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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정동칼럼]‘기레기’보다 나쁜 기자들

꽤 오래전 이야기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신문 사설을 모아 분석한 적이 있었다. 큰 사건의 생일이 돌아오면 많은 신문들은 그 사건의 의의를 되새기는 사설을 싣곤 한다. 시간이 지나고 정치적 사회적 환경이 바뀜에 따라 같은 사건을 달리 보는 경우도 생길 것이라는 가정으로 분석을 시작했다. 


그런데 연구 과정에서 놀랄 만한 일을 경험했다. 어떤 사건에 대한 1주년 기념 사설과 2주년 기념 사설이 80% 이상 똑같은 경우를 발견한 것이다. 자기네 신문 사설을 표절한 것이다. 이름 없는 온라인 매체도 아니었다. 역사도 오래되고 규모도 큰 메이저 신문사 중 하나였다. 사람들이 사설을 찾아 비교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하긴 이 사건은 일개 대학원생이던 나만 알고 그냥 넘어갔으니 그 신문사 사람들의 판단(기대)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던 셈이다.


얼마 전 중앙일보가 외신을 베낀 사내 칼럼을 실었다가 들켜서 사과문을 발표한 일이 있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표절이었다. 문제는 들키지 않은 기자의 ‘부정행위’가 수도 없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취재 중 알게 된 중요하고 흥미로운 정보는 출처를 밝히지 않고, 길 가던 장삼이사에게 물어봐도 들을 수 있는 뻔한 정보는 굳이 모 대학 모 교수 이름을 걸어 기사화한다. 통신사 기사의 토씨 몇 개만 바꿔 자사 기자 이름을 붙이는 일은 비일비재하고, 타 매체의 단독보도를 인용부호 하나 없이 기사화하는 경우는 일일이 지적하기도 어려울 만큼 잦다. 뉴스타파의 특종을 베껴 쓰면서 “한 인터넷 매체에 의하면”이라며 슬그머니 넘어간 신문사도 하나둘이 아니다. 타 언론사의 이름을 쓰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일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능력 있는 다수의 기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은 적은 없다. 살아오는 동안, 늘 공부하고 늘 고민하는, 정말 존경스러운 ‘전문인’ 저널리스트를 무수히 많이 만났다. 크게 표나지 않을 뿐이다. 잘 쓴 기사는 오보나 표절 기사만큼 눈에 띄지도 인구에 회자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레기’라는 말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특정 직업을 쓰레기에 비유하는 작법도 저질스럽거니와, 다수의 훌륭한 저널리스트까지 한데 묶어 단어 하나로 모욕하는 세태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쓰레기 같은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다. 기자 중 쓰레기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기레기’라는 단어로 퉁치지는 말자. 그냥 자기 생각과 다른 내용이라고 멀쩡한 기사와 기자를 매도하지는 말자는 거다. 그렇게 조롱하면 잠시 기분이 우쭐해지는 것 말고 무슨 효용이 있겠는가? 대신 독자로서 우리가 할 일이 있다. 집단으로서의 기자를 욕하는 대신 기자 개인을 분명하게 적시해서 칭찬하거나 비판하는 일이다. 관습에 젖어 실수하는 다수로부터 ‘악한’ 기자를 구분해 내는 일이다. 표절은 관습이 아니다. 이런 기레기들, 하면서 냉소하기보다는 해외 언론 베껴서 자신의 실명 칼럼을 쓴 기자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소설 같은 기사 때문에 심한 상처를 입은 한 학생을 도와준 적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언론중재위원회로부터 오보를 정정하고 해당 학생에게 사과하는 내용의 기자칼럼을 내라는 조정안을 받았는데, 정작 그 신문사는 문화부장의 칼럼을 통해 그 학생을 더 심하게 모욕했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신문사 사람들과는 말도 섞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내 소속 직장의 명예를 떨어트릴 수도 있는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연락해온 기자가 있었다. 어디에서인가 입수했다는 정보가 워낙 엉터리이길래 성실하게 정정 자료를 준비했지만, 그 언론사는 우리 자료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기사화하지 않을 테니 광고 지면을 사거나 협찬하라는 메시지만 반복했다. 이런 기자나 언론사가 ‘악’이다. 


‘기레기’건 ‘검새’건, 특정 집단을 욕하고 조롱하면 진짜 ‘악’은 집단 안에 숨어든다. 성실하고 선한 기자들이 부당한 욕을 먹는 동안 진짜 ‘악’은 그들과 함께 짐짓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된다. ‘버닝썬’ 사건 관련자들을 희대의 패륜아 취급을 하며 기사를 쓰던 기자들이 정작 자신들도 불법 촬영물이나 성매매 업소 정보를 공유해왔다는 미디어 오늘의 보도가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해당 기자들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참여 인원은 2만5000명을 넘어섰다. 또 기레기들이 어쩌고 하면서 냉소하고 말 것인가. 이들이 누구인지 밝혀내고 처벌해야 한다. 표절하고, 갑질하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개별 ‘악’들을 기레기라는 이름으로 봐주지 말자. 다른 성실하고 능력 있는 기자들까지 힘 빠지는 일이 없도록.


<윤태진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