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오래된 과제다. 사실상 국영방송이었던 독재 정권 시기만이 아니라 민주화된 이후에도 정권의 행태에 따라 공영방송이 정권의 홍보방송으로 전락한 적이 많았다. 이번 정권 이후 KBS나 MBC의 사장 선임 과정이 비교적 투명해지고, 시민의 관여도를 높이면서 정치적 논란이 잦아들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정치적 논란이 일었다. KBS 보궐 이사 임명을 두고 정치권 추천 논란이 재연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낸 천영식 전 KBS 이사가 총선에 출마하려 이사직을 사퇴하면서 빚어진 논란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갖고 있는지 여부다. 천 전 이사가 자유한국당 추천 몫이었고 그 후임 추천권을 행사하는 게 당연한 듯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치권이 법에도 없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을 직간접으로 행사해온 게 ‘관행’이지만 이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일은 드물었다. 정치권 추천은 옳지 않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자유한국당 ‘추천’이라는 후보들이 자격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으면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했을지 모른다. 천 전 이사 후임으로 자유한국당이 추천했던 후보들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방해했다고 비판받는 이헌 변호사, 5·18을 폄훼한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였다. 다행히도 방송통신위원회가 이들이 공영방송 이사로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고 거부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의 세 번째 추천 후보인 서정욱 변호사 역시 자격 논란에 처했다. 서 변호사는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무효라 주장하는 정치적 인물이다.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공영방송 이사들이 전부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거부되어 마땅하다. 공영방송을 정치판으로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보자들 각각의 부적격성을 넘어서 부자격자들이 추천될 가능성을 내포한 정당의 추천권 행사 자체를 금지해야 하지 않을까? 법에 정당의 추천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은 없지만 법의 정신은 이를 금지한다고 봐야 한다. 방송법은 공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사회를 설치하고, 정치적 경력이 있는 사람을 이사의 결격사유로 정했다. 즉 정치권의 개입을 금지하는 것이 법의 정신이다. 정치권의 추천권 행사는 그것이 비공식적이라 하더라도 법의 취지를 어기는 행위다.
방송 관련 최고 정책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은 대통령과 여야 정당이 추천해 구성한다. 정치적 조합으로 보이지만 정치적 균형으로 기구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궁여지책이다. 방송통신위원들이 정치적 대리인이 되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정당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 행사가 당연한 듯 이뤄져 왔다. 그렇기에 특정 정당의 의도에 따라서는 논란이 될 만한 정치성향을 띤 인물이 공영방송 이사 후보자로 추천받는 것이다. 정당은 공영방송에 적합한 인물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을 대변할 사람을 후보자로 추천하는 것이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종속 논란을 종식시키려면 고리를 끊어야 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앞서 두 후보자를 거부하면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다. 그것이 지켜지기를 바란다. 법으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각 주체가 법의 취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 8조에 방통위원의 신분보장을 규정한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법에 취지를 더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방송법에 ‘대통령이나 정당은 방송통신위원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고, 방송통신위원은 추천한 대통령이나 정당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권한을 행사한다’는 조항을 규정하자고 제안한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컨텐츠 융합자율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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