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2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이 외신들로부터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바란다고 발언했다. 블룸버그통신 기사를 원용한 것이다. 이는 강력한 후폭풍을 유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블룸버그 통신 기자를 비난하는 논평을 내고, 나 원내대표의 징계안도 제출했다. 반면 외신기자클럽은 블룸버그통신 기자를 강력히 비난하는 민주당의 논평이 언론통제의 한 형태고 언론자유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나 원내대표의 부적절한 연설을 촉발시킨 블룸버그통신 기사가 못마땅하다고 민주당이 개인 기자 실명을 거명하며 비난조의 논평을 낸 것이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검은머리 외국인이라는 차별적 표현도 적절치 않다. 뒤늦게 철회했지만 민주당의 과민반응에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민주당 논평에 ‘언론 통제’ ‘언론 자유에 찬물’ 등의 표현을 쓰며 항의한 외신기자클럽의 대응은 적절했을까? 물리적 행위가 있거나 사법적 조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변인의 논평 정도에 ‘언론 통제’라며 성명서를 내는 행태도 과잉 대응이다. 외신기자클럽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의혹을 제기했던 가토 전 산케이신문 지국장을 사법조치하겠다고 출국금지시킨 것을 두고 ‘그동안의 노력으로 많은 개선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언론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매우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했다. 공영언론이 장악되고, 정권과 유착돼 저널리즘의 추락을 야기한 언론들이 난무하는 당시 언론 상황을 ‘개선이 이뤄졌다’ 평했던 외신기자클럽이기에 더욱 이번 성명서 발표가 과잉 행동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운데)가 3월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나오며 파이팅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왜 이런 소동이 벌어졌을까? 무엇보다도 나 원내대표가 인용한 기사 자체에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기사는 문 대통령이 사실상 김 위원장의 대변인 구실을 한다고 표현했다. 문 대통령이 비핵화를 위한 북·미 협상이 성사되도록 유엔 총회에 참석한 회의론자들과 미국의 인사들에게 김 위원장을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핵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큰 피해자일 수 있는 국가의 지도자가 이를 피하려 중재 노력을 하면서 상대를 비난해야 할까 아니면 협상 당사자 자격이 있음을 강조해야 할까. 김 위원장이 기사의 표현대로 독재자든 아니면 과거 트럼프로부터 ‘로켓맨’이라고 불렸든 문 대통령에게는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인 것이다. 그런 의도에서 나온 외교적 수사들을 근거로 대변인이라고 인식하는 게 적절했을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기사에 실명으로 인용된 외교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북한의 한계를 알고 있다거나(스콧 스나이더), 대변인이라기보다는 자아가 강한 두 인물을 합의에 이르게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고 있다(스티븐 노퍼)고 말했다. 기사 옹호론자들은 문 대통령에게 중립적이거나 호의적인 인사의 의견도 실었으니 중립적으로 잘 쓴 기사라고 평하면서 민주당의 반응을 비판한다. 정말 잘 쓴 기사일까?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우선 실명으로 인용된 전문가 의견으로는 ‘사실상의 대변인’이라는 표현을 쓸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자의 의견인가 아니면 익명일 수밖에 없는 취재원들의 종합적 의견인가. 기자의 의견이라면 기자의 주관에 불과한 것이고, 익명의 전문가 의견이라면 이 정도 의견을 실명으로 밝힐 수 없는 전문가들이 누구일지 의문이다.
수석대변인이라는 제목도 문제다. 기사의 내용으로 봐서 ‘수석(Top)’대변인은 매우 과장된 표현이다. 일각에서는 제목은 편집자 몫이며 기자는 책임이 없다고 옹호하기도 한다. 그런데 기명 기사란 기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가는 것이다. 제목 결정 권한이 온전히 기자 몫은 아니지만 기자의 의사를 배제하고 결정해서는 안된다. 혹시 그게 관행이라면 그 관행을 없애야 마땅하다. 궁극적으로는 언론사가 기사의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일차적 책임은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기사의 제목 달기는 매우 중요하다. 기사 전부를 암시하는 요약의 효과도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기사를 꼼꼼히 읽기보다는 제목만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경원 원내대표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런 소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언론들이 블룸버그의 기사를 살피기보다는 그 기사로 일어난 소동의 보도에만 집중했다는 점이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 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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