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스토리는 계절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확고한 희망의 거처다. 우리는 1월의 강추위 속에서 종종거리며 걷지만 곧 봄이 온다는 것을 안다. 멀리 가장 차가운 강물 위에 내려앉은 햇살이 일렁일 때, 우리는 외투에 내려앉은 햇살을 툭툭 털어내며 가벼운 위안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고단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점점 더 그렇다.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견뎌내기도 어려운데 미래의 파고는 예측할 수 없는 크기로 우리를 덮쳐온다. 영화 <매드 맥스>에 나오는 퓨리오사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여기선 모두가 아프고 불안하다.’
니먼랩은 2017년 저널리즘의 가장 큰 트렌드를 ‘두려움(Fear)’이라고 발표했다. 여기서 두려움은 피할 수 없는 현실 혹은 변화가 만들어낸 감정이다. 뉴스 플랫폼은 소셜 미디어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고, 플랫폼이 개별 콘텐츠 생산자들의 노력을 빠르게 약탈한다.
독점과 집중 현상은 가속화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거대 플랫폼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니먼랩에 따르면 디지털 수익 증가분의 99%가 구글(54%)과 페이스북(45%)에 돌아갈 것이라고 한다.
옥스퍼드대학 연구소가 올 초에 발표한 2016년 디지털 뉴스 리포트 한국편을 봐도 변화의 폭은 매우 크다. 한국에서 모바일을 통해 뉴스를 접하는 비율은 66%로 2011년의 11%에 비해 6배나 급증했다. 반면 신문을 읽는 비율은 25%로 2011년의 45%에 비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한국인이 뉴스를 보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소스도 온라인 매체가 86%(소셜 미디어 포함)로 71%를 기록한 TV를 처음 앞질렀다. 이어 소셜 미디어 32%, 인쇄매체 28%, 라디오 12% 순이었다.
기존 미디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소셜 미디어의 확산은 긍정적이기만 할까. 물론 긍정적인 측면을 간과할 수는 없다. 특히 이번 한국의 시민혁명 과정에서 1000만 촛불의 지휘부 역할을 한 소셜 미디어의 위력은 어떤 이유로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면에 사건을 판단할 객관적인 지식과 이해를 경유하지 않은 ‘정보 다운로드’ 현상이 초래할 커다란 위험은 여전하다. 극단적인 팬덤 현상이 초래한 ‘집단 극화’나 ‘확증 편향’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설계할 공론 기능을 마비시킬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변화를 외치지만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데는 게으르다. 무엇을 배제할지에 대한 논의는 차고 넘치지만 무엇을 만들고 세워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구석에 밀려 있다. 지금은 특검의 시간이고 탄핵의 시간이다. 특검과 탄핵의 시간에 JTBC를 비롯한 기존 미디어의 활약은 눈부시다. 스타 기자들이 즐비하게 나온다. 이것이 소셜 미디어와 연결되면서 그 영향력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위대한 시민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의 방향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특검과 탄핵의 시간이 종료되면 60일이라는 정말 짧은 시간 안에 다음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 과거를 폭로하는 데 준마였던 미디어가 미래를 말하는 시간에서는 거북이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이번 대선은 정권교체와 구체제 청산이라는 막중한 의미를 갖는다. 미디어는 특검과 탄핵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의 일등 공신이 뉴스 필터의 버블과 페이크 뉴스라는 자조섞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2년여 동안이나 치러진 미국의 대선이 그럴진대 60일 안에 치러야 하는 한국 대선은 온통 네거티브 물결 속에서 치러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설리’ 기장처럼 60m의 짧은 활주로에 비상착륙을 해야 하는 ‘허드슨강의 기적’을 우리는 만들어낼 수 있을까?
미국의 ‘폴리티코’ 공동설립자가 만든 뉴미디어 벤처 ‘액시오스(Axios)’는 1월18일부터 뉴스레터 서비스를 시작한다. 짐 반데하이 회장은 액시오스를 일종의 ‘현재 진행형인 연구개발(R&D) 연구소’라고 소개했다. 비즈니스, 헬스케어, 테크놀로지 등 각 분야에 정치, 미디어 관련 뉴스를 스며들게 하는 콘셉트다. 마치 ‘실리콘밸리와 워싱턴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것. 뉴스가 진정한 의미의 전문성을 제공해 사람들이 수많은 뉴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스어 성경에서 액시오스는 ‘만나다(meet)’는 뜻이다. 나의 속성과 신의 속성이 만난다는 것이다. 액시오스는 트럼프의 정책을 동영상 뉴스 채널인 ‘나우 디스(Now This)’와 협력해 리포팅하는 ‘위 더 피플(We the people)’이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탄핵과 특검 이후의 시간에 미디어는 짧은 대선 활주로에 미래를 아로새길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중앙일보가 선보인 ‘시민 마이크’ 플랫폼은 서투르지만 하나의 방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보다 전면적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이번 대선에서 우리가 ‘또 다른 박근혜’를 뽑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새봄을 준비하는 미디어의 책임과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유승찬 |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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