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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깨야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범죄에 활용되지만 법·제도의 변화가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는 유사 이래 반복되어 왔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성착취 행위들이 디지털 이미지로 저장되어 유포가 가능해졌고, 국제화된 디지털 네트워크에서 공유되고 판매되지만, 단일 국가 단위로 처벌이 어려운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아동청소년을 유인하는 디지털 성범죄 양상이 심각하다. 범죄자들은 개인의 익명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면서 취약한 아동청소년 피해자에게 신상 공개와 유포 협박을 하여 손쉽게 영상물을 얻고 이를 판매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중이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 아동청소년 성착취 피해에 대해 즉각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인 경우 상담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도 많은데, 신상 공개와 유포 협박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보도됐고 최근 다시 언론을 통해 의제화되고 있는 텔레그램 N번방 문제도 마찬가지다. 해당 플랫폼에서 성착취 피해를 경험한 아동청소년들이 부모님이나 학교에 알린다는 말 때문에 공포를 느끼고 착취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고 알려졌다. 특히 유포에 대한 공포는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서 피해자가 적극적 대응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디지털 미디어의 빠른 확산 속도, 한번 유포된 영상이 디지털 미디어 세계에서 영속될 수 있다는 점, 다른 방식으로 합성되거나 재유포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협박 도구로 사용된다. 최근 들어서는 SNS에서 여성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에게 개인 메시지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네가 ** 영상에 나오는 **냐” 라고 메시지를 보내 공포를 유발하는 경우마저도 있다. 


이처럼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심각해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해외 연구들은 가해자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익명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면서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범죄 영상물을 공유하고 자랑거리로 삼게 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의 근본적 원인이 바로 여성을 성적 도구로만 인식하는 것, 그리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잘못된 인식 구조에 있다고 말한다. 피해자의 영상물이 온라인에 게시된 이상 이 영상물을 재유포하거나 타인과 공유하는 것에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해외 사례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아동성착취 문제에 대한 뉴스 댓글이나 커뮤니티 반응을 보면, 인지하지 못한 채 찍힌 것도 아니고 본인이 직접 찍었다는데 왜 피해자냐면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경향이 나타나곤 한다. 아동청소년이 이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구조적 문제는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포에 대한 공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아동청소년을 피해자로 보지 않는 것은 법·제도적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동청소년 성착취와 탁틴내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와 같은 시민단체는 아동청소년 그루밍 범죄를 문제화하면서 랜덤 채팅앱을 통한 아동청소년의 유인과 영상의 비동의 유포, 판매를 처벌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관련 제도의 개선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양형 기준 문제 및 처벌의 실효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차적이다. 이런 일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강력한 확신이 유포의 공포를 활용하면서 피해자를 착취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관련 영상물을 보는 것과 방관하는 것이 문제를 키운다는 문화적 인식 구조의 변화 역시 함께 가야 한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면서 보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야말로 피해를 영속화하는 근본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