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는 지금 방송 재허가철, 재승인철을 보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기간 심사를 거쳐 12월11일 한국방송공사 등 33개 방송사업자 141개 방송사 재허가를 의결했다. 내년 봄에는 종편 3사 방송사 재승인 절차를 가져갈 것이다. 일반인에게야 별 관심사가 아닐지 모르지만, 방송사들에는 영업을 지속할 수 있는 자격의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절차다.
그런데 일정한 요건을 갖춰 등록만 하면 되는 방송사업자와 달리 특정 방송사업자의 경우 허가나 승인 절차를 갖는 것은 이 사업이 모두에게 허용되지 않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지상파 사업자는 한정된 전파를 나눠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잠재 사업자에게 부여될 기회를 전유하는 특혜를 누리는 것이며, 승인 사업자들도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뉴스를 하는 방송사업자로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받는다. 따라서 제한된 기회를 부여받는 특혜만큼 사업자가 그 사업에 적합한지를 엄격하게 따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재허가, 재승인에 ‘철’자를 붙인 것은 계절처럼 시간이 되면 왔다가, 으레 그렇듯 그냥 지나가는 매우 형식적인 절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004년 SBS와 일부 지역 민방의 경우 재허가 여부가 심각하게 논의된 적이 있었다. 지상파 방송사가 으레 재허가를 받는 것처럼 생각되던 시절 허가 취소가 실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현실에 직면한 SBS는 다양한 공익 관련 약속을 했고, 그 이후 SBS는 프로그램 내용이나 경영에서 개선을 이루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도 재허가, 재승인을 받는 방송사들이 방송법 10조1항 각호가 정한 방송 심사의 기준으로 볼 때 사업자로서 적합하다고 볼 수 없음에도 허가 또는 승인 취소된 방송사업자가 없었다. 이 절차가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
방송법은 방송의 공적 책임, 프로그램의 적절성, 지역성, 경영의 적절성 등을 심사하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어떤 방송은 제작 인력을 아끼려고 아침 ‘뉴스’를 밤에 제작하였다. 아침 뉴스는 뉴스 ‘재방송’인가? 어떤 방송은 주주 구성에서 위법한 측면이 있었다. 또 어떤 방송은 방송 내용에서 심각한 공정성을 위반했다는 심사위원의 평가가 있었다. 종합점수로 낙제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방송사들은 조건부라는 이름으로 재허가나 재승인을 받아왔다. 조건부이니 조건을 충족시켰는지는 다음 번 절차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같은 종류의 조건을 매번 부여받는 것이 조건부 허가나 승인 절차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사실 이번 허가 심사 대상 사업자는 36개였다. 그런데 경기방송은 낙제점, OBS는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편성-제작 및 공익성 확보 계획의 적절성’에서 배점의 50%에도 못 미치는 평가를 받아 의결 보류됐다고 한다. 몇 번에 걸쳐 적절한 제작비 투자 조건을 걸었지만 그 조건이 이행되지 않은 모양이다. 아예 종합적으로 낙제점을 받은 경기방송은 물론 지역방송으로서 내용을 담보하지 못하는 OBS의 허가 절차가 어떻게 귀결될지 매우 주목된다.
우리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구실이 중요한 것만큼이나, 지역방송은 지역 분권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역방송이 제 구실을 못한다는 것 역시 세간의 냉정한 평가다. 그런데 지역방송은 ‘지역’ 방송이라는 이름으로 생존한다. 그렇다면 지역방송을 지역방송답게 할 사업자에게 그 특권이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허가 취소가 어렵다면 가장 책임 있는 대주주에게라도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시민을 위하는 길이다.
재허가, 재승인 절차는 이런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한 필수 절차다. 만약 절차 미비로 부적절한 사업자를 걸러내지 못한다면 제도를 만드는 국회가 책임져야 하고, 제도를 적극 해석하지 않아 형식적 절차가 됐다면 규제기구의 문제다. 재허가, 재승인 절차가 형식에 불과하다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규제기구는 법조항의 취지를 적극 해석하려 노력해야 한다. 지금 진행되는 재허가만이 아니라 앞으로 이어질 재허가, 재승인 절차가 실질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서중 성공회대 미디어컨텐츠 융합자율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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