 할 것 없이 혐오표현과 차별 행위가 보편화되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2007년 이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노력이 계속됐지만, 차별 사유로서 ‘성적 지향’을 포함하는 데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 세력에 부딪혀 매번 좌초됐다. 이번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이 재발의를 준비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가 법안명을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로 바꾸어 입법 추진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차별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므로 인권에 역행한다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자 인권위는 금지가 아닌 ‘평등’을 앞세우는 전략을 채택했다. 표현의 자유 제한 주장이 제기되는 맥락은 이렇다. 차별이 공고하게 자리 잡은 경우에, 즉 이것이 차별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차별 행위의 문제를 지적당하면 오히려 자신의 권리에 대한 침해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은 인천국제공항 보안요원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 등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나고 있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평등법)과 관련해 보수 개신교 세력의 반대를 사회적 합의의 문제로 보면서 “사회적 갈등을 피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 사안의 인과관계를 바꿔 보는 말과 같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소수자와 관련한 갈등은 차별행위가 지속되기에 생기는 것이다. 이는 피해야 할 갈등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갈등이다. 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면서도 이를 단순히 동등한 이해관계 당사자 간 대립처럼 여기거나, 소수자의 권리 보장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적 합의는 이 갈등이 일어난 원인을 직시하고 우리 사회가 합의한 공적 권리의 주체에 누가 포함되고 배제되는가를 논의하는 과정이다. 사회적 합의를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점으로 생각해야지 문제 회피를 위한 수사로 사용해선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프레이밍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사회적 갈등 사안을 단순히 주목 경쟁을 위한 트래픽 자원으로 활용하지만 말고, 문제의 근본적 원인과 우리 사회의 대응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프레임을 짜야 한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취준생’을 갈등 주체로 제시하는 것,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문제에 대해 혐오 표현들을 중계하거나 보수 개신교의 과격한 주장만을 부각하는 것은 전형적인 편가르기식 보도 행태이다. 비정규직 문제나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그동안 어떻게 진행되어왔고, 현재 상황에서 어떤 논의들이 필요한지 짚어주는 기사보다 대중들의 편가르기 싸움에 편승하는 기사들이 넘쳐나는 것은 그것이 더 많은 댓글과 클릭 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이 갈등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차별금지법 문제를 다루는 것이 사회적 합의의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과 관련해서는 차별 구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 복합차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평등의 개념 확인 등 정말로 ‘사회적 합의’를 요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언론의 보도가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로 나아가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