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소외된 다수를 향한 저널리즘이 돼야

19세기 말 20세기 초 신문(언론)의 팽창 시기 언론의 영향력은 커졌지만 그만큼 언론의 폐해 또한 증대했다. 소위 대중 신문 시대에 언론은 이윤추구를 위해 선전·선동적이었고 기득권층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자성의 움직임으로 미국에서는 시사주간지 타임의 발행인 헨리 루스가 20만달러라는 거금을 지원하여 허친스위원회가 꾸려졌고, 이 위원회가 1947년 발행한 보고서에서 소위 사회적 책임이론(‘자유롭고도 책임 있는 언론’ 주장)이 탄생했다. 이 보고서의 중요한 대목 중 하나는 언론은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집단의 대표적인 의견과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속내는 언론이 소외된 약자, 소수 집단의 의견도 반영하도록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에서 소외된 약자의 대변은 마치 소수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행위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제반 분야에서 권력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고 다수는 권력(권리) 행사에서 배제되어 있다. 따라서 소외된 약자는 소수가 아니라 다수이다. 물론 소외된 약자가 소수 집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든 특정분야에서 다수에 속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영역에서는 소수의 소외된 약자일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들은 소수가 아니다. 따라서 정의의 관점에서 소외된 약자의 현실을 대변하고 보도하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 다수를 대변하는 것이다.


강자들은 언론 이외에도 그들의 목소리를 관철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이 아니면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방법이 없는 이 사회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언론의 본질이다. 그래서 소수에게 편향적일 정도로 우호적인 것이 사회 전체로 보면 오히려 공정하다는 역설적 논리도 가능하다. 이것이 언론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저널리즘의 원칙이다. 허친스위원회의 권고가 나온 지 70년이 지난 한국 언론은 어느 지점에 서 있을까?


민주언론시민연합이 5월17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이 내놓은 보도 자료 중 60%가량이 경제지에 실렸다. 혹자는 우리 사회의 경제 권력인 삼성의 보도 자료니 60%쯤 반영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사화된 내용에는 8K 고해상도 수상기를 이용한 디지털 광고, 갤럭시 팬 파티 등의 기사도 있다. 이게 보도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많은 기사들이 보도 자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이었다고 한다. 취재가 사라진 언론의 보도 행태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지만, 결국 언론은 삼성의 확성기 구실만 한 것이다. 그런데 5월31일 보고서는 더욱 놀라운 결과를 전했다. 연합뉴스는 삼성의 보도자료를 사진기사에 반영한 비율이 83.9%, 일반기사 88.2%, 그리고 하나라도 반영한 것을 고려하면 98.9%에 이르렀다고 한다. 뉴스 도매상으로서 훨씬 많은 뉴스를 생산하고 일반 언론사의 기사 재료를 제공하는 뉴스통신사의 기능을 감안해도 보도 자료의 98.9%가 기사에 반영됐다는 것은 놀라운 수치다. 연합뉴스에서는 기사 가치 판단 기준이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연합뉴스의 기사도 보도 자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즉 취재가 없는 기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반면 오랜 투쟁 끝에 조금이나마 세상의 관심을 끌고, 지루한 협상 끝에 타결한 삼성 백혈병 관련 사건들이 초기부터 얼마나 기사화가 됐을지 의문이다. 삼성 AS 기사들의 오랜 투쟁이 얼마나 기사로 실렸는지 의문이다. 이게 삼성만의 문제일까? 경제권력인 많은 대기업들, 정치권력인 주요 정당들, 문화권력들 등 기사의 편중 문제는 심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뱉는 선전·선동 언사들은 걸러지지 않은 채 우리에게 전달되지만 중소기업, 노동자, 소수 정당, 인디 문화들은 우리에게 얼마나 전달되고 있을까? 이들은 가뭄에 콩 나듯, 시혜나 베풀 듯 간혹 기사화되고 있다. 이용자 시민이 중심에 서는 지금의 매체 환경에서 소수 권력을 지향하고, 다수의 독자들을 멀리하는 지금의 행태를 바꾸지 않고 언론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