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 청군을 피해 갇힌 겨울 산성의 어전 회의에서 인조가 말한다. “아껴서 오래 먹이되 너무 아끼지는 말아라.” 임금이 신하와 백성을 업신여기고 말을 욕보이는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그런데 왜 나는 이런 환청을 들었을까.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되 오래된 것도 잘되게 하라.” 세상에 이런 혁신은 없다. 어디선가 성공했다는 혁신 모델을 가져다가 몇 가지 실험을 한다는 시늉을 하면서 위안을 얻고 독자 중심의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도 아니고 아날로그 정체성을 가진 특별한 취향의 오래된 브랜드도 아닌 위치에 어정쩡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이 한국 언론이다. 예를 들어 네이버는 카드뉴스 코너를 따로 두었고 거의 모든 언론은 카드뉴스 팀을 만들어 비슷한 것을 실행했지만 무엇을 얻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조금 늘어난 트래픽 양이 보고되었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언론이 어떤 새로운 날개를 달게 되었는지 말하는 사람은 없다. 유행을 혁신이라 부르지 않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혁신은 혁신이 아니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이미지
나이를 거론하며 “이미 많이 늦었다”는 글을 올렸더니 페이스북 친구인 강규원님이 강의 시간에 내가 소개했던 말이라고 댓글을 달았다. “11월이 인디언 말로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이라고. 오래전 친구에게 들은 자동차 얘기가 생각났다. 그래 아직 11월이니 혁신에 성공한 이야기를 전해보기로 하자.
1990년대 초반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의 경쟁은 고급 승용차 시장을 양분하면서 점점 가열되고 있었다. 대형차 대세 벤츠와 소형차 주력 BMW가 중형차급 시장에서 과격하게 경쟁을 하게 된 것이다. 규모는 벤츠가 앞섰지만 찬사는 BMW의 5시리즈에 쏟아지고 있었다. 고심하던 메르세데스 경영진은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 브랜드 이미지 조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대중들은 벤츠 이미지를 ‘늙은 곰’으로 인식하고 주 고객 연령이 5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반면 BMW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돌고래’였으며 주 고객의 연령은 40대 초반이었다. 다시 말하면 10년 내지 15년 이후에는 고객이 늙어서 차량 구매 능력이 없어졌을 때 벤츠는 새로운 고객층을 개발하지 못해 BMW에 역전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을 때였다. 한국에서 “시계는 롤렉스고 차는 벤츠다”라고 불릴 때다.
당시 자동차 전문 기자들에게 사하라 사막을 건너기 위한 차량에 설치하고 싶은 엔진과 변속기는 무엇인가라는 설문에 벤츠 6기통 디젤 엔진과 5단 수동 변속기가 선택될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대중과 고객의 초점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르세데스의 경영진은 바로 해답을 구했고 즉시 변화했다. “디자인에 집중하라.” 빠르고 분명했다. 그전까지 운전자에게 야간에 최대한의 광량을 제공하여 안전하게 운전하는 목적 이외의 기능이 없이 커다란 고성능의 헤드램프를 장착하고 있던 E클래스의 후속 모델이 1990년대 말 깜짝 변신한다. 당시로서는 너무도 파격적인 트윈헤드 램프를 장착하고 시장에 출현하게 된 것이다. 벤츠는 고객과 대중의 눈과 경험을 통해 젊은 곰이 되었다. 늙은 신사로 대변되던 고객층은 20대와 젊은 여성을 포함한 다양한 계층으로 확장되었다. 벤츠는 스스로 대체되었다.
물론 벤츠도 기술의 비중을 줄이며 새로운 위험을 만드는 등 대가를 지불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전기자동차 테슬라가 치고 올라오고 무선청소기 다이슨이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세상이 왔다. 그때 변하지 않았다면 늙은 곰은 영원한 동면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무서운 것은 대중과 고객의 인식이다. 이런 얘기가 돈다. “메르세데스 차를 구매하는 사람은 삼각별을 사기 위해서 돈을 지불하고 BMW 차를 구매하는 사람은 BMW를 운전해 보고 싶어서 구매한다”는 것. 겨울처럼 차가운 시장은 섬뜩하고 혁신의 위협은 매일 새롭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4년 전 136년 된 워싱턴포스트를 샀다. 2년 후 그들은 “우리는 기술회사”라고 밝혔고 며칠 전 재확인했다. “우리는 소프트웨어 회사다.” 그들은 지난주 안나 파이필드 도쿄 지국장이 쓴 탈북자 증언 기사를 내보냈다. 언어 중 한국어를 선택하면 아직 투박하지만 ‘김정은 정권 아래의 삶’을 읽을 수 있다. 한국 언론을 이제껏 먹여살린 5000만이라는 아주 작은 규모의 시장과 한국어를 사용하는 독립 공간이 구체적으로 다른 세계와 장애 없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도 그렇게 지난주 우리에게 왔다.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고 경계가 사라지는 날이 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 언론의 독점적 위치는 사라지고 있다.
더불어 더 큰 변화가 있다. FANG이 나의 신문이고 쇼핑몰이고 서점이고 카페이고 학교다.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서울 소재 한 신문방송학과 교수에게 의례적으로 물었다. “언론고시 볼 때죠?” “요즘 애들은 기자하려는 애들이 없어요.” 아, 그렇구나.
추운 날 젊은 돌고래가 될 수 없는 나를 한탄하고 늙은 곰을 걱정한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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