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올림픽이라는 의미를 구축해오던 평창 올림픽 폐회식에 북한이 ‘천안함 폭침’ 주범 의혹을 받는 통일전선부장 김영철을 참석시키기로 하면서 뜨거운 논란과 대립 갈등이 발생했다. 자유한국당은 청계천에서 농성하고 통일대교에서 방한저지 투쟁에 나섰다. 천안함 유족들도 김영철의 방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반면 정부는 김영철 주범 주장은 개연성 있는 주장일 뿐 확정된 사실도 아니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대승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은 북한 잠수정이 한·미 합동작전 중인 해역에 수중 침투해 천안함을 폭침시켰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전 중인 해역 한복판에서 그것이 과연 가능했을지 많은 의문들이 있었고 아직도 이런 의문들이 명확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예로서 KBS <추적60분>은 침몰의 원인 파악에 중요한 요소인 정부의 침몰지점 발표에 의문을 제기했다가 고발당했지만 재판부는 합리적 의문 제기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통일선전부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25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입경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천안함의 절단면이 폭침 때문에 절단된 배들의 일반적인 절단면과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폭침이 아니라고 주장해 고발당한 신상철씨 재판에서 당시 인양을 담당했던 업체의 부사장이 증언한 내용이다. 정부가 북한 공격의 근거로 제시했던 어뢰 잔존물의 진실 여부 논란도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미국 펜스 부통령이 천안함 잔해 앞에서 ‘유엔조차도 북한의 어뢰공격을 확인했다’고 한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유엔은 (주체를 밝히지 않은 채) 공격으로 인한 천안함의 침몰에 깊은 우려를 표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공개적 논의가 어려운 분위기라 차분하고 냉정한 조사·분석으로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은 없었고, 앞으로도 그 길은 요원해 보인다. 물론 이런 의문들이 있다고 해서 역으로 북한이 안 했다고 예단하여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또 여기서 천안함 침몰 원인에 결론을 내리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언론다운 언론이라면 어떤 보도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46인의 천안함 희생자가 억울하지 않기 위해서는 왜 돌아가셔야 했는지가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또 천안함 침몰 원인의 결론에 따라 우리 사회가 취할 행보들은 천양지차로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언론은 아직도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천안함 침몰의 진실을 파헤치거나 진실 규명을 더 주장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언론의 올바른 자세이다. 그러나 대다수 우리 언론들은 정부의 진상조사 결과 발표 이후 각계의 분노하는 반응을 전달하기에 바빴을 뿐이다. 진실 규명을 위해 추가로 심층 취재했거나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경우를 찾기는 정말 어렵다.
실황 중계하듯 사실 전달에만 급급하고, 진실이나 진정한 의미에 접근하지 못하는 우리 언론의 한계는 최근 김영철의 방한 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김영철의 방한을 대하는 다양한 주체의 다양한 반응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주체들의 반응은 곧 여론이기도 하니 전달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언론이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도배해서는 안 된다. 진실, 또는 사실들이 엮어내는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고 전달해야 할 책임이 언론에 있다.
아직도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음을 앞에서 밝혔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은 천안함을 북한이 폭침시켰다는 것이니 일단 그건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김영철 당시 인민군 정찰총국장이 천안함 공격을 기획 지시했다는 주장은 여전히 개연성 있는 추론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이 주장을 당연한 전제로 한다. 그리고 방한 반대부터 처벌하자는 주장까지 격한 반응들만을 그대로 소개하기에 바쁘다.
언론의 보도, 표현은 시민들의 정서에 연연해하지 않고 확인된 진실에만 기반을 두어야 한다. 우리 언론 대다수는 ‘의혹’ 대신 ‘천안함 공격의 주역’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 주저함이 없다. 언론은 소심할 정도로 혹여 취재하고 또 확인해서 내보낸 보도가 정말 진실이었는지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추론을 확인된 사실인 양 표현하는 우리 언론은 참 담대하다.
또 김영철의 방한을 반대하는 천안함 유가족의 반응이야 정서상 지속적으로 다룰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김영철 방한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면, 김영철의 방한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김영철의 방한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전문적이고 심층적으로 분석한 글은 가뭄에 콩 나듯 찾기 힘들다. 전술한 대로 야당의 농성, 저지 투쟁, 비난 발언을 도배하듯 중계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이들 언론의 행태는 단순 ‘정보지’와 다를 바 없다. 수용자는 이런 언론을 신뢰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 가면 ‘사실’ 정보는 널려 있다. 그런 인터넷 시대에 이런 언론을 굳이 구독하거나 본방 사수하며 수용할 필요가 있을까? 언론의 위기는 자초한 것이다.
<김서중 |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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