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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뉴스

[미디어 세상]‘콘텐츠’의 대체어를 찾아보자

콘텐츠란 말이 유감이다. 일단 발음이 좀 그렇다. 콘텐츠라고 표기하고서 컨텐쯔라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도 뭣도 아닌데 우리말처럼 들리지도 않아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그런가.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을 어기면서 기어코 컨텐트라 쓰고 악착같이 ‘컨텐’ 또는 ‘컨텐스’라 발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용법도 혼란스럽다. 단어의 생김새만 보면 불가산 명사를 복수형으로 만들어 가산 명사처럼 만들어 놓은 형태다. 그러나 실제 용법을 보면 대체로 불가산 명사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콘텐츠는 매체 플랫폼이나 채널에 돌아다니는 내용물, 디지털 창작물의 집합, 또는 매체 형식이나 맥락의 반대말인 내용을 지칭한다. 이런 뜻이라면 발음도 이상스럽게 들리는 영어식 복수형 어미를 붙인 형태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콘텐츠에 진정 유감인 이유는 따로 있다.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개념어를 우리말로 공들여 번역해서 사용하지 않고 적당히 뭉개듯 사용하는 세태가 우습기 때문이다. 콘텐츠는 디지털 시대의 소통 현실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어가 됐다. 이는 더 이상 책을 포함한 기록물의 목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컨텐트라고 해도 더 이상 맥락의 반대말이거나 형식의 반대말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다만 이 용어를 사용하는 우리의 용법이 애매하고 모호할 뿐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권면한다. 콘텐츠라 쓰고 싶을 때마다 자신의 번역어 대안을 만들어 대체해서 사용해 보라고. 번역한 말이 ‘내용’이건, ‘동영상’이건, ‘디지털 창작물’이건 콘텐츠 그대로 두는 것보다 항상 좋다. 맥락에 따라서 ‘형식과 포맷을 달리하는 내용물’ ‘플랫폼 특성을 가리지 않는 내용 서비스’ ‘매체 장르별 내용의 특성’ 등으로 풀어서 옮길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더욱 좋다.

 

콘텐츠는 이미 모두가 사용하는 외래어가 됐는데 번역이 웬 말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글쎄, 단일 언어 내에서도 번역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 언어학자 제이콥슨이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언어 간 번역도 하고, 언어와 비언어적 표현 간 번역도 하지만, 언어 내 번역도 활발하게 수행한다. 나는 콘텐츠와 같은 용어를 사용할 때 언어 내 번역작업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용어를 듣는 순간, 듣는 자의 머릿속에서 실시간으로 적절하고 명료한 표상을 찾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뭐가 문제냐고 다시 물을 수 있겠다. 어차피 모든 이해의 과정은 모종의 의미를 찾아가는 해석의 과정이 아닌가. 즉 모든 이해는 번역의 성격을 띠지 않는가. 우리말로 자리를 잡아가는 외래어를 사용할 때는 물론 비일상적인 시적인 언어를 사용할 때 자동적으로 언어 내적인 일종의 번역이 이루어진다. 과연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콘텐츠와 같은 새로운 개념어를 기존의 언어 체계로 ‘번역’하는 과정을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콘텐츠가 없던 현실에 이 단어 하나만 달랑 끼워 넣음으로써 콘텐츠가 유통하는 현실을 만들어 내는 마법을 해체해야 한다. 디지털 내용물의 창작과 유통으로 인해 기존의 시와 소설, 신문기사와 방송 프로그램, 그리고 모든 내용물의 생산과 유통이 달라졌다. 이렇게 달라진 현실을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묘사하고, 강조하는 개념어 번역이 이루어져야 한다.

 

콘텐츠와 영역은 다르지만 비슷한 신세에 처한 용어들이 많다. 젠더가 그중 하나다. 요즘 가장 뜨거운 말 중 하나라고 하겠다. 이 용어는 대중 매체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다. 젠더폭력이나 젠더평등과 같은 복합명사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다루는 의제가 되고 있다. 젠더란 더 이상 여성주의자를 포함한 일부 진보적 언중만 사용하는 용어가 아닌 것이다.

 

젠더는 그러나 맥락을 따져보지 않으면 쉽게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용어이기도 하다. 별도의 설명이나 해명 없이 젠더가 지칭하는 대상물을 확인하기 어렵다. 설명해도 소용없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젠더라는 말을 사용할 때마다 ‘이는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성별 체계와 정체성을 지칭하는 말입니다’라고 덧붙이기도 번잡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누구의 무엇을 지칭하는지 모호한 채 논의가 진행된다. 여성학 연구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제발 젠더의 번역어 대안을 찾아 사용해 달라고. 여성주의자에게 요청하고 싶다. 제발 이 개념어를 사용해서 드러내고, 묘사하고, 강조해야 하는 현실을 여성과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소통해 달라고. 그것이 성별이건, 성차건, 성적 정체성이건, 아니면 다른 무엇이건 일단 적절한 번역어 대안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는 아직 외래어도 되지 못한 젠더라는 용어로 지칭하고자 하는 우리의 추레한 현실 자체가 모호하게 뒤처져 남게 된다.

 

나는 국어순화 운동을 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말 쓰기 운동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모든 소통이 디지털 소통이 되는 현실에서 내용 생산과 전파가 만들어 내는 파급효과를 명료하게 파악해서 소통하는 걸 보고 싶을 따름이다. 성별 억압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의 문제에 대해 모두가 토론에 참여하고 대안을 찾아 나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준웅 |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