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 영상을 보고 헤드셋을 벗은 후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땅을 밟는 것이 잠시 무섭기도 했다. 지난해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미디어 콘퍼런스에서의 일이었다. 비오는 날 범죄가 일어난 ‘그때 그 현장’을 3차원 시뮬레이션 영상과 게임기술 그리고 VR 헤드셋 등을 결합해 이용자가 그대로 체험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재현한 것이다. 그 뒤로 잊었다. 에버노트 ‘미디어 혁신’ 파일에는 새로운 디바이스의 실험이라고 입력했고, 적용은 먼 미래의 일로 생각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를 보다가 생각을 다시 했다. VR 기사를 보게 된 것이다. ‘안드로이드’인지 ‘아이폰’인지 확인하고 NYTVR를 다운받으면 그만이다. ‘구글 카드보드’나 ‘모바일’, 헤드폰으로 볼지는 선택사항이다. 다운로드가 완료되면 아이오와 코커스를 앞둔 버니 샌더스의 유권자 미팅 현장을, 모니터를 터치해 위아래 좌우 자유자재로 360도로 이동하며 사각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장의 화면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시선의 움직임에 따라 현장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조선일보도 VR저널리즘 도입을 선언하고 ‘카드보드’를 무료로 배포한다고 발표했다.
핵심은 독자가 쉽고 편하게 볼 수 있고, 기술적 구현이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VR 기술을 가진 한국 업체들이 자신의 시장을 만들기 위해 협력을 원하고 있다. 방송국이 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고 방송시설이 없다고 해서 좌절할 일이 아닌 상황이 된 것이다. VR저널리즘은 엄청난 비용이 드는 미래의 일도 아니고 독자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고 언론사 누구나 적용할 수 있는 적정기술을 이용한 가까운 현실이다. 미국 언론들은 대선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미디어다.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에 열광했다가 시장의 규모와 언어의 장벽이 너무 커서 “우리하고는 사정이 달라” 하고 외면할 일이 아니다. 앞으로 언론사의 혁신 능력은 빠른 실패에 있을지 모른다.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발견하는 능력(Discover+Ability), 그리고 빠른 실패와 교훈을 찾는 능력(Test & Learn)이다.
‘미국 대선’이라는 세계 최대의 미디어 혁신 현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미국 대선인가? 아이오와 코커스부터 시작해 대역전극을 만들어낸 2008년 오바마의 대선 캠페인은 정치는 물론 기업과 정부, 시민단체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2016 미국 대선 주요 일정, 미국 대선 절차_경향DB
그들의 캠페인 전략과 메시지, 리더십과 정책, 데이터 기술과 유권자 참여, 그리고 미디어 채널 혁신은 디지털시대 인간의 전략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유권자 맞춤형 데이터를 진전시킨 그들의 ‘일각고래’와 ‘드림캐처’ 프로젝트는 세계 카지노 시장을 포함해 데이터 전략의 지각변동을 가져왔으며, 200만명의 자발적 유권자 참여 공격·수비 조직인 ‘진실팀(Truth Team)’은 팬 참여 캠페인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의 개념을 바꿔버린 기획·제작·유통·홍보의 전 과정을 최고경영자(CEO) 레이준과 함께하는 샤오미의 천만 팬클럽 미펀을 이러한 사례와 연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 언론은 버니 샌더스의 진보적 성향과 약진을 보도하지만, 이들의 캠페인 안에 숨은 이야기는 더 재미있다. 45세 이하로 구성된 팬조직 ‘Feel the Bern’은 선거 지휘조직과 별도로 움직이지만, 느슨한 연결과 강력한 팬덤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모델을 가장 구체적으로 실천한다. 정부 캠페인과 기업 마케팅의 새로운 교과서다.
경향신문 손제민 워싱턴특파원과 서울에 있는 국제부의 지원으로는 답이 없다. 그는 지난주 미국 대선은 물론 동부의 폭설, 우파의 총기사건, 미국의 북한 제재를 다뤄야 했다. 국제면에 갇혀 있고, 가끔 1·2면을 넘나든다. 의제와 캠페인 전략은 물론 새로운 기술과 기기, 데이터 및 팬덤 전략 등의 취재를 위해 ‘미국 대선’이라는 독립된 팀과 플랫폼이 필요하다. 조선비즈와 매일경제는 지난 1월에 열린 ‘CES’에 팀을 보냈고 그것을 지면에 내보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보고서와 책을 내고, 주요 전문가를 연결해 콘퍼런스를 열고, 독자와 콘텐츠를 연결하고 있다. 이 방향이 맞다.
두 사람의 편집 책임자에게 이런 조언을 한 적이 있다. ‘미국 대선’을 7장의 텍스트 기사와 1분30초짜리 리포트로 흘려보내서는 안된다, 미국 대선을 집중 취재하라, 다채널 플랫폼을 만들어라, 독립된 팀을 만들어 파견하고 독자 및 전문가들과 협력하라, 기업과 정부의 수요를 분석해 콘텐츠를 수익모델과 연결하라, 기사·보고서·책·팟캐스트·콘퍼런스·학교를 기획하라. 그리고 지원하되 간섭하지 말라. 미국 선거를 경험한 김윤재 변호사는 <평판사회>에 이렇게 적고 있다.
“1980년대 초반 스티브 잡스는 거대제국 IBM을 따라잡기 위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시도했다. 이른바 선거 캠페인이었다. 이를 위해 잡스는 무명의 지미 카터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선거 전략가를 영입했다.”
잡스는 “창의력은 서로 다른 것을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혁신을 종이신문에 구겨 넣지 않아야 한다. 새 콘텐츠는 그 자체로 새 미디어다. 미국 대선을 한국의 독자들과 새롭게 연결하라.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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