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면 뻔해 보이는 일이 있다. 정작 그 자명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당시에는 대다수가 예상치 못했지만 말이다. 민심의 변화가 그중 하나다. 지난 총선을 되돌아보자.
2016년 초에 집권 새누리당은 180석을 넘어 개헌선에 육박할지도 모른다며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 대패했고, 1당마저 민주당에 내주고 말았다.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새누리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정치가 생물이라면, 여론은 어떤 생물이라도 삶을 수 있는 물이다. 물이 끓기 전에 이미 내용물은 삶아진다. 물의 온도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들만 언제부터 내용물이 익고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결과를 보며 놀랄 뿐이다.
내년이 선거라 그런지, 각종 여론조사가 난무한다. 그런데 이 여론조사들이 민심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조사에 접촉해서 설문에 응답하는 비율이 5%도 안되는 조사들이 즐비한 현실이 염려스럽다.
낮은 응답률도 문제지만 조사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지난 10월 한국통계학회 박인호 교수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론조사에 가상번호를 사용하느냐 여부와 자동응답기를 사용하느냐 여부에 따라서 조사결과가 달랐다. 가상전화를 사용하지 않고 자동응답기로 조사할 경우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에 대해 반대하는 응답자의 비율이 높았다.
응답률에 따라, 조사방법에 따라, 심지어 조사 의뢰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여론조사는 분명 우려할 만하지만, 이런 불일치는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해서 확인한 후 대처할 수 있는 종류의 문제라고 하겠다. 진정 우려할 만한 사태는 따로 있다. 만약 현행 여론조사 방법 자체가 민심의 온도를 확인할 수 없는 온도계처럼 작동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결과는 여론조사 기관과 연구자들은 물론 선거운동을 벌였던 정당들에조차 놀라운 반전의 연속이었다. 소수의 모험적인 도박사만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될 것으로 내다봤고, 거의 모두가 본선에서 클린턴이 승리한다고 예측했다. 선거 이후 힐러리 캠페인 진영은 물이 끓고 있는지도 몰랐던 삶은 닭 신세가 됐는데, 선거운동 기간 동안 여론조사에서 밀린다는 보고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거 이후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과 연구자들은 너나없이 선거예측 조사가 빗나간 이유를 말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이 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했지만, 돌아보니 실은 아슬아슬했던 경합지역에서 선거운동을 더 했어야 한다는 식의 뒷북 훈수가 한동안 유행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결함이라니, 정치문화의 쇠락이라니, 심지어 문명의 타락이라는 식의 담론을 동원한 해석도 유행했다. 대체로 그럴싸하게 들릴지언정 실은 사후 약방문에 속하는 해석이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알아낸 몇 가지 중요한 요점이 있다. 저학력 백인 유권자가 마치 소수자라도 된 듯이 예민하게 반응했던 사안들이 있었다는 것이 그중 하나다. 이민과 통상 사안들이 그랬다. 인종과 계층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보았던 표심 중에 실제로 투표장에 나와서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나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우리는 어떤가. 일단 우리는 총선 정국에서 민심을 파악하는 데 취약하다. 아마도 예측에 필요한 변수들이 많고, 확보해야 할 자료의 규모도 대선과 지방선거에 비해 크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총선 예측에서는 특별히 확률적으로 발생하는 오차 수준을 넘어 실패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데, 과거에 실패를 범하고도 뒷북 훈수와 사후 약방문을 내는 데 그칠 뿐, 향후 여론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민심의 변화 결과를 보며 놀랄 뿐, 다시 놀라지 않기 위해서 대비하는 자세가 부족했던 것이다. 심지어 변하는 민심을 기록하면 그만이지 설명하고 예측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지나고 보면 뻔한 세상으로 충분한 사람들이라 하겠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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