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가 왜 안 오냐.” 50여년 동안 그를 중심으로 돌던 세계는 거기서 멈추었다. 특검에 출두한 78세의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기자들의 질문에는 아무 답도 하지 않고 이 말을 남겼다. 몇 개의 정권을 넘으며 정치와 권력을 향유한 그의 시간은 정지되었다. 아직 자신의 시대를 포기하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은 억울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시대에 배우고 익히고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최고 권력에 올랐는데 지금은 왜 안되는 것이냐고 따지고 있는 것 같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그들은 과거를 기준 삼아 현재에 도착했다. 그러니 알 수 없는 것뿐이다. 그나마 오늘에 충실한 시민들은 큰 비용과 시간을 지불하고 박정희이즘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역주행의 시대를 마감할 수 있게 되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했을 때 집권당 한 중진은 이렇게 말했다. “시대에 졌다.”
자고 나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tvN은 <트렌더스>라는 트렌드 쇼를 시작했다. 첫 회에서는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며 살자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라이프, 1에 경제를 더한 말로 홀로 모든 것을 즐기는 ‘1코노미’, 최소한의 물건만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바이바이 센세이션’이라는 세 개의 테마를 소개했다. 압축성장시대의 획일화된 삶의 모델을 대신하는 다양한 삶의 변화된 형태를 정보와 재미를 붙여 풀어내는 것이 인상 깊었다. 프로그램 하나에 매이는 지상파를 나와 케이블TV에서 다종다기한 프로그램을 동시에 협업 시스템을 통해 선보이고 있는 나영석 PD는 심지어 여기서는 판정단 패널로 등장한다. 스스로가 새로운 것의 실험판이 된 그는 중대한 말을 던졌다. 모든 시민이 방송국이 되고 있고, 그 개인의 집중력을 따라갈 수가 없고, 곧 방송국이 다 망할 것 같다는 얘기였다. 비슷해 보이지만 매번 새로운 것을 하나씩 붙여 진화된 그림을 숨가쁘게 그려가고 있는, 잘나가는 그가 한 말이어서 더 충격이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그러나 언론은 과거를 지나 현재에 도착한 방식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미래를 향해 현재를 탈출하는 선택을 하지 못할 것이다. 대기업과 정부는 훨씬 불안한 모습이다. 변화보다는 광고와 협찬 기사를 통해 언론과 좋은 관계를 맺는 방식을 유지할 것이다. 다수의 신문은 결국 지면과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수정하지 못할 것이다. 지면을 포기하지 않으면 디지털 혁신은 그냥 안되는 것이다. 지상파는 더하다. 세월호와 탄핵을 타고 질주하는 종편의 24시간 시스템을 그저 두고 보기만 하다가 이제서야 낮 방송을 연장하고 강화한다 하니 늦어도 너무 늦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여사가 19일(현지시간)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열린 취임 축하콘서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참석해 현장에 모인 수만명의 지지자들을 가리키며 웃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이 순간부터 미국만 우선될 것입니다”라는 취임사를 한 트럼프 대통령의 거의 유일한 미디어는 트위터다. 오바마 전임 대통령이 넘겨주는 대통령 공식 트위터 계정(@POTUS)은 팔로어가 1370만명이고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트위터(@realDonaldTrump)는 2100만명이 넘는다. 경향신문 이인숙 기자에 따르면 당선이 확정된 지난해 11월9일부터 지난 17일까지 330개 이상의 트윗을 올리는 동안 기자회견은 단 한 번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 계정을 앞으로도 계속 사용한다. 그는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어 하는 자신의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짧게 자주 빠르게 한다. 140자를 통해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것을 쏟아내는 그의 트위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도구이고 무기다.
그가 전통 언론에 원래부터 적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언론을 이용하라”는 그에게는 매우 오래되고 중요한 거래의 기술이다. 지금은 적대적인 뉴욕타임스의 힘을 오히려 신봉했다. 1980년대 맨해튼에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을 짓겠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시계획위원회의 표결을 앞두고 그는 뉴욕타임스 건축평론가였던 에이다 루이스 헉스터블을 선택한다. 비판적 태도를 가진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의 강력한 인물에 접근해 계획 모델과 세부 사항을 보여주고 반전을 도모한다. 그녀는 트럼프 타워를 두고 ‘최고 디자인의 뉴욕 빌딩’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쓴다. “언론은 항상 좋은 기삿거리에 굶주려 있고, 소재가 좋을수록 대서특필하게 된다는 속성을 나는 경험을 통해 배웠다. 당신이 조금 색다르거나 용기가 뛰어나거나 무언가 대담하고 논쟁거리가 되는 일을 하면 신문은 당신의 기사를 쓰게 된다. … 신문이 나를 주목하게 되어 내 기사를 쓰지 못해 안달을 하게 됐다.”(<거래의 기술, 도널드 트럼프>) 취임하는 날 37%의 낮은 지지율을 가진 그는 100%의 권력을 도모하지 않는 것 같다. 거래를 위한 태도는 두고 과거의 뉴욕타임스는 버렸다. 권력이 소셜미디어 또는 개인으로 넘어간 것을 알았다. 그는 타고 온 뗏목을 태우고 그의 정치에 최적화된 트위터로 갈아탔다. 시대를 따라 움직였다.
얼마 전 기자들과의 워크숍에서 나는 이렇게 얘기했다. “회사형 기자 하지 마라, 앞으로 모두 ‘혼자 저널리스트’가 된다, 오늘부터 1일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구악 병원 원장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그냥 닥치고 조용히 내려와.” 시대를 등지는 사람은 있어도 이기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다.
유민영 | 에이케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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