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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칼럼+옴부즈만

[미디어 세상]공작 정치와 언론 공작

옹근 24년 전 오늘이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공작 정치’ 논란을 대서특필했다. 총선을 앞둔 당시 민주당 김대중 대표는 공작 의혹을 정면 제기했다. 민자당 김영삼 대표는 자신이 평생 공작 정치에 시달린 사람으로서 공작이 드러나면 엄단하겠다고 말했다.

새삼 ‘응답하라’식으로 1992년 총선을 들먹인 까닭은 2016년 총선을 앞둔 오늘의 야권 분열과 정치 불신에 기시감이 들어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분열되고 정치 불신은 극에 이른 현실 뒤에 혹 공작이 똬리 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실 ‘공작 정치’는 김영삼이 박정희 독재와 싸우며 입에 오른 말이다. 김영삼은 “공작 정치의 명수 박정희”의 지시에 따라 정보부와 경호실이 “야당 분열과 정치 불신 공작”을 수행했다고 단언했다. 이른바 ‘여야 영수회담’에서 박정희는 ‘안보 위기’를 거론하고 앞으로 민주주의를 하겠노라 김영삼에게 약속했지만, 회담을 마친 순간부터 공작했다는 ‘증거’도 제시했다. 실제로 제1야당 대표 김영삼은 긴급조치 위반으로 기소됐다.

김영삼이 콕 집어 공작 정치로 비판한 ‘야당 분열과 정치 불신’의 전형적 보기는 1987년 대선정국이다. 6월항쟁으로 위기를 맞은 독재정권은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을 공작했다. 공작 수준은 두 김씨 어느 한쪽으로 민심이 쏠리지 않도록 여론을 ‘관리’하는 차원까지 이르렀다. 결국 두 사람은 투표날까지 서로 당선을 장담하며 분열했다. 권력의 공작에 신문과 방송은 용춤 추었다.

2016년 총선 길목의 야권 분열과 정치 불신은 어떨까. 2012년 대선정국에선 국정원의 댓글 공작이 벌어졌다. 그 실체가 아직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고 수사에도 제동이 걸린 상황이기에 저들이 총선정국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공작’은 있다. 2016년 총선정국에서 ‘정치 공작’의 주역은 미디어다. 특히 ‘조중동 신·방 복합체’가 그렇다. 제1야당이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쪼개지기까지 얼마나 분열을 부추겼는가는 접어두자. 이후에도 두 당 사이 갈등을 끝없이 조장하고 있다. 최근 “김종인, 독일 박사 우려먹었다”며 그것이 “안철수측 멍군”이라는 조선일보 표제, 국민의당이 김종인이 “박쥐처럼 왔다갔다” 했다는 중앙일보 표제, “김종인, 월급 한번 줘봤나”를 표제에 올린 동아일보를 보노라면 과연 이들이 정상적인 저널리즘인가를 되묻게 한다. 어느 당의 어떤 정책이 경제민주화와 민생 살리기에 값하는가를 냉철하게 비교하고 분석하거나 의제로 설정하는 보도는 찾기 어렵다. 종편들은 사소한 꼬투리로 야권 싸움질을 부추기는 ‘시사토론’을 목청 높여 시도때도 없이 방송한다. 그 방송을 보는 이들이라면 정치를 불신하고 특히 야권에 등 돌리기 십상이다.


문제는 호남 유권자들을 겨냥한 공작이다. 신문과 방송을 보노라면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호남에서 지지율이 어금버금하도록 누군가 기획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정도다. 1987년 대선정국에서 정보기관이 했던 공작을 미디어가 하는 셈이다. 의도든 아니든 객관적으로 지면과 화면이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 미디어의 공작 정치, 언론 공작은 그만큼 정권과 언론계 상층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호남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 지지율이 끝내 난형난제일 때, 수도권 민심은 왜곡될 수밖에 없다. 수도권의 야권 표가 거의 같은 비율로 분산됨으로써 대다수 지역에서 당선자는 새누리당일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권이 민생경제를 파탄내도, 노동개악을 강행하고 전교조를 탄압해도, 천박하게 ‘통일대박’을 호언하다가 남북관계를 냉전시대로 돌려놓아도, 집권당이 수도권에서 압승한다면 얼마나 더 오만해지겠는가. 물론, 민생 파탄 위에서 더 많은 돈을 긁어모아온 상류층과 그들을 대변하는 정계와 언론계 모리배들에겐 남은 인생도 탄탄대로일 터다.

그래서다. 지금이라도 공작 정치와 언론 공작에 자신이 놀아나고 있지 않은지 깊은 성찰이 절실하다. 한발 물러서서 짚어본다면 해법은 쉽다. 민생경제·민주정치·남북대화가 죄다 죽어가는 현실 앞에 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이 마땅히 공동전선을 형성해야 옳다.

명토박아 두거니와 야당이나 그 후보들을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고통받는 민중, 파괴되는 민주, 적대로 돌아간 분단민족을 위해 그렇다. 20대 총선이 ‘언론 공작’ 선거일지, 그 공작을 넘어선 민의의 승리로 기록될 것인지는 전적으로 세 당의 연대 여부에 달려 있다.

허망한 소리로 지레 눈 흘기지 말 일이다. 정작 허망한 일은 따로 있다. 분열로 투표까지 갔을 때 마주칠 순간은 오직 하나 아닌가. 언론, 아니 언론 공작 기관의 ‘선거여왕’ 찬가다. 간곡히 세 당에 촉구하는 까닭이다. 만나라.


손석춘 |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