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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사설]정권 선전도구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1987년 민주항쟁 당시 전국의 거리를 메운 시민들은 군사독재 타도와 함께 언론개혁을 외쳤다. 전두환 정권의 강압정치에 분노했지만 정권의 나팔수인 언론의 죄상에 대해서도 매섭게 질타했다. 언론계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이 이어졌다.

 

KBS가 한때 영향력·신뢰도 1위 매체가 된 것은 이런 노력의 결과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촛불시민들은 박근혜 정권 퇴진과 함께 또다시 언론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들춰낸 언론이 게이트의 공범으로 비판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KBS, MBC, YTN, 연합뉴스, EBS 등 공영·공공 매체들이 언론 본연의 역할을 도외시한 채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비리를 앞장서 덮어주면서 국정농단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이래 공영방송은 퇴보의 길을 걸었다. 알 권리와 여론 형성을 위한 공론장으로서 역할을 해달라는 시민의 요구와 반대로 정권 홍보와 여론 조작에 봉사했다. 그 중심에 ‘국민의 방송’을 자임하는 공영방송 KBS가 있다. 세월호 사건 직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를 뺄 것을 요구했다. 청와대가 이런 명백한 보도 간섭을 기본 업무라고 공언할 정도로 보도지침 시달은 일상적이었다. KBS는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이 터진 후에도 한 달 동안 관련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

 

MBC 역시 김재철 전 사장과 현 경영진을 거치며 권력의 충견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과 함께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 변호사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되면서부터는 방송사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망가졌다. 저널리즘 원칙에 충실하고자 하는 기자들을 내쫓은 뒤 시용기자들을 동원해 극우 이데올로기 확산에 나섰다. 언론이 시시비비가 아닌 편향된 이념을 떠받든 것이다. 촛불집회 중 회사 로고를 마이크에 달지 못한 채 숨어서 보도했다는 기자들의 고백은 MBC에 대한 시민의 분노를 웅변하고 있다.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YTN 또한 정권에 고삐가 잡혀 있다. 이명박 정부가 내려보낸 낙하산 사장을 막아섰던 기자들은 7년째 해직돼 있고, 보도 책임자들은 잇따라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기용됐다. 공정한 언론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우종범 EBS 사장의 기용에 최씨가 개입한 정황과 함께 중소기업은행장 출신 조준희 YTN 사장의 선임에도 최씨가 개입했다는 말이 있다. 연합뉴스와 서울신문 등도 정권 편향 보도로 비판받고 있다. 극우 논리와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국 사회를 떠받치는 기둥들이다.

 

언론개혁은 공영방송 정상화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방송을 홍보 도구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방송편성의 자유 보장이 우선돼야 한다. 현행 방송법은 정부가 공영방송의 최고 의결기관인 이사회의 이사 절대다수를 추천하는 구조를 통해 방송 장악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 이사회를 통해 이인호 KBS 이사장과 사장 인선 등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통해 드러났다. 이 같은 낙하산 임명을 막기 위해서는 이사장을 포함, 11인(여당 7인, 야당 4인 추천)인 이사진 구성 방법부터 바꿔야 한다. 여당이 7인, 야당이 6인을 추천하고, 사장을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는 특별다수제를 통해 선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여당 6인, 야당 3인 추천) 구성도 이사 수를 늘리고 시민단체 등으로 하여금 이사를 추천하는 방법으로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

 

사장 추천위원회 도입을 통해 낙하산 사장이 내려오는 것을 차단하는 이중장치도 필요하다.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규정도 강화해야 한다. 방송사업자가 제작과 편성에 개입하거나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노사 동수의 비율로 편성위원회를 구성·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공정보도를 구현하고, 사후에 감시·평가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편성위원회가 제청하는 인사를 방송편성책임자로 임명하고, 편성위원회가 편성규약을 제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왜곡의 진상을 밝히는 한편 권력에 봉사한 언론인들의 청산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명박 정권은 공영방송 등 언론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20여명의 언론인을 해고하고 440여명을 징계했다. 이들의 복직과 현장 복귀도 필수다. 지난 30년 동안 방송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은 방송을 정권에 종속시킨 부역 언론인들 탓이 크다. 방송이 출세를 위한 방편이 되고, 권력 감시와 비판이 언론의 본령이라는 윤리 의식이 자리 잡지 않는 한 방송의 개혁은 요원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권력을 감시하고 공정한 보도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이 민주주의의 불가결한 요소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정치권에서 제왕적 대통령을 막기 위해 개헌하자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지만 언론이 본연의 기능만 수행해도 무소불위 권력이나 특정 세력의 국정농단은 불가능하다. 새누리당을 제외한 정당들이 모두 공영방송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당장 2월 국회에서 관련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언론개혁, 더 이상 늦춰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