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BC 양대 공영방송사 노조가 ‘정상화’를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원만이 아니라 부·팀장급 보직자들도 보직 사퇴를 결의했다. 구성원 절대다수가 동참한 것이다. 사실 이 정도면 사장의 경영 능력은 상실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사장이 스스로 퇴진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지 않으면 방송 규제기관의 정당한 감독권한 행사가 불가피하다. 파업이 불필요하게 장기화하거나, 방송 ‘정상화’ 없이 파업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은 공영방송은 물론 언론 전체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권력에 장악된 공영방송의 왜곡편파 보도는 신뢰도와 영향력 면에서 1, 2위를 다투던 공영방송들을 나락으로 빠트렸다. 공영방송 구성원이 처음 제작을 거부하거나 파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지난 시기 공영방송 보도 때문에 불신이 커진 일부의 시민들이 이제는 공영방송에 관심도 없고 그동안 구성원들이 한 게 뭐 있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절대다수의 시민들이 공영방송 정상화에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다. 공영방송 언론인들이 보여주는 진정성과 영화 <공범자들>을 통해 지난 9년간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겪은 눈물겨운 고통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으로 보면 마지막 기회다. 그런데 공영방송의 마지막 기회가 다른 면에서는 우리 언론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영화 <공범자들>티저 포스터
전통적인 매체에서 모바일로 플랫폼의 중심이 이동하는 현실에서, ‘언론’인 전통적인 매체가 소멸하지 않고 언론으로 기능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반은 신뢰성이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고 대부분의 언론은 신뢰를 상실했다. ‘기레기’라는 표현은 공영방송만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공영방송의 언론인들이 더 뼈아프게 느끼고 공영방송의 공공성 회복을 외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SBS에서도 소유·경영의 분리 그리고 방송 취재, 제작, 편성의 독립성과 자율성 확보를 외치기 시작한 것은 매우 의미있다.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기폭제로 해서 대부분의 언론이 소위 시민들이 가진 ‘기레기’라는 인식으로부터 벗어나 언론으로서 존재 이유를 입증하는 것이 시급하다. 신문은 물론 지상파 등 방송도 위기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공멸하지 않으려면 수용자로부터 버림받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요구하는 파업과, 이러한 내부 구성원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시민 사회, 정치권의 행보를 보는 일부 보수 언론들의 논조가 자못 우려스럽다.
MBC에서 벌어진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관이 김장겸 사장에게 수차례 소환장을 보냈으나 응하지 않아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결국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나서야 김장겸 사장은 조사에 응했다. 그런데 보수 언론은 이를 정쟁이나 방송장악의 일환으로 몰아붙였다. 정당한 법 절차를 진행하는 것도 언론에는 예외여야 하는가? 더군다나 방송의 공공성을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를 조사하겠다는 것인데도 언론으로서 절대 특권을 누려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런 부당한 논리를 합리화하려고 자유한국당이나 보수 언론은 2008년 KBS 정연주 사장 강제 퇴출을 언급했다. 겉으로 보이는 유사성을 빌미로 지금 진행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정권의 방송장악으로 오인토록 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형식상으로도 유사하지 않을뿐더러, 정권을 잡자마자 대다수 구성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장을 강제퇴출시킨 행위와 대다수 구성원들이 지난 정권의 적폐를 없애고 공영방송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행위를 같다고 보는 것은 자유한국당이나 보수 언론들만의 시각일 뿐이다. 게다가 2008년을 자꾸 상기시키는 것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방송을 장악했다는 사실과, 그에 부응해서 정연주 사장에게 ‘임기를 내세울 자격이나 독립성을 외칠 염치가 없다’는 등 억지 논리를 폈던 보수 언론의 추한 과거를 들춰내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파업의 정당성을 왜곡하는 동안 보수 언론의 신뢰도는 점점 추락할 것이고 그 여파로 언론 전반의 신뢰도도 따라서 추락할 것이라는 점이다. 언론의 공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모든 언론은 경향성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최소한의 사실과 진실조차 부정하면서 언론으로서 존재할 수는 없다. 최근 언론학 교수·연구자 467명이 공영방송 정상화 찬성 성명을 발표했다. 이게 언론의 존재 이유와 관련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언론들은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공영방송 구성원과 시민들의 공영방송 정상화 요구는 사실 우리 언론 전반의 정상화 요구와 맞닿아 있다. 지금 일부 언론들이 보이는 편파보도 행태는 그 언론 자신들을 향한 화살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정상화는 여타 언론들의 태도 여하에 따라 신뢰 회복의 도미노로 작용할 수도 있다. 공멸이냐 신뢰 회복이냐 여부는 언론인 손에 달려 있다.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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