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다양한 몸에 대한 상상이 필요한 이유

최근 한 걸그룹 아이돌 멤버에게 살을 빼라는 충고를 하는 게시글이 커뮤니티에 반복적으로 올라오고, 관련 기사의 댓글에도 자꾸 언급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요즘 걸그룹 아이돌 외모”와 같은 제목으로 여러 걸그룹 멤버들의 사진을 한꺼번에 올리면서 비하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문제 삼을 때 이제 남녀를 불문하고 사회적인 압력이 행사된다고 말하지만, 이처럼 특별히 걸그룹의 외모를, 더 나아가 여성의 외모를 지적하는 경향 역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신체가 늘 평가의 대상이 되는 상황은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면서 자연스러운 일처럼 여겨지고 있다. 프로듀스101 시즌2에 출연한 한 남성 출연자가 자신을 심사하는 지위인 여성 프로듀서의 외모에 대해서 평가하듯 발언한 것이 논란이 되었고, 한 중년 남성 배우는 걸그룹에서 활동하다 영화배우가 되어 같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에게 백치미라는 단어를 썼다가 사과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가장 공적 공간인 정치의 장에서, 여성 장관의 외모가 품평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사례들은 논란이 되면서 사회적 관심을 받았을 뿐, 사실 한국 사회의 미디어나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의 신체와 외모에 대한 평가 및 지적은 매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현상이다. 여성 가수가 자신의 집을 민박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서는 남성 일반인들이 집주인을 평가하는 말을 하고 이것이 그대로 전파를 탄다. 주말 드라마에서는 중년과 노년층은 날씬하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면서 그 사실로 인해 비하되곤 한다. 이러한 사례들 대부분은 큰 문제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영국의 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에 대한 글에서 여성 이미지가 남성의 시선과 욕망에 맞추어진 ‘대상’으로 제시되는 것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신경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과정에서 여성이 온전한 주체가 되기 어렵다는 것을 함의하는 말이다. 지하철 내부의 광고에서 성형외과를 알리는 광고를 자주 볼 수 있고, 여성 커뮤니티에서도 다이어트 정보와 성형 정보를 교환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아름다움의 기준을 선택하는 자유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디어가 재현하는 마르고 젊은 여성상이 어느새 사회적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는 자유로운 선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억압에 가깝다.

 

게다가 이 억압의 범위가 날로 확장되고 있다. 건강과 상관없이, 얼굴의 크기 자체가 문제가 되기 시작하더니, 팔뚝 안쪽의 살이나 쇄골 같은 특정한 신체 부위로 확장되어 세세하게 여성의 신체가 평가 대상이 되고 있다. MBC 프로그램 <복면가왕>에서는 한때 패널들이 가면을 쓴 여성 출연자의 무릎 모양으로 나이를 판단하기도 했다.

 

특히 ‘걸그룹 주사’라는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걸그룹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직접적이고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Mnet에서 방송 중인 ‘아이돌학교’ 프로그램에서 오디션 참가자들이 만나자마자 몸무게가 얼마인지를 묻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이 직업군에서 신체 관리에 대한 강박관념이 얼마만큼 자리 잡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걸그룹을 겨냥하여 외모에 대한 평가를 하고 살을 빼야 된다고 충고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당연히 외모를 상품으로 파는 존재이므로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걸그룹이 외모를 상품화하여 팔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평가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가 마음대로 비하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인권 침해일 뿐이다. 아이돌 스타와 연예인은 자신의 재능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직업인이며, 그 직업인이 가진 고유한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란 없다. 걸그룹의 외모에 대해 평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성을 동등한 인간이자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평가할 때 사용하는 기준 자체의 윤리성과 적절성에 대한 질문도 하지 않고 있다. 몸에 대한 현재의 기준은 몸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적절하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

 

여성의 신체와 외모에 대한 평가 문제는 한국여성민우회 등 시민단체가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서 이에 대한 비판 담론을 형성하여 왔지만, 이 비판에 대한 답으로 다양한 몸 이미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무엇보다 날씬하거나 사회적 미의 기준에 맞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할 수 있는 통로가 아직 많지 않다. 몸에 대한 상상이 너무나 제한적이다 보니 자신의 몸 자체를 편안하게 여기지도 못하며, 주어지는 기준에 자신을 비교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남에 대해서도 그런 일을 반복하게 된다. 다양성은 이제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미디어가 맡아야 하는 중요한 공적 역할 중 하나는 다양한 몸이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몸에 대한 하나의 기준을 절대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김수아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