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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방송, 정략의 대상이 아니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지만 방송이나 통신 영역에서는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심의위)가 있다. 방송법 32조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44조 7항 등에 규정한 사항들을 심의하여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제재를 하는 기구다. 방송이나 통신 심의 내용의 규제를 민간의 영역에서 해야 할지 아니면 공공 기구가 해야 할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법은 심의위의 독립성 보장을 선언하며 공적 규제 권한을 부여했다.

 

하지만 그 심의위는 5개월 가까이 휴업 상태다. 지난 6월12일 이전 심의위원들의 임기가 끝났지만 아직까지 후임 심의위원 위촉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송법은 32조에 방송 내용의 공정성, 공공성, 정보통신의 건전한 문화 창달, 정보통신의 올바른 이용환경 조성이라는 심의위 임무를 규정하고, 33조에는 인권, 건전한 가정생활, 아동·청소년 보호, 공중도덕과 사회 윤리, 양성평등 등 보호해야 할 공적 가치를 16개에 이르는 세부사항으로 규정하였다.

 

심의위의 휴업은 방송이나 정보통신사업자가 시민사회의 공적 가치를 침해해도 이를 제재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시민의 권리가 훼손된 것이다.

 

심의위원은 왜 위촉되지 못했을까?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의장이 국회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여 추천한 3인, 국회의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추천한 3인을 포함하여 9인의 심의위원을 위촉한다. 그런데 정치권이 추천하고 위촉하는 이상 적절한 배분이 필요하고 이제까지는 정부·여당 6인, 그리고 야당이 3인을 추천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런데 야당 몫을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했다. 교섭단체였던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에 위원 1인씩 배정하면 자유한국당도 1인만 추천할 수밖에 없으니 2인을 추천할 수 있도록 야당 몫을 늘려달라는 이야기다. 위원의 임명 시기에 닥쳐서 관행을 깨는 주장으로 위원회 구성을 늦춰가면서까지 자기 몫을 더 챙기려는 태도가 정당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혹시 6명의 위원을 확보해서 일방통행으로 불공정 심의 논란을 야기했던 이전의 자신들의 행태가 반복될까 두려운 것일까? 최근 바른정당이 교섭단체 자격을 상실하면서 위원 몫 배분에서는 합의에 이르렀지만 이제는 상임위원 배분 문제로 다시 늦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그런데 위원회 구성이 늦어지면서 일상적인 시민 권리 보호만이 아니라 중요한 행정 행위에도 차질이 생겼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나 종편 같은 방송들을 재허가, 재승인한다. 이들을 재허가, 재승인하기 위해서는 심사가 필요하고 심사에 중요하게 반영하는 것이 심의위의 심의 결과들이다.

 

그런데 심의에 5개월 가까이 공백이 생겼다. 이 5개월의 공백은 이후 재허가, 재승인 심사나 조건부 재승인 등의 이행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무책임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구성 방식이 적절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말 문제가 있다면 미리 제도를 개선하거나, 위원 위촉 시기가 아닌 평상시에 정치력을 발휘하여 관행을 개선하는 합의를 했어야 한다. 자기 몫 확보가 시민의 권리 보호보다 우선하는 우리 정당들의 행태를 다시 목도하며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사실 학계나 시민·언론단체들은 당연히 지금의 제도가 완전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아니 완전한 제도를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성숙한 사회라면 어떤 수준의 제도라도 그 제도 설립의 취지에 맞게 선의로 잘 운용할 것이고, 그렇다면 제도 고민이 불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9년간 정의롭지 못한 권력이 방송, 방송 관련 제도를 어떻게 왜곡했는지 확인했다. 따라서 조금이나마 이런 문제를 보완할 방송 관련 제도 고민이 필요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도도 이런 고민 대상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런 방송제도 고민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야합으로 결론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 심도 있는 고민과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영역이다. 최근 자유한국당, KBS의 고대영 사장과 일부 이사 등이 9년 동안 왜곡됐던 공영방송 정상화 노력을 물타기하고자 방송법 개정을 앞세웠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이 그리 반대했던 기존의 방송법안을 중심으로 논의하자고 한다. 공영방송은 정치적 독립만 보장하면 요즘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자본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언론이다. 그래서 촛불방송법 또는 이용마법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사장이나 이사 선임 제도가 제안되고 있기도 하다. 외부 압력은 물론 사장의 독단성을 제어할 수 있는 편성 자율성 보장도 매우 중요하다.

 

이제까지 나온 학계나 시민단체의 다양한 제안을 포함하여 밀실의 논의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함께하는 대토론 과정을 통해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방송법과 방송제도를 정립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될 수도 있는 방송법 논의가 정략적인 정치권의 야합 대상이 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