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변화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모임이 매주 있습니다. 서로가 경험하고 공부한 내용을 공유하며 필요한 자료를 모으던 중 오래된 노래의 제목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연상을 위해 예전의 상황을 유추해 냅니다. 예전에 함께 들었던 느낌이 비슷한 노래를 유튜브로 찾아 들어가니 연관된 리스트에 어김없이 보입니다. 기쁜 마음에 연관 자료 몇번째에 보인다고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의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유튜브 검색의 결과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른 이들과 동일한 것을 보기 어려운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껏 방송은 동일한 것을 사람들에게 보내주는 것이었습니다. 놓을 방(放), 보낼 송(送)이라는 한자가 말하듯 넓게(broad) 던지는(cast) 것이지요.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언제 던질 것인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편성’이라 불리는 이 행위는 모든 시청자들이 무엇을 볼 것인가 결정하는 힘을 갖습니다. 함께 고민해야 할 어젠다를 정의하며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에 그 힘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우리는 그간 부단히도 노력했습니다.
콘텐츠가 다변화되고 넷플릭스와 같은 온 디맨드 서비스가 확장되며 무엇을 볼 것인가는 시청자가 판단합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같은 내용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내가 새로운 것을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내 생각의 범주가 한곳에 머무를 수 있다는 위험성입니다. 설사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쳐도 플랫폼이 그러한 의지를 지원해주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을 터입니다. 출장지 외국의 호텔방에 누워 100개가 넘는 채널을 서핑하고 있는 것은 무언가 예상치 못한 재미있는 것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세렌디피티라 불리는 이 우연한 행운의 발견은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보다 나를 이미 알고 있기에 당연히 내가 좋아할 것을 권해주는 플랫폼을 전 세계 어디에 가거나 보는 일이 더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상식(common sense)이라는 말에는 공통(common)이 전제가 됩니다. 그 상식의 기준이자 입력이 되는 정보가 각자에게 다르게 입력되어지는 사회는 다양한 기준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아마도 서로를 한숨에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물론 시대를 아우르는 정신이 깃든 작품들은 누구에게나 보여질 터이지만 작은 공감이 거대한 동류의식을 매일같이 만들어 내는 일상을 생각한다면 매일같이 다른 것을 보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생각을 넘어서길 기대하는 것은 조금 어려운 일일지 모릅니다.
이런 변화로 사회의 공기로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미디어의 ‘교양’ 기능이 자칫 약해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올바른’ 이야기를 ‘전체’에게 반드시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마치 전 국민의 핸드폰에 동시에 울리는 미세먼지 경보와 같이 수용자의 의사와 무관하게라도 꼭 필요한 일은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미국의 1970년대 삶을 그린 <70년대 쇼>와 2000년대 이후가 배경인 <모던 패밀리>의 간극은 매우 큽니다. 유색인종의 외국인에 대한 희화가 일상적이고 가족은 반드시 이성 간의 결합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전 삶의 기준은 30년이 지나며 모두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politically incorrect) 것이 되었음을 두 작품을 함께 봄으로써 알게 됩니다. 삶의 교본처럼 제공된 다양한 콘텐츠들은 ‘교양’이라는 것이 ‘예능’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개인화 콘텐츠를 통해 형성된 후 커뮤니티와 동호회를 통해서 결속된 동류의 생각은 편가르기로 흐를 수도, 상대에 대한 아량이 적은 사회로 자칫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생경한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한다면 그 다양한 다름의 이해는 우리의 이웃을 감싸안을 수 있는 포용으로 키워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서로 다른 것을 보는 시대, 그러하기에 내가 볼 콘텐츠의 ‘편성’을 각자 현명하게 해 나가야 하는 시대입니다.
<송길영 마인드 마이너 (Mind M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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