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에서 ‘매체화를 넘어’라는 제목으로 작은 학술 세미나가 열렸다. 언론학자 박홍원은 ‘정치의 매체화’라는 기조 발제문에서 지구상에 사람들 간에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모든 곳에서 매체화가 진행 중이라고 진단하고, 특히 정치에서 심하다고 지적했다.
정치의 매체화란 정치인들이 정치활동을 할 때 뉴스 매체의 논리를 따라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정치행사를 개최할 때 뉴스 시간에 맞추어 진행한다든지, 정책 사안을 발표하면서 그 발표가 다른 뉴스에 묻히지 않도록 신경 쓰는 일을 말한다. 정치인들이 매체 논리를 따르면서 정치가 매체 사업처럼 작동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정책의 근거와 타당성을 검토하기보다는 정책을 포장하는 용어가 얼마나 그럴듯하게 들리는지부터 고민하는 식이다.
2001년 9월11일 미국에서 세계무역센터가 테러로 붕괴했던 날 영국에서 발생한 일이다. 노동당 정부의 홍보담당 보좌관이 상부에 이런 e메일을 보냈다고 한다. ‘오늘이야말로 우리가 묻어 버리고 싶은 뉴스거리를 내보내기 아주 좋은 날입니다. 지자체 비용문제를 꺼낼까요?’ 나중에 확인된 일이지만, 영국 정치인들은 실제로 이런 식으로 ‘날을 잡아서’ 뉴스거리를 내보내는 일을 계획적으로 수행했다고 한다.
밀라노 출신으로 언론사 사주와 프로축구 구단주 경력으로 이탈리아 정계에 들어가 4차례 총리를 지낸 인물이 있다. 베를루스코니다. 그는 일반적인 정치인이라면 하지 않을 기행을 저지르고 막말을 해댔지만 (오바마를 선탠한 남자라 말했던 그 총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성공을 거듭했다. 이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베를루스코니즘’이란 신조어가 나오기도 했는데, 이 역시 정치의 매체화를 예시하는 경우라 하겠다.
영국 노동당 홍보 보좌관이나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의 사례만 보면 정치의 매체화란 곧 정치과정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만 같다.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얼마든지 정책을 버리고, 대중적 인기를 얻기 위해 기꺼이 공중을 기만하는 행위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지난 90년대 이후 정치학자와 언론학자들이 한목소리로 ‘이미지 정치’ ‘텔레비전 정치’ ‘부정성의 정치’에 대한 우려를 표했는데, 이는 정치의 매체화가 초래한 기만과 조작의 정치에 대한 고발이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정치인만으로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론이 또 다른 당사자다. 한때 정치가 언론을 활용했지만, 어느덧 언론이 정치인을 활용하기 시작하고, 이제는 함께 정치적 이벤트를 기획한다. 이벤트 기획자가 정책 전문가를 대체하고, 언론인이 아예 정치인으로 나서는 것이다.
주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정치와 언론이 결탁하는 현실이란 우려할 만하다. 정치적 기획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감시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웃나라를 국빈 방문하는 정치인이 언론과 짬짜미를 해서 얼마든지 외교적 성과를 왜곡할 수도 있다. 정치적 기획에 언론의 결탁을 더한다는 우울한 이야기가 되고 만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다. 바로 매체 이용자가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작과 기만의 제물처럼만 보였던 이용자가 정치의 매체화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아 가고 있다. 그리고 역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시민들은 이제 정치 일정은 물론 행사의 내용마저 뉴스 매체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치 이벤트를 보면서 관객의 역할을 하면서 기꺼이 즐기지만 동시에 비평가처럼 행사를 평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행사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최종 심급의 결정자가 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이벤트란 없었던 이벤트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시민들은 또한 정치적 사건을 다룬 뉴스들을 비교한다. 오늘의 뉴스를 보면서 숨겨진 내용이 없는지 궁금해 하고, 뜬금없이 터지는 사건을 보면서 이 사건 때문에 묻히는 다른 사건이 없는지 찾아보기도 한다. 이들은 뉴스의 해석자이기도 하다. ‘복잡한 사실을 잘 설명해 주시오’가 과거 뉴스 이용자의 요구였다면, 이제 요구의 내용이 바뀌었다. ‘사실만 정확하게 전하시오. 해석은 우리가 합니다.’
정치 기획자들도 이용자의 변화를 눈치챘다. 이들은 어느덧 말하는 대로 듣는 수용자가 아니다. 주는 대로 받아먹는 소비자도 아니다. 말하지 않은 사실을 찾아서 확인하고, 주지 않은 내용을 찾아서 활용한다.
이들은 이제 이벤트 기획자를 선택하는 관객이고, 정치 스타를 만들어 내는 팬이 된 것이다. 정치의 매체화란 정치 과정과 논리가 변한다는 뜻만 있는 게 아니었던 셈이다. 그것은 듣고 소비하는 수용자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시민으로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준웅 |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미디어 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동칼럼]죽음을 대하는 언론의 자세 (0) | 2017.12.26 |
---|---|
[공감]라디오 리포터 이하나씨의 2017년 (0) | 2017.12.20 |
[사설]탈북병사 수술 장면 CNN 공개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 (0) | 2017.12.06 |
[미디어 세상]방송, 정략의 대상이 아니다 (0) | 2017.12.04 |
[미디어 세상]늙은 언론, F·A·N·G과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 (0) | 2017.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