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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과도한 확신에 찬 전문가를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제 분야를 넘으면 동네 아저씨나 아줌마에 불과하다. 이번 코로나19 난리 속에서 얻은 잠언이다. 전염병 창궐로 모두가 신경이 곤두서있는데, 난리에 소란과 혼란을 더하는 꼰대들이 있다. 책임이 모호한 상대에게 호통을 치고, 철 지난 사정을 꺼내 버럭 꾸짖는다. 


사실 우리 인구의 절반은 이런 호통과 꾸짖음, 그리고 ‘아무 말 대잔치’급 예언과 충고에 익숙하다. 초등학교 이후 교육 과정에서 필수 과목을 이수하듯이 권위주의적 소통을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이런 일을 당해서 분한 마음이 들더라도 예의치레로 넘어간다. 그러나 전문가라 자처하는 자의 빗나간 예언과 기만적인 충고는 어찌할 것인가.


바이러스보다 빨리 퍼지는 게 ‘가짜뉴스’라 한다. 그런데 가짜뉴스라 불리는 정보 가운데 진짜 메시지가 적지 않으며, 내용도 허위가 아닌 경우가 있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예컨대, 미워하는 상대가 싫은 내용을 전달할 경우에 가짜뉴스라고 후려쳐서 해당 메시지의 공신력을 깎아내리는 수법이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CNN 기사를 대하는 방식이다.


사실 가짜뉴스라 불리는 것의 대부분은 그저 부실한 뉴스다. 취재가 불완전하거나, 부정확한 묘사가 있거나, 혹은 글쓴이의 의도가 뻔히 보이기에 내용마저 의심스러운 기사들 말이다. 진짜 뉴스에 오명을 붙인 결과라 하겠다. 가짜뉴스란 이렇듯 대체로 정치적이거나 평가적인 동기에 따라 만들어져서 공개적으로 유통한다. 이런 가짜뉴스를 알아보는 능력이 정보전염병(infodemics) 시대를 사는 시민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문해력, 즉 정보수용 능력이다.


가짜뉴스와 무관하게 해로운 정보가 있을 수 있다. 일단 몰라서 당하는 오류정보(misinformation)가 있고, 대조적으로 어떤 상대가 작정하고 기만하기 위해 전파하는 반정보(disinformation)가 있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 전자는 내용의 허위성이 해롭고, 후자는 기만적 의도가 위험한 경우다. 이 둘을 구분하는 능력도 문해력에 속한다. 


메시지 내용에 오류 가능성이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거짓된 내용을 차근차근 걸러내면 된다. 이는 곧 참된 내용을 확인하는 배움의 과정이기도 하다. 만약 전달자의 의도가 의심스럽다면, 신속히 상대방의 의도를 폭로하는 방식으로 대처해야 한다. 발신자를 속이는 허위통신은 흔히 반정보에 속하는데, 언론사가 아닌데 뉴스를 만들어 선전물을 유포하거나, 의사가 아닌데 의료적 처방을 내리며 행동을 촉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정작 일반 시민이 염려해야 할 대상은 지식인이라 불리는 자들이 주는 예측과 충고다. 정확히 말하자면, 잘못된 예측과 기만적 충고가 염려스럽다고 해야겠다. 여기에는 근본적 어려움이 개입한다. 그 예측이 오류인지 아닌지 사전에 확인할 방도가 없다. 그 충고가 기만적인지 아닌지 당하기 전에는 알 도리가 없다. 


존경받는 지식인의 충고나 많은 전문가의 예측이라도 사전에 확인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지식인이란 결국 스스로 의심하는 자들이다. 이들이 학술사회를 구성해서 논문이라는 형식으로 각자 주장을 교환하고, 자료를 수집해서 공적 검증절차를 밟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과도한 확신에 찬 전문가를 경계해야 한다. 특히 근거 없이 미래에 대해 예언하는 자를 잘 보아 두어야 한다. 또한 진정성을 과시하는 지식인을 의심해야 한다. 뜨거운 피를 갖고 태어난 지식인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들이 전문성을 발휘하는 순간은 흔히 초연한 태도로 훈련받은 일을 해치우는 상황에서 볼 수 있다. 전문가의 근거 없는 예측과 의심스러운 충고를 경계해야 한다. 이것이 정보전염병 시대를 사는 시민이 갖추어야 할 문해력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