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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정동칼럼]언론에 묻다

지난 수요일, 조선일보 100년 특집기사로 ‘오보를 정정하고, 사과합니다’가 있었습니다. 이제 ‘나’에게도 사과할까 싶어 기사를 클릭하였다가 허탈하게 창을 닫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테지요. 저에게까지 사과할 여력이 없으리라 예상했습니다만, 그럼에도 실망스럽더군요. 법과 원칙에 따라 검사직을 수행했던 저를 얼치기 운동권 검사로 매도했던 2013년 첫 사설과 기사들이 아직 제 심장에 비수처럼 박혀 있으니까요.


저는 역사를 좋아했고,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슈퍼는 신문도 팔았기에, 초등학생 때부터 신문을 즐겨 읽었습니다. 신문별로 색깔이 다르고, 정치권 풍향에 따라 날씨 바뀌듯 변모하는 논조들이 재미있기까지 하더군요. 지식인들의 곡학아세가 정교하지 못했던지, 부조리가 너무 심하여 다 가릴 수 없을 지경이었던지, 어린 저에게까지 유치함을 더러 들키곤 했지만, 신문을 통해 세상과 현실을 배운 저에게는 교과서이자 오늘의 역사서였습니다.


2012년 12월 제가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을 강행한 후 관련 보도가 제법 있었지요. 보기 드문 항명사태라, 검찰 수뇌부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기사화하더군요. 고통스러웠지만, 그럼에도 한동안 신문을 꾸역꾸역 읽었습니다. 오래된 습관이니까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공개된 법령을 조금만 찾아보면 수뇌부의 주장이 얼마나 위법한지를 금방 확인할 수 있는데, 검증 없는 받아쓰기 기사를 이렇게 쓸 수 있나 싶어서. 기자들을 한심해하다가, 검찰 간부들도 법을 모르는데 기자들이 어찌 알겠나 싶어 세상을 원망하며 마음이 널뛰던 그때, 언론에 대한 막연한 신뢰를 결국 접었습니다.


보수언론은 속기사인 양 검찰 수뇌부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며 저를 매도하기 급급했고, 진보언론 역시 법령을 뒤져보는 수고를 게을리하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당시 기자들이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등을 확인하고 제대로 취재했다면 ‘검사는 법에 따라 무죄구형을 해야 하는 것이니 당시 백지구형을 지시하고 검사의 이의제기를 묵살했던 간부들을 중징계해야 한다’고 검찰을 비판했겠지요. 그러나 보수언론은 황당했고, 진보언론은 태만했습니다. 과거사 재심무죄 구형건에 한해 실수로 황당하거나 태만히 보도한 것이라 변명하겠습니까.


가시 돋친 기사들에 고통받는 부모님을 보며 정정보도를 청구할까도 궁리했지만, 휘몰아치는 중징계 광풍에 살아남는 것조차 버거웠고, 무엇보다 부끄러운 기사들 역시 오욕에 찬 역사이기에 이대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내했습니다. 징계취소소송에 승소하면 자연히 정정보도되리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도에 앞장섰던 매체들이 정작 승소 소식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더군요. 이 또한 오늘의 역사란 생각이 듭니다만, 피해자로서 서글프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언론의 악영향에 우려를 금치 못합니다.


공정이나 불편부당(不偏不黨), 정론직필(正論直筆)을 내세우지 않는 언론사가 없지요. 그 말대로 했다면, 언론 신뢰도가 이리 낮겠습니까. 언론에 대한 막연한 신뢰를 이미 거두었지만, 언론이 오늘의 역사서란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공자가 역사서인 <춘추>를 집필하자,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두려워하였다고 하는데, 오늘의 언론에 난신적자들이 과연 두려워할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곡필(曲筆)을 직필인 양 포장하고 목적과 의도를 가진 취재원들과 결탁하여 여론을 호도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기사들이 현실적으로 적지 않으니까요. 곡필은 하늘이 응징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굽은 붓들이 이제라도 곧게 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신문윤리강령과 윤리실천요강이 있더군요. 금번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감염병 등 질병 재난 등에 대한 취재와 보도 기준을 정한 재난보도준칙도 있습니다. 곡필 언론으로 고통스러울 때 혹시나 싶어 규정들을 찾아보다가 슬펐습니다. 검찰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것처럼 언론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공익의 대표자여야 할 검찰이나 사회의 공기(公器)인 언론이 부조리의 데칼코마니 같다는 건 비극입니다.


권력자들에 대한 질문은 언론의 권리이자 의무지요. 또한 언론은 시민인 독자들에게 답하고 오보 피해자들에게 사과할 의무 역시 있습니다. 이에, 언론에 묻습니다. 검증과 확인을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부풀리는 등 편파적이거나 불공정하게 취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권력 감시자인 양하다 권력화되지 않았습니까.


언론에 언론다움을 요구합니다.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