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정국이다. 소위 ‘테러방지법안’이 정국을 테러했다. 4·13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관련 법 통과도 미뤄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하명을 받은 새누리당은 국민의 안전을 빌미로 테러방지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반면 야당 국회의원들은 반대하며 무제한 토론에 나섰다. 테러를 방지하겠다면서 국정원에 사실상 국민의 인권을 ‘테러’할 권한을 주겠다고 하는데 찬성한다면, 그 국회의원은 그들이 입에 달고 사는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아니다.
사실 국정원이 아니어도 특정기관에 국민을 무한정 감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전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기관들이 그들이 수집한 정보로 사람을 겁박하거나 회유한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국내정치의 중심에 섰던 것이다.
더군다나 국정원은 최근에도 대선 댓글 공작, 간첩 조작 등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조직이다. 그런 조직에 소위 테러 위험인물을 판단하고 그들의 출입국·금융거래 및 통신이용 등 관련 정보나 개인 정보와 위치 정보를 요구할 권한을 준다는 것은 잠재적으로 모든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정말로 불가피하게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권한을 부여할 때는 그것을 최소화하고, 감시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동시에 마련해야 한다. 테러방지법이 그런 조항을 지니고 있지 못함은 불문가지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테러방지법으로 테러를 예방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사실 테러는 국내 문제가 아니다. 정치·외교의 문제이고 복잡한 요인으로부터 비롯된 국가, 민족, 인종 간 갈등의 산물이다. 따라서 테러 발생을 미리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정치·외교에 있다. 정치·외교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테러를 예방하는 최선의 길이다. 최근 성급한 사드 배치 결정, 개성공단 폐쇄 결정 등을 둘러싼 우리 정부의 혼란스러운 정치·외교 대응을 보면서 테러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은수미 의원이 테러방지법 의결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 진행을 하고 있다_경향 DB
그동안 나름 국회법에 따라 국회를 운영하였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던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가비상사태도 아닌데 국회법을 어기고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했다. 정 의장이 법안 내용의 문제점이나 절차의 문제점을 몰랐을까? 책상을 치면서 흥분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하명 수행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새누리당의 행태를 보면 그 뒷사정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무리수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테러방지법의 또 다른 목적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상황에서 야당이 국회법에 따라 합법적 저지 절차인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권한을 이용해 테러방지법안 통과 저지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제한 토론에 나선 국회의원들의 고통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것이기에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무제한 토론은 본래의 목적 이외의 예상치 못했던 바람직한 성과를 낳았다. 많은 시민들이 테러방지법이 제정됐을 때 우리에게 어떤 피해가 발생할지를 좀 더 명확히 깨닫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무제한 토론에 나선 국회의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긴 시간을 이용해 테러방지법 내용의 문제점에서부터 국정원의 실체 그리고 권력 남용을 막을 제도적 장치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국민들은 이를 학습할 시간을 가졌다. 소위 제대로 된 정치적 학습이 진행되는 기회를 가졌다. 민주주의 관점에서 아주 기쁜 일이다. 그런데 기쁘지만은 않다.
테러방지법이 제정되는 시점에 관심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를 무제한 토론을 통해서야 접하는 사람도 다수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요즘 같은 매체 폭발의 시대에. 기울어진 운동장인 언론의 현실 때문이다.
주요 언론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위험을 지닌 테러방지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데 그 실체를 제대로 전한 적이 거의 없다. 간간이 테러방지법이 정치적 논란이 되고 있음을 전했을 뿐이다. 테러방지법안을 상세히 검토해야 할 국회 정보위원회의 법안 검토가 졸속으로 진행되고 내용도 일방적이었다. 국정원에 테러위험 인물을 결정하게 하는 과도한 권한 부여도, 테러방지법이 개인의 인권을 보호할 다른 법률들에 우선한다는 조항의 위험성도 지적하지 않았다.
그런데 국회를 취재하는 다수의 주요 언론들이 이런 문제점을 지적한 바는 없다. 아니 무제한 토론으로 그 문제점들이 다 폭로되는 이 순간에도 법안 내용보다는 ‘기저귀 발언’ 등 무제한 토론의 부수적인 내용에만 집착하고 있다. 무슨 효과를 노리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언론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걱정스러운 것은 그 언론들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이다. 그들도 언론사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좋은 언론인이 되겠다고 결심했을 테고 지금도 그럴지 모르는데 그들이 혹 정신분열증에 걸리지나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
김서중 |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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